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모르면 손해"라는 폭력
인스타그램을 열면 보인다.
"인생 맛집", "이거 모르면 인생 손해", "진짜 모르는 사람 없지?".
유튜브 알고리즘은 더 적극적이다.
"아직도 안 봤어요?", "이거 안 보면 후회합니다".
언제부터였을까. 취향이 강요가 된 건.
SNS가 일상화되면서 우리는 모두 큐레이터가 됐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발견한 것을 공유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공유'가 '전도'로 바뀌는 순간.
"이 영화 안 보면 영화 팬 아니야",
"이 음악 모르면 음악 듣는 거 아니야",
"이 책 안 읽으면 독서가 아니야".
취향은 점점 자격증처럼 변해간다. 뭔가를 좋아하려면 특정 콘텐츠를 필수로 소비해야 한다는 압박.
더 교묘한 건 알고리즘이다. 플랫폼들은 우리가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요즘 대세", "지금 가장 핫한", "모두가 보는".
숫자로 증명된 인기는 강력한 설득력을 갖는다.
조회수 천만, 좋아요 백만. 이걸 모르면 나만 시대에 뒤처진 것 같다.
FOMO(Fear Of Missing Out)는 이제 취향의 영역까지 침투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좋아한다니까, 나도 좋아해야 할 것 같다. 안 좋아하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 별로였던 경험도 있다.
모두가 극찬하는 맛집에서 그냥 그랬던 경험.
100만 뷰 영화를 보고 와닿지 않았던 순간.
베스트셀러가 지루했던 시간.
그런데 그걸 말하기가 두렵다. "내가 이해를 못 하는 건가", "내 감각이 이상한 건가" 하는 불안.
여기서 질문 하나.
왜 우리는 우리의 '별로'를 변호해야 할까? 왜 대중의 '좋아요'가 나의 '별로'보다 우선되어야 할까?
취향에는 정답이 없다. 누군가에겐 인생작이 누군가에겐 시간 낭비일 수 있다. 그게 정상이다. 모두가 같은 걸 좋아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다.
"이거 모르면 손해"라는 말은 친절한 척하는 폭력이다. 내가 좋아하는 걸 다른 사람도 좋아해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오만이다. 진짜 취향 존중은 상대가 내가 좋아하는 걸 안 좋아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거다.
요즘 핫하다는 그거, 몰라도 괜찮다.
다들 극찬하는 그거, 별로여도 괜찮다. 아무도 안 보는 그거, 좋아해도 괜찮다.
취향은 남에게 증명하는 게 아니라 나를 즐겁게 하는 거니까. 대세를 따라가느라 정작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잊어버리면 안 된다.
결국 중요한 건 '다들 뭐 봐?'가 아니라 '나는 뭐가 좋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