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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귀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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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Apr 05. 2023

이제 우리 집 마당도 좀 예뻐지려나?

<귀촌일기 중에서>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고 따뜻한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설렘과 아쉬움이 뒤섞인 미묘한 감정으로 한 해 농사가 시작된다. 농사꾼들 중에는 “올해는 농사를 잘 지어봐야지!”라며 의욕이 넘쳐나는 분도 계실 테고, “좋은 시절 다 지나갔네!”라고 아쉬워하는 분도 계실 것 같다. 같은 농사꾼이라도 마음은 제 각각인 것 같다. 그러면 그러는 나는? 나는 아직도 아쉬움이 더 큰 어정쩡한 농사꾼이다. 

    

봄이 오면 우리 집은 바쁜 나날이 시작된다. 혹시 손바닥만 한 땅뙈기에서 농사지으며 바쁜 척은 혼자 다 한다고 나무라실 지도 모르겠다. 맞는 말씀이다. 과수원 전지야 3월 중순이면 끝나기 마련이고, 적과작업은 작은 사과가 맺히는 5월 중순이 되어야 시작하니까 말이다. 이론적으로는 두 달 사이에 두 차례만 방제를 하면 끝이니 여유가 있는 시기임에 틀림없다.  

    

텃밭 농사도 마찬가지다. 전문농가야 봄 내내 바쁘겠지만, 우리 집처럼 작은 텃밭 농사는 4월 중순까지만 밭을 갈아주면 된다. 모종을 만드는 일도, 모종을 밭에 옮겨 심는 일도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엄청 바쁜척하는 이유는, 시골에 살려면 농사 이외에도 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화단이 요 모양이니 그냥 모른 체하고 지낼 수가 없었다.

도시의 아파트라면 집안에만 신경을 쓰면 되겠지만, 단독주택은 집 밖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다. 더구나 집 전체가 고스란히 햇빛에 노출되고 온통 풀로 둘러싸인 시골의 단독주택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집을 지은 지 15년이 지났으니 주변이 말끔히 정리가 되었을 법도 한데, 이상하게 아직까지도 눈에 거슬리는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들도 끊임없이 생겨난다. 

     

해마다 봄이 되면 우리 집은 한바탕 공사가 벌어진다. 나무를 새로 심기도 하고, 마당 여기저기를 손본다. 기껏 키워놓은 과일나무가 맛이 없으면 베어버리기도 하고, 동해를 입거나 병으로 죽은 나무를 뽑아버리기도 한다. 10여 년 된 밑동이 굵은 나무를 뽑아버린다는 건 대공사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맛있다는 신품종 유실수로 채워 넣곤 한다. 나중에 보면 신품종이라고 다 맛있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어디 그것뿐이랴. 이때는 목공작업을 하기에도 딱 좋은 날씨다. 날씨가 춥지도 덥지도 않으니 밖에서 일하기도 좋고, 모기나 다른 벌레들이 극성을 부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해마다 이때쯤이면 농사는 뒷전이고, 항상 집 밖에서 무엇인가를 만들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예전에 방부목으로 비닐하우스를 지은 것도, 동생네 차고를 만들어 준 것도 4월이었다.     

공사 후 화단이 이렇게 바뀌었다. 때맞춰 꽃도 화사하게 피었다.

올해도 해야 할 일들이 많아 보였다. 지난겨울 지인으로부터 얻은 보도블록을 뒷마당에 깔아주어야 하고, 새로 구입한 사각형 돌로 화단도 만들어야 한다. 작년에 죽은 대추나무와 단풍나무뿌리도 뽑아내야 한다. 톱으로 죽은 나무의 밑동만 잘랐을 뿐 아직 큼직한 뿌리가 땅속에 남아있으니 그동안은 땅을 갈아줄 수도 없었다. 또 꽃밭과 마당사이에 자갈로 만든 경계석은 흙에 묻혀 보이지 않은 지 오래됐다. 웬만하면 모른 체하고 편히 지내려 했는데, 이젠 더 이상 못 봐줄 지경에 이르렀다. 

    

날씨가 풀리자마자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뒷마당 보도블록 공사였다. 이 작업은 힘은 좀 들지만 나 혼자서 해 낼 수 있는 일이다. 흙을 걷어내고, 바닥의 수평을 잡은 다음 부직포를 깔고, 블록을 망치로 두드리며 고정시키면 된다. 방법은 간단한데, 그동안 다져진 흙과 자갈들을 걷어내는 일이 만만치가 않았다. 낑낑거리며 땅을 파는데 아내가 밖으로 나왔다. “애고, 허리도 쑤시고 힘들어 죽겠네!”라고 앓는 소리를 했더니 아내는 "천천히 쉬면서 해!"라며 잠시 걱정해 주는 척하더니만 재빨리 집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자칫하면 붙잡혀 같이 일해야 할 테니까. 이젠 아내도 눈치가 보통이 넘는 것 같다.     

보도블록을 깔아준 뒷마당 모습.

그다음 앞마당을 손봐야 하는데, 여기서 일이 멈췄다. 먼저 죽은 나무뿌리를 뽑아내야 하는데 이 작업은 삽과 곡괭이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또 나무뿌리를 뽑으려면 땅 주변을 온통 파헤쳐야 하니 다른 작업을 미리 할 수도 없었다. 잠깐이면 끝날 일인데 비싼 돈 주고 굴착기를 부르기도 아깝고, 또다시 작은 굴착기를 갖고 계신 형님께 부탁을 드려야 했다.  

   

그런데 이때쯤이면 전문 농사꾼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다. 작업하는 시간이야 잠깐이라지만 트럭에 굴착기를 싣고 왔다 가려면 몇 시간은 후딱 지나간다. 부탁하는 처지에 말도 못 하고 끙끙거리는데 며칠 만에 작은 굴착기를 실은 트럭이 덜덜거리며 나타났다. 


“와, 바쁘실 텐데 빨리 와 주셔서 감사해요!” 감격해하는 나에게 형님은 “빨리 나무뿌리를 뽑아야 다음 일을 할 수 있잖아!”하신다. 역시 일머리를 아시는 분이니 바쁜 시간을 쪼개어 먼저 달려오신 것 같다. 도움을 받았으니 나는 무슨 일을 도와 드려야 하지?     

대추나무를 뽑아낸 자리에 보도블록을 쌓아 밭으로 만들었다.

대추나무가 있던 곳의 화단은 자갈로 되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뒷마당에 깔고 남은 보도블록을 사용하기로 했다. 우리 집은 공사에 맞춰 자재를 구입하기보다는 항상 남아있는 자재에 맞춰 공사를 하는 것 같다. 반죽한 시멘트를 발라주며 이곳 화단을 만드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또 소나무 주변에는 사각형 돌을 쌓아 경계를 만들어주었고, 앞마당 화단에도 둥근 자갈을 이용하여 경계석을 만들었다.

       

이 작업을 할 때 한 가지 요령이 있는데, 시멘트 반죽을 절대로 질퍽하게 해서는 안 된다. 물을 조금만 넣어 푸석푸석한 상태로 시멘트를 바닥에 깔아주고 돌을 고정시켜야 한다. 그래야 일하기도 편하고, 혹시 나중에 마음이 변하더라도 돌을 쉽게 떼어낼 수 있다. 큰 힘을 받는 것도 아니니 시멘트는 조금만 사용해도 된다.   

소나무 아래의 잡초를 뽑아버리고 사각 돌로 경계를 만들었다.

아직까지 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다. 앞마당 자갈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잡초들을 제거하려면 빨리 천연제초제를 만들어 뿌려줘야 하고, 조금 남은 공사도 마무리해야 한다. 아내가 새롭게 꾸민 화단을 보더니만 감탄을 했다. “와, 우리 집 화단도 예쁘네!” 물론 다른 집 화단보다 더 멋있다는 건 아니고, 예전에 비해 나아졌다는 말이다. 힘은 들었지만 아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기는 하다.

     

올봄도 예년과 같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말끔해진 마당과 꽃밭을 보면 고생한 보람이 있다. 초록색 잎만 보이던 꽃밭에는 어느새 수선화 꽃이 노랗게 피었고, 빨간 튤립도 탐스러운 꽃을 피웠다. 노랗고 빨간 꽃들이 파란색 울타리에 어우러져 더욱 화사한 것 같다. 머지않아 아이리스도 보라색 꽃을 피우며 한껏 아름다운 자태를 뽐낼 테지. 


이제 우리 집 마당도 좀 예뻐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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