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들께서 현재까지 하시던 일을 그만두시고, 갑자기 사정이 생겨 보일러 회사에 영업사원으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당신에게, 사장은 면접 자리에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보일러를 가장 ‘빨리’, ‘많이’ 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 이런 상황에서, 열정이 가득한 당신은 누구에게, 어떻게 보일러를 판매한다고 하실 겁니까? 요즘 유행하는 스마트 스토어를 개설하고, SNS 마케팅, 바이럴 마케팅, 유튜브를 통해 홍보한 후, 유명 연예인을 섭외하여 CF를 찍고 소비자들을 유혹하여 판매하실 겁니까?
만약 이와 비슷한 계획을 세우셨다면, 한번 생각해보세요. 이 경우, 누가 보일러를 구매하게 될까요? 아마도 보일러 교체를 고민하는 이들이 많겠죠? 이분들이 ‘빨리’ & ‘많이’를 확실히 보장해줄까요? 엄청난 시간과 노력, 비용을 들여 브랜드를 만들고, 시장을 개척하고, 자체 유통망을 만들어가는 전형적인 B2C 마케팅 방식입니다. 물건을 '비교적' 빠르게, 많이 파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B2B 마케팅 아닐까요? 여러분에게 주어진 특명을 완수하려면 한꺼번에 몇 백개, 몇 천개 단위로 보일러를 팔아야만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 B2B 마케팅은 두 가지만 떠올리시면 됩니다. 첫째는 ‘산업 (Industry)’입니다. 이 보일러가, 어떤 산업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일까요? 이 부분만 명확히 선정할 수 있다면, 판매전략 수립은 비교적 쉬워집니다. 보일러는 어떤 산업분야에서 많이 필요할까요? 바로 ‘건설’이겠죠?
이제 두 번째 단계를 선정해야 합니다. 바로 ‘적용분야 (Application)’이다. 보일러를 필요로 하는 건축물은 무엇일까요? 학교? 빌딩? 공장? 이런 곳에서는 공조시스템을 많이 활용하기 때문에, 대량의 보일러를 필요로 하진 않겠죠? 적용분야가 다를 겁니다. 다수의 보일러를 필요로 하는 건축물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바로 ‘아파트’겠죠? 당신이 특명을 완수하기 위해 공략해야 할 곳이 바로 ‘아파트’인 것입니다.
‘산업’과 ‘적용분야’를 고려하여, 당신이 공략할 ‘아파트’라는 키워드를 찾아냈습니다. 그러면 다음 차례는, 아파트를 건설하는 수십여 개의 회사들 중, 어디에 팔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큰 회사일수록 더 많은 보일러를 팔 수 있을 테니, 건설회사 중 가장 큰 곳을 찾아가 조직도를 파악해서 구매담당 부서의 담당 직원을 접촉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이 부분은 복합적으로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국내 1위의 건설회사 구매담당자라면, 시장에서 아무런 검증도 거치지 않은 당신의 보일러를 구매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열정과 신념을 가지고, 구매 담당자의 신뢰를 얻어내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면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요? 영업사원의 마음을 벅차오르게 만드는 판타지는 이제 그만 버립시다. 차가운 머리로 먼저 접근해야 합니다.
여기서 3C(Customer, Company, Competitor)가 나옵니다. 고객사(Customer)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러분이 속해있는 보일러 회사(Company)에 대해 파악해야 합니다. 자사의 레퍼런스가 충분하지 않으면 회사 소개, 제품의 특장점 소개에만 엄청난 시간을 들여야겠지만, ‘우리는 이미 현대건설에게 보일러를 납품하고 있습니다.’라는 마법 같은 한마디면 이러한 시간들은 생략되어버릴 것입니다. 어디에 팔 것인지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우리 회사의 규모와 레퍼런스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고객사의 규모가 클수록 판매할 수 있는 보일러가 많을 것임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거대한 고객사를 대상으로 판로를 뚫기 전에, 먼저 경쟁사(Competitor)를 분석하고 벤치마킹해서 소규모의 건설회사들을 상대로 실적(레퍼런스)을 만들어내고, 현금의 흐름을 창출한 다음, 이 자본력을 기반으로 시간을 가지고 큰 고객사를 뚫어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B2B 마케팅에서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이 부분은 차후 다시 상세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림 1. B2B 고객 구분 방법>
‘산업’과 ‘적용분야’를 결정했고, 우리 회사가 공략 가능할 법한 고객사의 우선순위 리스트도 뽑아두었습니다. 이제 어떤 회사들을 공략해야 할지 결정을 내릴 시간이 되었습니다. 리스트에 있는 모든 회사와 접촉해야 할까요? 시간과 자원이 풍족하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여러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시간과 노력에는 물리적 한계가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고객의 위치와 그들이 원하는 가격을 고려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보일러 회사가 지금 대전에 위치하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예상 판매 성공률, 가격대, 구매물량이 비슷한 두 회사가 있는데, 하나는 세종시에 위치하고, 하나는 부산에 위치해 있다면, 당신은 어디를 공략해야 할까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세종시에 위치한 업체입니다. 투자하는 시간 대비 성과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죠. 영업을 위해서 부산을 오가는 물질적, 시간적 비용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기에, 고객의 위치 또한 B2B 마케팅에 있어 간과해서는 안 될 요소입니다.
마케팅에 대해 미리 공부를 하셨던 독자라면, 고객사 선정을 위해 수행했던 과정이 STP전략과도 연관이 있음을 파악했을 수 있을 겁니다. STP 전략이란, 시장 세분화(Segmentation)와 타게팅(Targeting), 포지셔닝(Positioning)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인데, 마케팅 전략 중 하나입니다. 해당 전략의 필요성이 대두된 재미있는 마케팅 용어가 있는데, 바로’ 차이나 신드롬’입니다.
필자가 중국에 주재원으로 근무할 때 간혹 중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 한국인들이 술자리에서 ‘중국의 인구가 15억이니까, 100원짜리 물건을 하나씩만 팔아도 1,500억을 벌 수 있겠다’와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동석해있던 중국 지인들은 코웃음을 치곤 했죠. 그들이 말하길, 중국은 ‘유럽’이라고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민족도 다르고, 사람도 다르고, 역사도, 성향도, 심지어 언어도 달라 CCTV에 자막이 필요한 나라가 바로 중국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같은 물건을 모두에게 팔아 한번에 대박을 내겠다는 전략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의 화장품으로 남자, 여자, 10대~60대에 이르는 모든 고객들을 공략할 수 있다는 환상, 이것이 바로 차이나 신드롬 (China Syndrome)이다. 판매하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을 누구에게 팔 것인지 STP 전략에 따라 구체화해야만 합니다. 참고로 미국에서 원자로가 ‘노심용융’으로 녹아내리면 지각 아래로 끊임없이 파고들어 중국까지 뚫고 녹여버릴 것이라는 농담도 ‘차이나 신드롬’으로 불립니다. 두 의미 모두 황당하다는 의미로는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자, 여기서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B2B 마케팅에서 광고가 필요할까요? 대표적인 대한민국의 B2B 업체들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대림, 효성, 일진,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LG이노텍, 삼성전기, LS산전 이러한 기업들의 광고를 자주 보신 적이 있나요? 아주 특수한 경우들(기업광고, PR)를 제외하고는 없을 겁니다.
B2B 마케팅은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광고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광고가 필요한 B2B 디지털 마케팅은 별도로 설명하겠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합니다. 앞서 예시로 든 보일러를 생각해보세요. B2B 의존도가 높은 산업이었는데, 우리는 요즘은 잘 눈에 띄지 않는 모 가수의 2017년, 2018년 많은 TV광고들이 기억나지 않나요?
<그림 2. 2017년 귀뚜라미 보일러>
이는 산업도, 시장도, 트렌드도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변화에 1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1년, 6개월 단위로 더 짧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로 더 속도를 더하고 있습니다. 보일러 시장에도 마찬가지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80~90년대에 보일러는, 광고할 필요가 없는 물건이었습니다. 왜? 아파트 건설사에서 몇천 개 단위로 구매했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보일러들은 노후화됐고, 이제 보일러의 교체는 건설사의 책임이 아닙니다. 개인이 구매해야 하는 것이고, 구매자인 개인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B2C 방식의 마케팅이 필요해진 것입니다.
산업을 바꿔서, ‘타이어’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보일러와 비슷한 구조입니다. 자동차 타이어에는 두 개의 시장이 존재합니다. 새 차를 구매할 때,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나오는 타이어 (OE : Original Equipment)가 있습니다. 이것은 타이어 회사가 B2B 마케팅을 통해 자동차 제조사에 판매한 것입니다. 그런데, 타이어는 소모품이기에, 수명을 다하면 교체할 필요가 있죠? 이는 개인이 직접 구매하는 것(RE: Replacement )이며, B2C 마케팅의 영역에 해당하게 됩니다. 최근 국산차의 고급화와 고성능을 요구하는 소비자의 요구로 신차에 기본 장착되는 OE 타이어에 미쉐린, 피렐리, 굿이어 같은 수입타이어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한국타이어나 금호타이어, 넥센 타이어의 생산량이 감소해가는 국면에 이를 타개할 B2B 마케팅 방법을 고안해야 할 것입니다.
B2B가 B2C로 변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것이 요즘의 글로벌 시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