제주 워케이션 후기 #1. (사진 많음 주의)
길게 여행 가는 걸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라 환기가 필요하다 싶은 시기가 오면 가까운 곳으로 훌쩍 떠나는데 보통 제주도다. 다니기 좋은 봄이나 가을에 가고, 이번에도 10월 중순에 다녀왔다. 저렴한 비행기 티켓을 찾다가 제주도는 화요일에 출발해서 목요일에 돌아오는 비행기가 제일 싸다는 기사를 봤더니 가는 김에 조금 길게 머무르며 워케이션이라는 것을 해보면 어떨까 싶어졌다. (늘 스카이스캐너가 점지해 주는 여행 길일...*)
길게 있으려니 숙박비가 부담스러워 ‘멀쩡한 집 놔두고 무슨 낭비인가’, ‘집에 오고 싶어지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결제한 다음에 든 생각이라^^... 즐겁게 다녀오기로 했다.
가기 전에는 막연히 바다를 보면서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만 있었는데, 실제로 일을 해보니 몇 가지 지켜야 할 것들이 있더라. ‘이러면 도시에서 일하는 거랑 뭐가 다른가’라는 생각이 든 날들에 지켜지지 않은 것들, 그리고 했더니 좋은 것들을 간단히 정리했다. 워케이션을 다녀온 사람들에게는 공감이, 아직 안 가본 사람들에게는 참고가 되기를!
제일 중요한 규칙이다. 어두워짐과 동시에 모든 것이 문을 닫는 제주도 같은 곳에서는 긴장하고 정말 꼭!!! 해가 지기 전에 퇴근해야 한다. 정신 놓고 일하다 보면 이미 날은 어둡고.. 나는 혼자고... 어디 갈 데도 없고.. 치킨 시켜 먹고 넷플릭스 보다 보면 이걸 왜 굳이 제주도까지 와서 하고 있나?? 싶어진다. (경험담 ^_ㅠ)
해 지기 전에 퇴근해야 하는 이유는 일몰도 있다. 제주도든 강원도든 어디든 하늘이 탁 트인 곳에 갔다면 일몰을 봐야 한다. 일과를 마무리하며 매일 보는 일몰은 일 년에 몇 번 이벤트처럼 보는 일몰과는 느낌이 달랐다. 꼬박꼬박 해가 넘어가는 걸 보니 하루의 경계를 분명히 긋는 기분이다. 낮의 할 일을 마쳤으니 밤의 시간을 잘 보내봐야지! 뭐 이런. 언제 어두워졌는지도 모를 밖으로 나와 찌든 기분으로 지하철을 타는 것보다 확실히 뿌듯하고 활기차다. 돌아와서도 아쉬운 마음에 해질녘이 되면 꼭 한 번씩 하늘을 보고 있는데, 건물들 사이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는다.
일몰 보기와 같은 맥락이다. 해가 지기 전에 퇴근하려면 일을 일찍 시작해야 하고 그러려면 일찍 일어나야 하고 일찍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 한다! 새벽 1시였던 평균 취침 시간이 제주도에서는 11시 반 정도로, 기상 시간도 6시 반쯤으로 앞당겨졌다. 집안일에서 해방돼 더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하다. (워케이션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집안일을 안 해도 된다는 것이다.. 청소 안 하는 삶 최고)
제주도의 10월은 춥지 않아 매일 아침 산책을 했는데, 해변을 걸어도 그냥 동네를 걸어도 모두 새로워 여행 같았다. 일몰 보기가 하루의 불을 끄는 기분이라면, 아침 산책은 하루의 불을 천천히 켜는 기분이었다. 사실 아침 산책은 어디서 해도 좋지만 아무래도 건물 사이로 보는 하늘보다는 시야에 걸리는 것 없이 탁 트인 하늘을 보면 더 좋으니까.
제주도까지 워케이션을 갔다면 일주일 중 하루나 반나절쯤은 휴가를 쓰고 돌아다니면 좋다. 섬의 날씨가 매일 좋은 건 아니니까 가능하면 날씨 좋은 날 갈 수 있는 곳들을 다녀오면 좋다. 야근 몇 번 하고 연차 냈던 날 용머리해안에 갔다..가 아니라 가고 싶었는데 파도가 높다고 못 들어갔다. 용머리해안 보고 싶다. 아무튼 이러려면 휴가가 좀 남아 있어야 하고 일이 너무 바쁘지 않아야 한다. 워케이션은 업무 시간에만 일해도 괜찮은 시기, 무슨무슨 행사가 있지 않은 시기, 연차가 꽤 남은 시기에 다녀오기를 추천한다.
워케이션은 업무 집중도를 높이기도 개인적인 시간을 생산적으로 쓰기도 좋은 환경이다. 사무실 출퇴근하면 이동하느라, 집에서는 집안일 하느라 쓰던 시간까지 온전히 쓸 수 있으니까. 약속도 없고. 바쁘다고 미뤄둔 생각들을 꺼내 하나하나 짚어보기 좋은 타이밍이다. 그러려면 앞에 쓴 세 가지가 잘 지켜져야 한다. 특히 1번과 2번. 어디 가서 할지 장소도 미리 찾아두면 좋다. 나처럼 장소 찾느라 시간을 많이 쓰는 편이라면 더더욱. 저녁에 갈만한데 못 찾을까 봐 아예 숙소 안에 작업 테이블이 있는 곳들만 갔는데 이것도 괜찮은 방법이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워케이션 숙소 리뷰나 일하기 좋았던 카페 리뷰도 써보고 싶어진다.
다음 편에는 여자 혼자 차 없이 머무르고 다니기 좋았던 곳들, 바다도 보이고 공간도 넓고 콘센트도 많아 일하기 딱 좋았던 카페들을 정리해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