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거 (2)
어렸을 때부터 기계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것 같다. 멋진 소리를 들려주거나 영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잘 빠진 모양새와 빠른 움직임으로 마음을 사로잡는 그런 기기들이다.
요즘은 취향이 다양해져 하나의 범주로 묶기 어렵지만, 공통점은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집착이라는 점이다.
30대 부터는 오디오와 AV(Audio & Visual)에 꽤 깊이 빠져 있었다. 잡음을 없애겠다며 전깃줄에 수백만 원을 쓰는 이른바 ‘오됴쟁이’들의 세계.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지금도 항변하지만, PC 통신 시절 AV 동호회의 시삽(sysop)까지 했으니 덕후였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사실 오디오는 돈이 많이 드는 취미다. 술도 명품도 멀리하며 애썼지만, 하이엔드(high-end)라 불리는, 보귀에도 귀티나는 장비들의 가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럼에도 나름 전략적으로 잘 운영하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모든 제품들이 그렇지만 상급으로 올라 갈수록 가격은 한계효용을 초월하여 급격히 상승한다. 그러니 1등이 아니라 10등쯤 되는 장비를 목표로, 즐기면서 꾸준히 업그레이드하는게 좋은 전략이다.
덕후들에게는 그들만의 중고시장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덕후들에게 인정받는 좋은 장비는 환가성이 높아 중고시장에서 꾸준히 제값을 받으면서 거래가 된다. 앰프 같이 내구성 있는 제품은 박스를 열자마자 신품가의 60~70%로 거래되는데, 시간이 흘러도 그 가격을 유지한다. 괜찮은 중고를 사서 즐기다 다시 팔면 손해는 크지 않고 거기에 약간의 지출을 보태면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다. 덕후의 세계에선 이 정도면 합리적인 투자전략이다.
그러나 가족들의 시선은 달랐다. 그저 쓸데없는 데 돈 쓰는 나쁜 취미였다. 혼자 방구석에서 기계와 씨름하는 모습은 반가움보다는 못마땅함을 샀다. 새로운 기기를 들일 때면 몰래 들여와 기존 장비 사이에 끼워 넣기도 했지만, 신기하게도 금세 눈치 채였다. 한번도 사용해보지 않았으면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알아채는 그 능력은 정말 탁월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건 ‘설렘’ 때문이다. 마음에 그려둔 기기를 손에 넣기 전날 밤, 두근거림에 쉽게 잠들 수 없었던 시간들. 택배 박스를 열 때 풍기는 특유의 냄새, 빛나는 자태를 마주하는 순간의 짜릿함. 그 설렘은 열정으로 이어졌다.
덕후의 세계는 결국 설렘과 열정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설렘이 사라졌다. 어떤 제약에도 꿋꿋이 지켜내던 열정이 흔적 없이 증발해버린 것이다. 억지로 참으려 한 것도 아닌데, 그저 자연스럽게 시들어버렸다. 새로운 기계에 대한 욕망도, 박스를 여는 설렘도 예전 같지 않다. 맘에 드는 물건을 찾아 헤매고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 열정은 이제는 미련하게 느껴질 뿐이다.
나이 들어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로망을 마음껏 펼쳐보리라 했지만, 막상 그 시점이 오니 로망 자체가 사라졌다. 애써 설렘을 다시 느껴보려 하지만 금세 시들해진다. 곁에서 바라보던 이들에게는 반가운 변화일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서글프고 낯설다. 도대체 설렘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기계만이 아니다. 여행도 그랬다. 어린 시절 소풍 전날, 잠을 설칠 만큼 가슴이 뛰던 기억. 고작 동네 근처 산으로 가는 여정이지만 어머니가 싸주는 김밥 한 줄은 설렘의 정점이었다. 낯선 곳을 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비행기로 30시간을 날아 지구 반대편에 가더라도 덤덤하다. 그냥 가나보다 싶고, 때로는 집을 떠나는게 버겁다. 즐거움은 여전할지 몰라도 설렘은 희미하다. 새로운 풍경도 기가 막히게 금방 익숙해져 버린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인연은 늘 여행처럼 설레는 일이었다. 다른 시간과 다른 경험을 살아온 사람을 만나는 건 마치 미지의 곳으로 떠나는 여행과 비슷했다. 저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어떤 성격일까, 나는 저 사람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모든 게 궁금하고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를 만나도 덤덤하다. 여전히 다양한 분야의 좋은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고 있지만 설렘과 기대는 크지 않다. 그렇다고 무심하거나 무관심한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더 이상 ‘설렘’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려울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젊었을 때는 이런 덤덤함을 동경했다.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고 관조하는 태도. 그것이 성숙한 어른의 여유라 믿었다.
그러나 막상 그 나이가 되어 보니 그것은 여유라기보다 무감각에 가깝다.
작은 것에 흥분하지 않는 성숙함이 아니라, 큰 것에도 가슴이 뛰지 않는 무기력이다.
새로운 시도는 설렘보다 번거로움으로 다가오고, 작은 기쁨을 향한 모험은 미련해 보인다.
열정은 박제가 되었고 설렘은 사라졌다.
어쩌면 이 무감각조차 성숙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꿈꾸던 성숙은 결코 아닌 듯 하다.
더 이상 미련한 짓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 남들 눈치를 그렇게 많이 보지 않아도 되는 위치가 되었다.
그런데 정작 가슴 뛰는 일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씁쓸하다. 설렘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덤덤함과 무감각이다.
나는 오늘도 스스로 묻는다. 설렘은 정말 끝난 것일까, 아니면 다른 모습으로 숨어 있는 것일까.
여러분에게는 아직 가슴을 뛰게 하는 설렘이 있나요?
새 기계, 여행, 새로운 사람… 여전히 가슴 뛰게 만드는 것이 있나요?
아니면 예전과 달리 덤덤해진 자신을 발견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