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지셔닝: 어쩌면 공격보다 수비가 필요한 시대 아닐까?

마케팅의 고전 <포지셔닝>을 2025년에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by 제이
그저 공격으로만 보였던 <포지셔닝>

마케팅이나 브랜딩에 몸담고 있다면 한 번쯤은 통과해야 할 관문 같은 책이 있습니다. 알 리스와 잭 트라웃의 <포지셔닝>입니다. 몇 년 전, 이 책을 처음 읽으며 어떻게 고객의 마음이라는 영토를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때의 저는 이 책에서 ‘공격’의 날카로움을 보았습니다.


‘최초가 될 것’, ‘새로운 판을 짤 것’, ‘경쟁자의 인식을 바꿀 것’. 책의 모든 메시지는 마치 미지의 영토를 향해 던지는 날카로운 창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떻게든 비어있는 지점을 찾아내고, 경쟁자를 넘어 내 이름의 깃발을 가장 높은 곳에 꽂는 것. 그것이 당시 제가 이해한 포지셔닝의 전부였습니다.


포지셔닝이란 잠재 고객의 마인드에
해당 상품의 위치를 잡아주는 것이다

<포지셔닝>이 마케팅 불변의 고전인 이유

하지만 수많은 브랜드가 뜨고 지는 2025년의 시장을 경험하며 다시 펼친 책은, 제게 전혀 다른 울림을 주었습니다. 화려한 공격의 기술보다는, 어렵게 얻은 가치를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지를 말하는 ‘방패’의 단단함을 역설하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무심코 넘겼던 경고들이 마치 밑줄 그은 문장처럼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라인 확장의 함정’입니다. 과거에는 그저 ‘성공에 취해 욕심부리지 말라’는 정도로 여겼던 이 조언이, 지금은 ‘스스로의 손으로 쌓아 올린 성을 무너뜨리는 가장 확실한 길’에 대한 엄중한 경고로 읽힙니다. 성공의 달콤함에 취해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스스로 희석시키는 것만큼 허무한 실패는 없을 겁니다. 그것은 외부의 공격보다 더 무서운, 내부에서 시작되는 붕괴의 씨앗이니까요.


‘미니홈피’와 ‘일촌’으로 ‘우리만의 아늑한 관계’라는 가치를 소유했던 싸이월드는 가장 아픈 실패 사례일지 모릅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개방된 광장’이라는 새로운 가치로 모바일 시대를 열었을 때, 싸이월드는 변화에 적응하며 핵심 가치를 지켜내는 대신 PC 시대의 성공 공식에만 매달렸습니다. 결국 ‘단 하나의 가치’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지켜내지 못한 브랜드는 추억 속으로 사라졌고, 이는 핵심을 망각한 비극이었습니다.


'지키는 가치'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습니다. '안전'이라는 단어를 소유한 볼보가 대표적입니다. 볼보는 더 빠른 속도나 화려한 디자인이라는 유행을 맹목적으로 좇기보다, '탑승자를 보호한다'는 핵심 가치를 수십 년간 묵묵히 지켜내고 발전시켰습니다. 그 결과 '안전'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볼보만의 영토가 되었고, 이는 브랜드에 시간을 이기는 힘을 부여했습니다.


잠재 고객의 관점에서 라인 확장은
일반명 브랜드의 포지션과 마찰을 일으킬 뿐이다


지키는 것까지가 우리가 할 일입니다

결국 창과 방패는 다른 이야기가 아닐 겁니다. 날카로운 창으로 영토를 개척하는 용맹함도 중요하지만, 그 영토를 굳건히 지켜내는 지혜가 없다면 그 성취는 신기루처럼 사라질 테니까요. <포지셔닝>이 반세기가 다 되도록 여전히 강력한 이유는, 단순히 이기는 법이 아니라 그 승리를 지키는 법까지 담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제 <포지셔닝>은 제게 단순히 ‘전략’을 알려주는 책을 넘어, ‘지키는 것의 가치’를 묻는 깊은 사유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화려한 공격을 계획하기 전에, 나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를 먼저 돌아보게 하는, 믿음직한 ‘방패’가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