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이 빨라진다

나이가 든다는 거 (1)

by 윤종수

나이 듦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꼰대’가 되지 않고 어떻게 세상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오래 전부터 메모해 두었던 글들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책으로 출판할 예정이었지만 미적거리다 끝내 마무리하지 못했죠. 새벽 감성에 쓴 글을 대낮에 읽었을 때의 민망함을 느낀거 같아요. 10년이 더 흘러 60대가 된 지금 민망함을 좀 거두고, 50대 이후의 삶을 미리 고민하는 분들, 본격적인 인생 후반기를 살아가고 있는 분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위해 그 글들을 다시 꺼내어 정리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이 연재에서는 ‘나이 듦의 회한과 각성’, 그리고 ‘괜찮게 나이 먹기 위한 실행’에 대해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나이가 들수록 빨라지는 걸음에 대한 기억입니다.



판사로 근무하던 2012년 가을, 법정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그날 소송대리인으로 나온 이는, 10여 년 전 고등법원에서 함께 근무했던 부장판사였다. 몇 년 전 사직했다는 소식만 들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마주하니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차분하고 꼼꼼한 말투는 여전했다. 변호사가 되었어도 품위 있는 태도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세월은 숨길 수 없었다. 희어진 머리칼과 깊어진 주름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재판 중이라 아는 척도 못했지만, 건강한 모습이 반가웠다.


그런데 그 순간, 오래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그는 걸음이 빨랐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마다 우리는 늘 헐떡이며 따라가야 했다. 키도 작고 성격도 차분한 사람이 왜 그렇게 성급하게 걸어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폭은 크지 않았지만 속도는 놀라웠다. 다른 배석판사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따라잡아도 금세 멀어지고, 다시 뛰듯이 붙어야 했다.


결국 어느 날 참지 못하고 물었다.

“부장님, 왜 이렇게 걸음이 빠르세요? 따라가기 힘듭니다.”
그는 잠시 머쓱한 듯 웃더니 이렇게 답했다.
“내가 그랬나? 글쎄… 마음이 급한가 봐.”


나는 속으로 의아했다. ‘성실한 것도 좋지만 저 나이에도 저렇게 여유가 없을까? 나는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
하지만 세월은 돌고 돌아, 지금 나는 그보다 더 빨리 걷는다.


조급함의 두 시기

돌이켜 보면, 인생에서 조급했던 시기는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20대, 미래가 불투명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시기였다.
두 번째는 50대 이후, 미래가 어느 정도 보이는데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느끼는 시기이다.


20대의 조급함은 “앞으로 무엇을 할까”라는 불안 때문이었다.
50대의 조급함은 “앞으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체감 때문이다.


새로운 지하철 노선 발표가 나면 반갑다가도, ‘내가 이걸 과연 얼마나 탈 수 있을까’ 계산부터 하게 된다. 장기 계획을 세우다가도, 정년이나 건강 같은 현실의 벽이 눈앞에 스친다.


덕담 건네는 사람

어느 원로 교수가 했던 이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처음에는 토론자로 불리다가, 발제자가 되고, 어느 순간 진행자가 된다. 마지막에는 축사 담당으로 남지. 일은 점점 쉬워지고 폼은 나는 것 같은데, 기분은 씁쓸해. 학자로서의 내 인생도 이렇게 마무리 되는구나 싶네.”


나 역시 그 단계에 들어선지 꽤 되었다. 누군가는 배려한다고 좌장 자리나 축사를 부탁하지만, 내 마음은 서글프다. 아직 플레이어로 뛰고 싶은데, 어느새 ‘덕담이나 건네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걸음이 빨라지는 이유

그 선배 판사가 했던 말,
“마음이 급한가 봐.”
그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며 우리는 더 이상 새로운 산을 오르는 게 아니라, 이미 걸어온 길을 정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이 산이 아닌가벼?"라고 깨달았어도 다른 산을 올라갈 기회는 없다.

더 씁쓸한 건 결산의 장부가 또렷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정신없이 부지런히 살아온 것 같은데, 딱 잘라 말할 성취가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시 시작할 엄두는 나지 않고, 현재는 만족스럽지 않다. 그래서 불안이 밀려온다.
“이제는 여유 부릴 때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 해야 한다.”
이런 생각들이 우리를 재촉한다.


그래서 걸음이 빨라진다.
밥을 급하게 먹는다.
말을 재촉한다.


하지만 그 속도는, 누군가 따라오기엔 벅차다.
예전 내가 선배 판사의 걸음을 힘겹게 따라가던 것처럼, 지금 내 옆 사람도 나 때문에 숨이 차지 않을까, 다 먹기도 전에 수저를 내려 놓을까 걱정스럽다.


조급함이라는 선물

세월이 내게도, 그리고 그 선배에게도 준 건,
조급함이었다.


누가 쫓아오지도, 당장 무너질 것도 아닌데, 괜히 급하다.
여유를 가지려 해도 마음이 앞선다.
마치 ‘시간의 유효기간’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20대의 조급함은 불확실성에서 왔고,
50대의 조급함은 유한성에서 온다.

우리는 모두 결국, 걸음을 재촉하며 살아가고 있다.




당신은 언제 가장 조급함을 느끼셨나요?

20대의 불확실한 미래 때문이었나요?

아니면 50대처럼, 줄어드는 시간 때문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