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B2B 고객은 합체로봇(가제)'이라는 책 출간을 반드시 하기 위해 브런치를 시작했습니다.
1998년 군악대를 제대한 25살 당시, 필자는 '해외마케팅'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90년대 중반이었던 그때 당시만 해도, 해외마케팅에 뛰어들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당연히 밟는 수순과도 같은 코스가 있었습니다. 영어와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미국이나 일본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업무에 뛰어드는 것. 하지만 IMF를 전후로 한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필자는 '중국' 쪽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그곳에서 무엇이든 기회를 찾는다면, 분명 최소한 20여 년은 중국으로 먹고살 수 있으리라.’ 어린 마음에 이런 생각을 했죠.
저는 무작정 서울의 몇몇 신문사에 이메일을 보내고, 찾아가 돈을 투자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20대 중반의 철없는 대학생의 무모한 제안에 신문사 기자들은 제게 ‘왜’라고 질문을 던졌고, 오지 여행기를 연재해 드리겠다고 답하니, ‘어떻게’라는 질문을 다시 날렸습니다.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귀사의 게시판에 온라인으로 통해 연재하겠다.’ 90년대 중반이었던 당시 상황에서는 꽤나 신선한 제안이었고, 결국 필자는 한 군데의 신문사와 한 군데의 잡지사에 여행기를 게재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삼국지의 여정을 따라 중국 대륙 전역을 떠돌며 변화의 기운이 태동하는 드넓은 땅, 중국을 여행하고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긴 여행의 과정 속에서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대륙의 문화도, 환경도, 사회도 아니었습니다.
티베트, 라싸
티베트의 성도, 라싸의 길거리 좌판에 놓인 천 원짜리 싸구려 액세서리였죠.
분명, 일본 길거리에서 만원에 팔리던 것과 완전히 똑같은 액세서리였는데, 열 배의 가격 차이라니! 게다가 소매가로 천 원이었으니, 도매가는 더 저렴하리라. 필자는 액세서리의 제조공장을 찾아가 500원에 불과한 도매가를 확인한 후, 상식적으로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에 착수했습니다. 현지에서 도매가로 사들인 액세서리를 일본으로 가져가 판매하는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외국인 여행객들이 ‘와, 이거 우리나라에 가지고 가서 팔면 대박 나겠다.’라는 말만 하고 아무도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그때 큰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한번 해봐야겠다.’
일본, 오사카
티베트에서 버스와 기차로 이동해 베이징, 텐진항을 거쳐 일본으로 가는 페리로 고베에 도착한 후, 오사카 길거리에 좌판을 펼쳐두고, 인도 옷을 입고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국적불명의 외국인이 판매하는 액세서리.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단 며칠 만에 가져간 물량들을 모두 판매할 수 있었고, 남은 여행 일정을 풍족하게 보낸 후에도 500만 원 정도의 거금을 손에 남길 수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물건을 사들여 외국에 판매하는 과정. 금액은 크지 않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필자는 실제로 이루어지는 ‘무역’과 ‘마케팅’에 대한 감각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작지만 큰 경험들이 기사화되고, 좋은 기회들이 연이어 다가온 끝에, 저는 인도와 네팔 현지의 물건들을 백화점에 납품하는 회사를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돈이 살짝 보일 듯하는 곳에도 경쟁은 찾아오는 법, 시장이 점차 레드오션화 되어갔고, 저는 할 수 없이 사업을 접고 취업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취직했던 중소기업에서 해외마케팅, 세일즈 업무들을 수행하게 됐고, 30대 초반의 나이에 대만 지사장이라는 역할도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를 돌이켜보면 정말 두려웠습니다. 주어진 일이 능력에 비해 너무 큰 역할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B2B 마케팅과 관련된 서적과 자료들을 미친 듯이 찾아보았지만, 당장 내일부터 활용해야 하는 제게 실질적으로 실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자료는 찾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자료들이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B2C 관련 내용에 치중되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필자는 현업으로 뛰어들어 많은 경험과 실패들을 마주하며 체득해 나가야만 했습니다.
긴 시간이 흘러 다행스럽게도 국내 중소기업 소속으로, 세계적인 대만 반도체 제조업체인 TSMC를 개척해 내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고, 이런 경험과 경력을 기반으로 B2B 산업에 대해서 조금씩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이때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이 'B2B 고객은 한 덩어리가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한회사, 한 조직에 있더라고 직무와 역할에 따라 니즈가 다르고 조직 내에서도 대립할 수 있고, 이해관계도 다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현실이 저에게는 마치 머리, 두 팔, 다리, 허리에 조종석이 분리되어 움직이는 로봇같이 느껴졌습니다.
B2B고객은 합체 로봇 < 직접 그린 삽화>
2012년, 기업교육과 컨설팅 사업을 시작한 후, 12년이상 필자는 B2B 마케팅에 대한 기본을 강의해달라는 수많은 요청을 받아왔습니다. 그런 강의에 응하여 수강생들을 마주할 때마다, 좀 더 쉬운 자료와 교육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습니다. 해당 분야가 잘 체계화된 일본의 서적들을 둘러보아도, 철저히 이론 중심적인 대학교재 스타일의 서적이거나, 본질에 접근하는 것보다는 영업마인드만 강조하는 서적이 많았습니다. 이에 필자는 B2B의 최전선, 당장 내일부터 실무에 뛰어들어야 하는 지망생들을 위해 실제 사례에 기반한, 조금 더 쉽고, 친절하게 쓰여진 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집필을 시작하였습니다.
B2B 마케팅에 대한 막연함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부디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