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니까요
고대 그리스의 냉소주의 철학가 시노페의 디오게네스(est.410-320)에 대해서 전에 한 번 다룬 적이 있었다.
'사회가 정한 관습, 도덕, 법률 등을 부정하고, 그저 개인의 욕구에 따라 생활하는 것'을 당부하는 냉소주의의 창시자답게 디오게네스는 괴랄한 기행으로 악명이 높다. 부하들과 추종자들이 모두 바라보는 앞에서 알렉산더 대왕에게 보란 듯이 수치심을 안기고, 누구를 찾고 있다는 이유로 대낮에 횃불을 들고 다니는 둥, 그를 둘러싼 유쾌한 일화가 많은데, 또 하나의 유명한 에피소드가 바로 '디오게네스의 나무그릇'이다.
디오게네스가 부정한 사회적 관습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물욕'이다.
당시 그리스는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경쟁 구도로 이루어져 있었다. 두 제국의 정치이념에는 큰 차이가 있었지만, 어느 제국의 사람이든 부와 권력을 손에 넣으려는 것에는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 스파르타인들은 무력과 군사력으로 세력을 키웠으며, 아테네인들은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힘을 거머쥐었다. 이처럼 각자의 방법으로 권력을 얻고, 이를 통해 해부를 쌓아 자식에게 세습하는 것이 고대 그리스인들의 공통된 목표였다. 하지만 디오게네스는 이 피 튀기는 싸움을 거부했다. 그는 '끝없이 부와 권력을 좇아 고달픈 인생을 살 바에야 아예 아무것도 지니지 않고 살겠다'라는 일념으로, 집을 가지지도 않고, 길거리에서 술통 안에 살았다.
그런 디오게네스에게도 한 때 소지품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나무그릇이었다.
디오게네스는 작은 나무그릇을 식사와 음용의 수단으로 오랫동안 들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강가를 지나가다 양손을 모아 물을 떠 마시는 어린아이를 보게 된다. 그때, 그는 자신의 유일한 소지품이었던 나무그릇조차 실은 불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릇 대신 두 손을 사용할 생각을 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디오게네스는 자신의 나무그릇을 멀리 던져버렸다고 한다.
'디오게네스의 나무그릇' 일화는 '미니멀리즘'과 '발상의 전환' 등의 개념을 논의할 때 종종 거론된다. 오늘은 이 일화를 우연히 개인 유튜버, "Pewdiepie(퓨디파이)"의 영상에서 만나게 되었다.
철학에 꽤나 조예가 깊은 Pewdiepie는 특히 고대 그리스와 니체의 철학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디오게네스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영상에 언급한 바 있다. 며칠 전에 업로드한 영상에서 그는 '디오네스의 나무그릇' 일화를 참조하며, 최근에 자신의 인생에서 '나무그릇'이라 칭할 수 있는 물건들에 대해 고민해보고 있다고 고백했다. 다시 말해, '소지하면 편리하지만, 반드시 필요하진 않은 물건'들 말이다. 영상에서 예시로 든 경우를 일부 나열해 보자면, 그는 여러 켤레의 신발은 불필요하다고 느껴, 한 켤레의 신발을 닳을 때까지 사용한다고 말했으며, 상황(유튜브 영상 녹화, 운동, 전화)에 따른 헤드폰을 한 짝 씩 가지고 있었는데, 전부 처리하고 단 하나의 헤드폰만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바로 운동기구인데, 헬스, 클라이밍, 서핑 등 운동에 진심인 Pewdiepie는 사무공간 한 편에 홈 짐(home gym)을 꾸려놓았었는데, 이를 무게조절 덤벨로 간소화하고, 다시 이를 푸시업 바(push-up bar)로 간소화하고, 심지어 최근에는 그것조차 처리하고 맨몸운동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수년간 Pewdiepie의 영상을 보며 그의 미니멀리스틱 라이프스타일이 나의 가치관과 매우 흡사하다고 느꼈는데, 예상외로 이번 영상을 시청하면서는 그의 '무소유 정신'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했듯이 나도 미니멀리스틱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편이다. 꼭 필요하지 않거나 대체가능한 물품은 집에 들이지 않고, 웬만하면 여러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물품을 선택한다. 또, 고장 나지 않은 물품은 바꾸기 어려워하고, 기분에 따라 새 물품을 구매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영상에서 Pewdiepie가 서술한 수준의 미니멀리즘은 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가 무리하게 미니멀리즘을 좇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 들었다.
미니멀리즘은 삶에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제거하는 행동을 근간으로 한다. 하지만 우리 삶의 여러 물품들은 '필요하다'와 '필요하지 않다'의 이분법으로만 나뉘지 않는다. 그 둘 사이에 '꼭 필요하진 않지만, 편리하다'라는 항목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Pewdiepie 영상을 시청하며 불편한 느낌이 들었던 이유는 그가 이 '꼭 필요하진 않지만, 편리하다'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물건조차 애써 제거하려고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꼭 필요하진 않지만, 편리한' 물건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일까?
여분의 이어폰과 신발을 비롯하여, 크게는 자가용까지도 해당 카테고리에 해당할 수 있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 상황에 맞는 여분의 신발, 옷, 심지어 자가용 또한 때에 따라서는 '꼭 필요한' 물건이 될 수도 있지만, 분명 우리 삶엔 '꼭 필요하진 않지만, 편리한'이라는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물건이 굉장히 많다. 진정한 미니멀리즘이란, 이런 물품 또한 우리 삶에서 삭제해야 하는 것일까? 현대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편리함을 누리는 것은 미니멀리즘에 대한 배반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
집도, 침대도, 이불도 없이 살아도 나무그릇 하나 정도는 가지고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