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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스민 Jun 21. 2020

대한민국 밖에서 산다는 것.

얻은 것과 잃은 것.


퇴사 후 1년, 한국을 나오기로 결심했다. 익숙하고 (모험의 필요가 없었기에) 안전했던 사회에서의 탈출이면서 동시에 새 땅에서 새로운 시작을 위한 도전이었다. 라고는 말하지만 탈출이 더 절실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제 그렇게 한국 밖에서 살아낸지 만 1년이 지났다.


사실 이 글은 작년 11월쯤에 쓰여지다 말고 작가의 서랍 안에 잠들어 있던 글이다. 써야지, 써야지. 발행해야지, 해야지 하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코로나 바이러스가 닥쳤다. '한국에서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는 전과 달라졌다. 한국 내에 사는 사람들에게나 한국 밖에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나에게도 역시 그러했고, 이 글을 이어 나가고 마무리짓는데 망설임을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 본다. 코로나 전과 후에 관계없이, 그리고 특정 나라에 국한되지 않는. '한국에서 안 사는' 사람들이 느낄법한, 최대한 보편적이고자 하지만 결국에는 나의 주관적인 이야기다.



얻은 .


1-. 여유: 바쁘지 않을 수 있는 마음

대한민국은 단기간 내 급성장, 급변했던 나라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남들만큼은 열심히 살아야 했고, 이러한 삶의 모습은 관성이 붙으면서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멋지고 대단한 모습이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버겁고 피로한 삶이었다. 퇴사도 해봤고 반 백수로도 지내보면서 한국 내에서 여유를 찾아보고자 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모두 열심히 숨 가쁘게 사는 환경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나 역시도 조바심이 나더라.


그렇기에 경쟁사회에서 벗어나고자 탈한국을 선택했던 내가 지금 가장 누리고 있는 것도 바로 여유다. 등수를 매겨 혹은 점수를 매겨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을 여유, 오늘 주어진 햇살과 오늘 지나가는 바람을 감각과 감성으로 느낄 여유, 내가 지금 조금 느리고 지금 조금 실수를 하더라도 괜찮을 수 있는 여유, 뭐 그런 것들.


2-. 여유: '기꺼이' 베풀 수 있는 마음

사실 해외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은 첫째도 여유, 둘째도 여유인데, 두 번째는 타인에게 느끼는 여유다. 여유를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나눠주는 여유 있는 마음이 나는 좋다.


아파트에 들어설 땐 우리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저 멀리서 뛰어나오면서 문을 열어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내가 뭐 대단하거나 부유하거나 그런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나를 사람 대 사람으로 '기꺼이' 반겨 주는 것이다. 다른 곳을 가더라도 앞서 가던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가다 한 3m 거리 뒤에 있는 나를 발견하더라도 문을 잡고 '기꺼이' 기다렸다가 들어간다. 우버를 탈 때 조금이라도 무거워 보이는 짐이 있으면 '기꺼이' 나와서 캐리어를 받아 실어 주신다. 업무차 업체에 연락을 해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물론 바쁜 와중 이런 여유에 가끔 속이 터지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다른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나도 너무 바빴다. 앞만 보고, 목적지만 보고, 목표만 보고 돌진하기 바빠 옆, 뒷사람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을 나와서야 느꼈다. 그렇기에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을 '기꺼이 해 주는' 사람들의 여유가 더 감사하고 부러울 따름이다.


3-. 다른 경험, 다른 감각

익숙하던 환경에서 벗어났으니 당연히 겪게 되는 이전과는 다른 경험들, 그 경험 속에서 다른 감각이 깨워지고 다른 가치관들이 들어온다.(흔히들 말하는 '더 넓은 시각'이 이와 유사한 개념이겠다) 그러는 와중에 내가 맞다고 여겨온 생각들이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내가-같은 사회에 있던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단정 지어왔던 기준들 역시 우물 안 개구리 같은 편견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잘 살거나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걸 깨달은 지금의 내 생각은 더욱 넓어졌고, 내 삶은 더욱 자유로워졌다.



잃은 .


1-. 내 사람과 나누는 소주 한잔과 그 감성.

말해 무엇하겠나. 속 깊은 이야기를 하던 오랜 친구들이 옆에 없다는 것이 가장 그리운 점이다. 물론 여기서도 이 나라 친구들과, 새로 알게 된 소수의 한국인 친구들이 있지만 내 케케묵은 감성을 꺼낼 만큼 가까워지진 않았다. 열심히 살아낸 그 하루 끝에 친구를 만나 밥 한잔 술한끼 나누며, '하-' 하는 한숨을 시작으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 주위를 둘러보면 뒤에도 옆에도 다 비슷한 인생들이 앉아 있었다. 근데 그게 또 낙이었고, 서울의 고단한 낭만이었던 것 같다.(이렇게 말하면 너무 아재감성인가 싶지만 저는 분명히 서른여섯의 녀성이 맞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삼쏘가 너무 먹고 싶습니다.)


2. 돌이켜보니 열정이었던 것 같은 치열함

한국의 직장인이었던 시절, 하루하루를 굉장히 치열히 보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아등바등, 하지만 어떻게 보면 열정적으로. 그러고 나서 뭔가를 해내면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면 '아 오늘도 열심히 살았어'라는 생각을 하며 침대에 묻히곤 했다. 지금은 그렇게 치열하게 일하지 않는다. 여유롭고 만족스럽다. 하지만 열정으로 불태웠던 그 시절 또한 그립다. (그리고 이게 있어야 1번의 감성도 산다.)


3-. 편의, 서비스

외국에 나오면 한국은 참 깨끗하고 뭐든지 빠르고 편리한 나라라는 것을 실감한다. 이러한 점은 각종 서비스들을 누리면서 실감한다. 한국 밖에서(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불러온 나라들을 포함한 많은 다른 국가들 모두) 그 어떤 서비스 한 번 받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린다. 예를 들자면 은행. 내 차례를 기다려 통장 하나 개설하고 체크카드 하나 만드는데 두 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 외 클리닉, 통신사, 전화국(특히 인터넷 설치), 온라인 쇼핑 등등의 사례들이 있다.


4?. 패션감각

난 원래도 패션감각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그나마 있던 감각을 곧 상실하게 될 것 같다. 다른 글들을 봐도 해외 어디를 가도 한국만큼 잘 꾸미고 다니는 나라가 없다고 하던데, 내가 있는 이곳 또한 다들 주변 눈치 안 보고 각자 있는 옷으로 정성껏 꾸미고 (혹은 꾸미지 않고) 나오는지라 덩달아 눈치를 보지 않게 된다. 기준을 따르지 않아도 되니 마음은 참 편하다. 여기 와서 핫핑크 롱 원피스도 사고 평소 절대 안 사던 꽃무늬 하늘하늘한 블라우스도 골라 보았다. 그런데 가끔 고민스럽다. 눈에서 패션에 대한 미적 '기준'이 사라졌다. 이 옷을 이렇게 입으면 이게 예쁜 건가? 이상한 건가? 한참을 고민하는 때가 있다. 이러다 패션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나온 지 1년 정도 되니 한국에 있는 지인들이 이렇게 묻는다. "거긴 어때? 살만해? 한국에 돌아오고 싶진 않아?"


그럼 난 답한다. "살만해, 좋아, 행복해." 한국을 두고 나온 결정에 대한 약간의 자존심도 있고, 실제로 사는 곳이 내가 좋아하는 곳을 다 갖춘 곳이라 부심도 있다. (제가 사는 곳은 나중에.)


근데 뭐 다 좋기만 하고 다 나쁘기만 하고 그런데가 어디 있을까. 다 사람 사는 곳이 아니던가. 그래도 굳이 한국에서 살 때와 그 밖에서 살 때의 가장 큰 차이점을 정리하자면 이런 것 같다. 한국에서는 '뜨거움, 빅잼(혹은 보람)'이 나를 들었다 놨다 했었다면, 한국에 안 사는 지금은 '따뜻함, 소소한 행복'이 늪처럼 나를 도망갈 수 없게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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