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의 글은 아닙니다.
'저 선배는 왜 연애를 안 할까? 외모도 빠지지 않고 성격도 좋아서 인기 많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던 언니들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서른여섯, 그 나이가 되었다.
해외로 나와서 그런 걱정을 많이 듣고 있다. 여직 결혼 안 하고 뭐했어?
한국이야 요즘 시대가 많이 변해서 이런 염려가 덜하지만, 해외에서 오래 사신 분들은 한국을 떠나올 그 당시의 가치관과 신념과 생각들에서 변함이 없으시다. 조금 더 보수적이시다.
'요즘엔 다 그래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그 뒤에 이어질 레퍼토리가 너무 뻔하기에 그저 나는 "그러게요 하하"하고 넘기게 된다. (나는 '그러게요'를 참 좋아한다. 언쟁한다고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을 일에 굳이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는 않을 때 참 쓰기 좋은 말이다.)
사실 요즘에 그렇다는 것도 '케바케 사바사'다. 내 주변에는 20대 후반 혹은 서른 갓 넘기자마자 결혼해 애들 둘씩 있는 동생들도 있고, 반면에 아직 싱글인 친구들도(언니, 동갑, 동생들이) 드글드글하다.
내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주로 일을 하며 알게 된 경우가 많은데, 트렌디하고 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종사하는 업종이어서 그런지 아직 싱글라이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게 그 이유인 듯하다. 게다가 끼리끼리 논다는 말을 참 실감한다. 같은 일을 했더라도 친한 사람들 중에 싱글이 많고, 그냥 무난하게 지내던 사람들은 결혼을 거의 했다. (사실,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아직 싱글인 건지 싱글이어서 친하게 된 건지 조금 헷갈릴 때도 있다. 닭이 먼저였나 달걀이 먼저였나)
하지만 이런 현상이 비단 내 주변 일만은 아니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최근 방영했던, 혹은 방영 중인 드라마만 보더라도 '내 나이 때의’ 싱글인 사람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것을 꾸준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방영 중인 <오 마이 베이비>의 주인공 '장하리'는 나이 39세의 매거진 차장이다. 일만 하다 보니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고 하는데, 극 중에서도 누군가는 '저 여자는 왜 저렇게 살까'라는 시선을 보내지만 그녀의 주변에는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멀쩡한 남자가 셋이나 있다. 그리고 남주 또한 41세로 포토그래퍼로 (드라마지만) 멀끔한 인상과 키와 능력을 갖춘 인물이다. 이렇게 적는 이유를 솔직히 말하자면 어딘가 하자가 있거나 한 인물들만 '그 나이에 싱글'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어떤가. 의사 친구 다섯 명의 스토리를 담은 드라마인데, 그중 셋은 미혼에 둘은 돌싱이다. 좀 특이한 성격들이 있긴 하지만 모두가 개성이 있고 사랑스럽다. 올해 초 방영했던 <이태원 클래스>, <사랑의 불시착>도 마찬가지다.
(주변에서 보기에 뭐 하나라도 크게 빠지지는 않는 것 같은데) 아직 싱글인 사람들을 보면 몇 가지 대표 유형이 있다.
1번 유형, 혼자서도 너무 잘 지낸다. 혹은 여사친들이랑 너무 잘 논다. 혹은 남사친들도 그저 너무 친구로 잘 어울린다.
2번 유형, 아직은 나의 싱글라이프가 소중하다. 결혼은 하고도 싶지만 타인에게 나를 맞추는 귀찮음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다. 아직은. 2-1번 유형, 연애에 에너지를 뺏기고 싶지 않다. 직장생활, 자기 계발만 쫓기에도 삶이 고되고 피로하다. 그래서 타인에게 나를 맞추는 귀찮음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다.
나의 경우에는 그 당시에 결혼 적령기였던 30대 초반에 몇 년 연애하던 남친이랑 헤어지고 나니 중반이 되어 있더라. 그다음에 만난 친구는 비혼주의자의 연하남이었다. 만날까 말까 고민하다 마음은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만났지만, 호기심은 잠시였고 다시 정신을 차렸다. 나에게는 미래에 결혼계획이 있었고, 그에게는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러고 나서 내 현실에, 내 마음에 충실하며 하루 하루 살다 보니 지금이 되어 있었을 뿐이다.
30대 중반 싱글의 불편함이라고 한다면 '주변의 우려'가 있겠다. 그런데, 생각보다 적다. 요새 추세가 많이 바뀐 덕일 것이다. 물론 걱정하는 어르신들도 계시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러워하고 이런 삶을 예뻐라 하신다. (지금 이 나이에 나만의 삶을 마음껏 즐기는 삶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 부러움을 다소 즐기고 있다.
그럼 다 좋기만 하다는 건가요? 그건 아니다. 나도 간혹 가다 아 내가 잘 살고 있는 게 맞나? 나 뭐 잘못했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불편한 마음은 주변에 나와 같은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잊고 있다가도 간혹 나보다 어린 후배들의 결혼 소식이 들릴 때 다시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큰, 그리고 현실적인 걱정이 있다. '결혼 적령기' 보다는 '임신 적령기'에 대한 것이다. '임신도 어렵지만 노산은 아기한테도 안 좋다던데'라는 그 걱정 말이다. 앞서 언급했던 드라마 <오 마이 베이비>에서는 이런 고민을 주요 내용으로 다룬다. (드라마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해 주세요 제발요 작가님.)
그런 현실적인 이유로 주변의 몇몇 분들은 "그래도 안 할 거 아니면 빨리 해야지 (아기도 낳아야 하고)"라고 말씀을 주시기도 한다. 맞다. '안 할 거 아니니까 좋은사람 만나서 얼른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나도 한다. 근데 여기서 '얼른'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사람' 아니던가? 우리는 이제 평균수명 100세를 넘어서 120세까지 바라봐야 하는 세대 아닌가. 이혼, 졸혼, 기타 등등의 이유로 결혼 생활을 끝내는 경우도 많지만 어쨌거나 한 50년은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서 하는 결혼이 하고 싶다.
그래도 결론은, 그런 걱정이 있을지언정 지금 이 시기에 대한(서른 여섯에 싱글린 것에 대한)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지금 이 나이에 싱글이어서 누리고 있는 것도 많거든. 후에 분명 아쉬움은 있겠지만 그건 그저 아쉬움일 뿐이다. 안 살아본 삶에 대한. 결혼을 일찍 했던, 늦게 했던, 안 했던, 모두가 갖게 되는 아쉬움.
사람들은 모두 목적하는 바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실패자라는 낙인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보는 것은 '그때 그 시점의 그 결과'일뿐이다. 그 역시도 그저 '보는 입장'에서의 개인의 잣대를 들이대기 마련이다. 인생은 어느 한순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연결된 시간을 살고 있고, 그 과정 역시도 내 인생의 한 부분 부분들인데도 말이다.
내가 만약 마흔이고 쉰이었는데도 결혼을 못했다고 하면 마냥 안타까워만 할 것인가? 내가 지금 이 30대의 싱글인 시간들을 너무나도 행복하고 찬란하게 보내고 있는데 나이 딱 40, 50일 때 그 순간만 보고 평가할 것인가?
나는 아직 결혼을 안 한 혹은 못한 30대 중후반 싱글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인생을 묵묵히 가고 있을 뿐이다.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일이지만 그저 그 순간이 올 때까지 묵묵히. 조급해하지 않고. 충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