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거 (3)
어린 시절 어느 추운 겨울밤, 어머니에게 크게 혼이 났다. 이유는 지금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매번 잔머리를 굴리며 손아귀를 쑥쏙 빠져나가는 골칫덩어리가 된통 사고를 쳤던거 같다.
당시 어머니는 지방에 계신 아버지와 떨어져 홀로 아이 셋을 키우고 있었다. 빠듯한 살림에 고된 노동, 끝없는 책임—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은 어머니의 몸과 마음 모두가 마르고 닳아가던 시간이었다.
자세한 속사정을 알리가 없는 나는 어머니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에 유난히 능했다. 장남이었던 나는 어머니가 가진 마지막 기대이자 유일한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저버리고 자주 어머니의 속을 썩였고 그날은 어린 것이 심하게 대들기까지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서러운 건 어머니였을텐데, 그날은 내가 더 서럽다고 믿고 있었다.
사고를 친 주제에 반성은 커녕 홧김에 집을 뛰쳐나왔다.
나름 호쾌하게 뛰쳐나왔지만 갈 곳은 없었고, 더 큰 문제는 속옷 차림 그대로 였다는 것이다. 울컥한 마음에 문을 박차고 나온 터라 옷을 챙겨 입을 겨를이 없었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밤, 속 옷 차림의 아이에게 세상은 잔인하도록 차가웠다.
골목에서 서성이다가 얼어 죽을 것 같은 추위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다시 들어가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또 잔머리를 굴렸다. 대문 옆의 깡통 쓰레기통을 들어 바닥에 힘껏 내던진 뒤, 추운 바닥에 누워 ‘쓰러진 척’을 했다. 어머니가 놀라서 뛰쳐나와 줄 것이라 믿었다.
가만히 누워서 반응을 기다리는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소리가 약했나 싶어 다시 세게 집어던지고 또 바닥에 누웠다. 드디어 반응이 왔다.
동생이 울먹이며 “엄마, 오빠가 쓰러졌나 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그렇지...
어머니가 뭐라고 하셨고, 잠시 후 동생이 문을 빠꼼이 열고 그 말을 전했다.
“오빠, 엄마가 그냥 얼어 죽으래”
바닥은 너무 차고, 몸은 덜덜 떨리고,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다.
결국 고개를 숙인 채 주섬주섬 일어나 동생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부뚜막에 몸을 웅크린 채 엉엉 울었다.
너무 서러웠고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언젠가 꼭 내 갈 곳을 갖고 말겠다.”
집을 나와도 갈 곳이 없어 서러운 건 철없는 말썽쟁이만은 아니다.
개인 변호사인 어느 선배의 사무실에는 항상 친구들이 한두명 정도 놀러 와 있다.
정년퇴직이나 명예퇴직을 하고는 별다른 직업없이 보내는 친구들이다.
이들은 한때 잘 나가던 고위직 공무원, 기업 임원이었지만 지금은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낸다.
집에 있자니 불편하고, 마땅히 갈 곳도 없어 결국 친구 사무실로 온다.
바둑을 두거나 수다를 떨다가 집에 들어가는데 가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선배를 붙잡고 우는 친구들도 있다고 한다.
선배는 그들의 처지가 딱해 최대한 편의를 봐준다.
선배가 생각해도 자신의 처지가 제일 괜찮은 것 같고 그들역시 선배가 부러운 이유는 단순하다.
돈 때문도, 성공 때문도 아니다. 아직 ‘갈 곳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사회라는 무대에서는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지만 가정만큼은 자신이 여전히 주인공이라고 믿는 '가장(아직도 유효한 용어인지는 모르겠다)'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세세한 일상에서 함께 공감을 나눌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그들은 집안은 이미 자신과 상관없이 돌아가고 있고, 자신의 존재감은 어느덧 희미해진 사실을 깨닫는다.
정보 공유에서도 뒤처지고, 크고 작은 결정에서도 배제된다. 그 시간들이 쌓이며 거리는 조금씩 더 멀어진다.
억지로 존재감을 드러내려 하다 갈등만 생긴다. 말 한마디가 오히려 분위기를 깨고, 좋은 취지로 건넨 조언이 잔소리가 되고, 결국 더 멀어지는 결과를 만든다.
발언의 기회는 사라지고, 기여할 수 있는 것도 줄어들며, 점점 고립된다.
결코 가족들의 배신 때문이 아니다. 세월과 자신이 택한 역할 속에서 그들과 조금씩 조금씩 멀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내가 이렇게까지 애써왔는데, 왜 이렇게 취급받아야 하나?”라는 억울함이 쌓인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저 조용히 밖으로 빠져나간다.
언제부터인가 사무실이 편안하다. 특히 휴일의 빈 사무실은 이상하리만큼 편안하다.
조용한 공간에서 재즈를 틀어놓고 커피 한 잔을 음미하며 일하는 순간은 작은 낙원이다.
남들은 휴일에 사무실에 나와서 고생한다고 위로해 주지만, 고생은 커녕 즐겁기만 하다.
그렇다고 빈둥거리고 있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평일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능률도 잘 오른다. 심지어는 일하는 게 재밌다.
사람들은 말한다. “휴일에도 일하다니, 워커홀릭 같으니라고”.
젊었을 때부터 치열하게 살다 결국 남들이 부러워하는 지위에 올라갔음에도 여전히 일에 빠져 몸을 해치는 사람들. 심지어는 워커홀릭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나이가 먹으면서 일 중독에 빠지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런데 뭔가 수상하다. 사무실이 편안하고 일에 대한 의욕도 분명 있지만 그 동기가 석연치 않다.
그들은 정말 일에 빠져있는 걸까? 아니면 나만의 공간에서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을 뿐인가.
일을 하기 위해 사무실로 나온 것일까, 아니면 사무실에 머무르기 위한 핑계를 찾는 것일까. 애매하다.
누구나 ‘덴(den)’에 대한 욕구가 있다고 한다. 원래는 동물의 굴을 뜻하지만, 인간에겐 서재나 작업실 같은 은둔의 공간을 의미한다. 아늑하고, 외부로부터 분리되어 있으며, 나만이 존재하는 나의 공간.
어쩌면 휴일의 사무실이 바로 그들의 덴이다.
속옷 차림으로 칼바람을 맞으며 떨던 소년은, 결국 갈 곳이 없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갔고, 언젠가 자신의 덴을 깆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머리가 희끗해진 지금, 그는 휴일에 집을 나와 덴으로 간다.
가족 사이에서 밀려난 존재감, 갈 곳 없는 공허함을 달래주는 은신처. 그곳에서 잠시 안도의 숨을 내쉰다.
고작 사무실에서 말이다.
당신에게도 생각만 해도 편안해지는 ‘나만의 장소’가 있나요?
그곳은 어디인가요?
그리고 왜 그곳에 머물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