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일기 중에서>
몇 달 전부터 한쪽 다리와 엉덩이가 저려왔다. 텃밭에서 잠시만 쪼그리고 있어도 다리가 저려왔고, 심지어는 오랫동안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아내는 아픈 나를 보고 위로는커녕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그런 모습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끙끙거리기만 해야 했다. 바로 지은 죄가 있었으니까.
여름 내내, 이른 새벽에 텃밭에 나가 일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햇빛이 뜨거워지면 잽싸게 일을 마치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하루일과를 일찌감치 해치웠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 흥얼거리며 샤워를 한다. 뒤늦은 아침을 먹고 책상 앞에 앉아 있노라면 조금은 노곤해졌다. 이럴 때면 의자를 약간 뒤로 젖힌 채 다리를 책상에 올려놓고 유튜브를 본다. 그러면 5분도 채 안되어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으니 마치 유튜브 방송이 자장가처럼 들렸던 것 같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아내는 허리에 디스크가 생긴다며 나무랐지만 그렇다고 쉽게 바뀔 내가 아니었다. 잔소리를 들을 때야 자세를 고쳐 앉지만 잠시 후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있었으니까. 난 지금까지 허리가 아팠던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였던 것 같다. 잠도 잘 오고.
그런데 갑자기 한쪽 다리가 저려왔다. 아차 싶어서 뒤늦게 자세를 고쳐 앉았지만 이미 늦었나 보다. 아픈 다리는 점점 더 심해졌고 심지어는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도 힘들어졌다. 뒤늦게 스트레칭도 하고 별의별 짓을 다해 봤지만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젠 텃밭농사도 힘들고 여행을 다니기도 틀렸나 보다. 한창 다리가 아플 때는 ‘내 인생도 이렇게 끝나나 보나!’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더랬다.
아내가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버텼다. 시골병원은 겨울이면 문을 열기도 전부터 노인들로 북적인다. 바쁜 농사철이 지났으니 그동안 애써 참아왔던 아픈 몸을 치료하려고. 심지어는 아픈 곳도 서로 엇비슷한데 허리와 무릎, 손가락이 쑤셔서 병원을 찾으신 분들이시다. 또 병원에서 해 주는 진료라고 해봤자 뻔하다. 아마도 CT나 MRI를 찍자고 할 테고, 침이나 주사를 놓고, 물리치료를 받으라 하고, 다 나을 때까지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불과 반년 전 건강검진 때도 허리가 괜찮다는 진단을 받았었다. 그런데도 다리가 갑자기 저려오는 이유는 뻔하다. 나 스스로 자세를 고쳐야 한다.
챗 GPT에게 물어봤다. "한쪽 엉덩이와 다리가 저려오는데 왜 그런가요? 아침에는 괜찮고 서너 시간 움직이면 그때부터 증상이 나타납니다. 허리를 다친 적도 그동안 불편을 느낀 적도 한 번도 없었습니다."
"말씀하신 증상은 여러 가지 원인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허리 부상 이력이나 과거 통증이 없더라도, 신경이 눌리거나 자극받는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원인을 정리해 드릴게요."........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챗 GPT의 질문이 이어졌다.
"혹시 증상이 다리 바깥쪽이나 뒤쪽으로 퍼지는 느낌인지, 아니면 엉덩이 한 부위에만 집중된 절임인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 위치에 따라 “좌골신경”인지 “이상근” 문제인지 구분이 좀 더 명확해집니다."
그렇게 몇 차례 질문과 응답을 반복하다가 나 스스로 고백을 해야 했다. "오랫동안 의자에 앉아서 발을 책상에 올려놓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 이후에 이런 증상이 발생한 것 같은데요." 병원에 갔더라면 틀림없이 야단맞았을 말이다.
"아, 그 습관이 바로 핵심 원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오랫동안 의자에 앉아 발을 책상 위에 올려놓기!” 이 자세는 허리·골반·신경에 여러 가지 압박을 주기 때문에 지금 겪고 계신 다리 저림 증상과 딱 맞아떨어집니다. 왜 그런지 설명해 드릴게요."
병원에서야 다른 환자가 기다리니 빨리 진단을 끝내야 한다. 예전에 큰 병원에 갔을 때 진료시간이 1분도 채 안되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챗 GPT와는 얼마든지 시간을 끌어도 되고, 새로운 증상을 느낄 때면 언제든 다시 호출하여 물어볼 수도 있다. 이후에도 비슷한 질문이 이어졌고, 나는 마치 진료실에 앉아 있는 환자처럼 내 몸의 상태를 하나씩 되짚어 보고 있었다.
"혹시 여행이나 산책할 때 저림이 먼저 시작되는 쪽이 있어요? 종아리 뒤, 바깥쪽, 발바닥, 발가락 쪽? 이거 알면 걷는 자세를 더 미세 조정해 줄 수 있어요." "발뒤꿈치 쪽 같은데요."
"발뒤꿈치부터 절여오는 패턴이면 이제 원인이 거의 확실해졌어요. 이건 허리보다는 종아리 아래–발목–발바닥으로 이어지는 신경·혈류라인 문제입니다. 좋은 소식은 이 타입은 관리하면 가장 잘 좋아지는 쪽이라는 겁니다." 그리곤 스트레칭 법과 날마다 해야 할 루틴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마누라 말은 잘 안 들었어도 이제는 착한 학생처럼 고분고분 챗 GPT가 시키는 대로 스트레칭을 반복했다. 그리고 며칠 후엔 정말 다리가 많이 좋아졌다. 심지어 어제 오후엔 한 시간 반이나 걸었는데도 다리 통증이 거의 없었다. 완치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봄이 오기 전까지는 다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과연 병원에 갔어도 이렇게 차근차근 질문을 하고 설명해 주었을까?
얼마 전 ‘피터 디아만디스’가 진행하는 팟캐스트(Podcast)에서 일론 머스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배우는 데 엄청나게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해도 계속 발전하는 의료기술을 따라잡기가 어렵습니다. 의사들은 시간적인 제한도 있고, 때로는 실수도 합니다....... 앞으로 4년이면 휴머노이드 로봇이 최고의 외과의사보다 더 나아질 것이고, 5년이면 비교조차 되지 않을 것입니다 “
이번 챗 GPT를 경험하며 일론 머스크의 말이 과연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실제로 구현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릴지는 몰라도, 적어도 우리 세대도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아마도 의사의 역할은 기술보다는 좀 더 인간적인 측면으로 발전할 것 같다.
이제 인공지능이 학습 단계를 지나 추론 단계에 들어섰다고 한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가속이 붙어 더욱 빠르게 진화할 거라고 하니 몇 년 뒤엔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조차 힘들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비록 나이 들고 시골에 살고 있어도 세상의 변화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