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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용 Jan 20. 2021

'부캐'의 진정성

마스크 벗기, 혹은 여러 마스크 껴보기


새해 첫 기획회의의 이슈는 ‘마스크’였습니다. 일상 사물로서의 마스크부터 각자 거릴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고립에 대한 위험성 고찰, 그리고 심리적 마스크의 시기적절한 사용법까지. 코로나19를 겪지 않았다면 결코 익숙해지지 않았을 감염병 정보와 마스크의 방역 효용에 대한 얘기는 우리 생활에서 알고 있어야만 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기에 이번 이슈는 여러 사람에게 한 층 익숙한 얘기였을 듯합니다. 그중에서 주로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이슈의 문을 연 김경일 교수의 ‘심리적 마스크’에 대한 글입니다.    

  

김경일 교수는 마스크의 세 가지 의미를 언급하며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면서도 여전히 그 마스크를 통해 남에게 보이는 내 모습을 궁금해”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룬 성취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자신의 진짜 실력이 들통날 것이라는 생각이 ‘가면 증후군’인데, 이는 과도한 노출 때문이고 한 지점에서 생성된 불안이 다른 부분에까지 전이되어 “전반적인 자신감 저하”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노출을 피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미래에 대해 너무 많은 얘기를 아낄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에 자신이 썼던 마스크를 내려놓는 것이 좋다는 얘기입니다. 자신이 성공을 거둔 일과 좀 다른 분야의 작은 일을 시도하게 되면 그런 관점을 조정하여 불안감에서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겁니다.     


반대로 앞으로의 성취가 예비 되어있는 사람의 경우 ‘다양한 마스크’를 착용해볼 필요가 있다고 얘기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는 기간이 인류가 탄생한 후 가장 길어졌기 때문에 과거와는 다른 여러 자아를 일상생활 속에서 소화하고 꺼내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확장성”입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한국의 경우 “독특한 일인칭 대명사 사용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자기가 다니는 학교는 ‘우리 학교’라고 하며 무남독녀 외동딸도 자기의 아빠를 ‘우리 아빠’라고 부른다. 아예 나라 이름도 우리나라라고 하지 않는가. ‘내 나라’라는 표현을 쓰면 졸지에 눈총을 받을 수도 있다.”    

 

한국의 관계주의적 특성이 ‘우리’를 강조하고 그 속에서 부여하는 관계적 역할로 인해 시야가 좁아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정적인 관계적 역할에서 벗어나 소위 ‘부캐’를 만들어 새로운 종류의 관계나 환경에 자신을 적응시키는 것도 문제가 되는 상황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김경일 교수는 얘기합니다. “부캐는 언제 주로 필요하고 그에 따라 설정되는”지에 대해서는 인적 네트워크의 규모가 커질 때를 지목합니다. 즉 다양한 ‘우리’를 만나거나 먼 거리의 느슨한 관계를 만났을 때 말이죠. 이는 “적응력과 창조적인 결과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캐’가 유별난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거리를 두고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인데요,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먼 거리의 친구들”이 내가 당면한 문제를 보다 더 객관적이고 넓은 시야로 바라볼 수 있기도 합니다. 이 얘기는 내가 상대에게 그런 시선을 제공해 줄 여지가 존재한다는 얘기이기도 하겠지요.     


김경일 교수는 글의 말미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나하나의 마스크가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발상이다. 왜냐하면 그 각각이 우리 마음에 내재돼 있던 모습들이기 때문이다. 본캐라는 가장 두껍고 자주 쓰는 마스크에 눌려 있어서 쓸 생각을 못했던 것뿐이다.” 저는 이 대목에서 부캐가 지닌 진정성의 혐의를 온전히 벗길 수 있었습니다. 그 부캐마저도 나의 또 다른 모습이고, 그걸 상황과 관계에 맞게 대입할 수 있는 것이 한 가면을 고수하며 고착화된 자기 이미지를 감당해내는 것보다 훨씬 자유로운 일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고요. 그리고 개인의 다양한 태도를 포용할 줄 아는 사회 분위기가 보다 널찍한 품을 가진 사회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외에도 이번 호에서 출판에 관련된 다양하고 흥미로운 주제가 많았지만 그중 한 가지 글에 집중했습니다. 앞으로 보다 다양한 시선에 주목하여 읽고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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