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하루이틀간 내 인스타에 계속 떠다니던 사안에 대해, 한국 재즈계의 거의 유일한 인플루언서인 재즈기자님이 영상을 찍고 법률적 대응을 위한 모금을 진행했다. 한두 가지 생각을 정리하려고 숨을 돌리던 중에 순식간에 목표 금액이 찬 것을 보니 적지 않은 이슈가 된 모양이다. 모르는 분들을 위해 사건의 개요부터 설명해 보자.
신촌에 위치한 한 재즈 클럽이 경영난을 겪다가 법원의 압류 절차에 들어갔는데, 당시 클럽에 보관하고 있던 한 연주자의 개인 악기(기타 앰프)가 다른 악기와 함께 압류당한 것을 알게 된 당사자가 인스타에 소식을 알리면서 순식간에 소문이 퍼져나갔다. 그러자 '연주자의 페이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더니 기어이 올 것이 왔다'는 식의 반응이 여러 명에게서 나왔고, 그에 대한 업주의 반박글도 올라왔었다. 개인적인 이유로 정신이 좀 없어서 꼼꼼하게 팔로우하고 있지는 못하는 상태였는데, 영향력이 적지 않은 사람이 공론화해 준 것은 큰 다행이다.
지금까지 삼십 년 가까이 활동하는 동안, 재즈클럽의 흥망성쇠를 수없이 겪어왔다. 뮤지션의 연주비 체불은 그 과정에서 늘 반복되는 이야기이다. 나 역시 체불, 미납 등을 여러 번 경험했으니 방관할 처지도 아니다. 안타까운 현실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낯선 얘기도 아니다. 연주자 개인과 마찬가지로 재즈 클럽 역시 버텨내고 살아남느냐, 아니면 주저앉고 마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내게는 재즈의 성지와도 같았던 이태원의 올댓재즈마저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생각해 보면 언제나 잘 될 것 같던 청담동의 원스인어블루문이 문을 닫은 지도 오래다. 천년동안도나 야누스는 끊임없이 자리를 옮겨 다니는데, 한동안 그럭저럭 운영이 되다가 또 어느 시점에 보면 위태로운데, 그것조차도 익숙할 뿐이다.
물가가 오르고, 특히 주거비가 말도 안 되게 치솟은 것에 비해 재즈 연주자들의 페이는 제자리걸음인 지 오래다. 내가 처음 돈을 받고 연주를 시작한 건 1999년 혹은 2000년 정도였는데, 당시에 3~6만 원 정도의 페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략 5만 원 언저리였던 연주비가 IMF를 거치면서 조금 주저앉았고, 그 상태로 한동안 지속되었었다. 그때는 웬만하면 재즈 클럽에서 연주자에게 저녁 식사를 제공했었고, 따로 주차비를 받진 않거나 아주 소액의 발렛비 정도를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건 공기업의 신입 사원 기본급이 100만 원이 안 되던 시절 얘기다. 짜장면 값 역시 이천 오백 원 정도 아니었을까?
25년 넘게 지난 지금은 대략 5~8만 원 정도인 것 같은데, 단순히 물가 상승만 감안해도 실질적인 페이가 훨씬 낮아진 수준이다. 거기에 더해 주차비나 교통비 등의 경비를 감안하면 꽤나 팍팍해졌다. 환율 탓에 수입해 오는 악기와 각종 소모품의 비용 역시 크게 늘었다. 재즈 뮤지션으로 살아남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주변에서 K-Pop 쪽으로 커리어를 이어가는 이들을 보면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갖지 않는 재즈 뮤지션들이 있을까 모르겠다. 음악적인 역량의 차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속해있는 시장의 크기에 따라 우리의 가치가 결정되는 느낌이니까.
'누칼협'이라는 밈 비슷한 단어가 떠돌 때, 작지 않은 좌절감을 겪었다. '그러게 누가 그런 일을 하라고 했어?' 하는 말은 이 모든 부조리함에 대한 반문을 입 막아버리는 기제였다. 부당한 빈정거림이 섞여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게 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원죄와도 같이 작용했다. 내 스스로 무덤을 판 게 맞지, 하는 자조적인 탄식이 새어 나왔다.
아마도 세상이 기대하는 것과 현실의 크기가 다른 데에서 오는 괴리가 이런 문제를 반복해서 일으키는 것이리라 짐작해 본다. '재즈'라는 아이템을 걸고 잘해보면 나름 사업성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주체 - 보통 재즈를 무척이나 사랑하던 이들이다 - 는 실제로 재즈 클럽을 시작하고는 예상보다 버거운 사업 모델에 허덕이게 된다. 매일 라이브 무대를 꾸리려고 하면, 아무리 작은 편성이라고 해도 연주비로 매 달 몇 백만 원의 추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 비용을 어떻게 손님에게 전가할 것인가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고만고만한 연주자들 사이에서 조금 더 나은 사람들로 무대를 채우려고 노력한다고 한들, 그들이 손님을 더 끌어들일 수 있는가 와는 별개의 문제다. 이 땅의 재즈 뮤지션들은 어느 정도 이상의 팬을 확보하고 있는 사람들이 극히 드물다. 막연한 대상으로서의 재즈를 소비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을 뿐이지, 특정 뮤지션의 음악을 꼭 듣고 싶어 하는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니까.
나 스스로 재즈 연주자니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뮤지션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것이 맞겠지만, 가끔씩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몇 명의 관객이 나를 보러 온 것일까, 막연한 재즈 클럽이나 재즈 연주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 말고.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온갖 부당함과 부조리에 분노하다가도 갑자기 입을 닫게 된다. 이들 중 정작 몇 명이 나의 팬일까, 올댓재즈, 클럽 에반스, 사운드독의 팬이 아닌 최은창의 팬은 몇이나 될까 하면서 말이다.
이십 년 전쯤인데, 우리나라의 클럽들도 일괄적으로 몇 만 원, 이렇게 페이를 지급하지 말고 공연 당일에 들어온 관객의 숫자에 따라 페이를 차등지급하는 것이 맞지 않냐고 따지고 다닌 적이 있었다. 클럽과 뮤지션 양 측이 윈-윈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클럽의 어려움은 관객이 없어도 매일 연주자 일인당 오만 원, 육만 원 하는 식으로 고정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했었다. 연주자는 내 관객이 아무리 많이 든다고 해도 한 두 테이블을 겨우 채울까 말까 한 다른 요일의 연주자들에게 내 연주비를 나누어 준다는 박탈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 게임의 유일한 승자는 딱히 자신의 팬 베이스는 없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연주를 하는 이들이다. 재즈라는 이미지를 소비하면 충분한 이들의 돈을 받아들이면 되는.
하지만 그들도 십 년쯤 이 활동을 지속하고 나면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시장의 논리에 지쳐갈 것이 분명하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조금 더 좋은 음악을 연주하고 팬을 확보해 나간다고 해도 딱히 달라지는 것이 없는, 나의 노력으로 이제 막 연주활동을 시작해 가는 이들의 보험 역할을 하는 것은 나에게, 또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말이다. 그 결과로 우리에게는 꿈을 꾸어볼 만한 미래가 없는 재즈 씬이 주어졌다. 십 년, 이십 년 애를 써도 늘 똑같은 수준의 아주 작은 보상만 있는 재즈 씬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늘 외부의 도움을 찾는다. 이런저런 공연의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라거나, 각종 공공기관의 지원사업의 힘을 얻기를 원한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음악이 듣는 이에게 가 닿아서 그들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기기를 그만큼 절실하게 갈망했었나 반성해 본다. 요즘 젊은 세대야 여러모로 나와 다를 것이니 함부로 단정 짓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나를 둘러싼 세대의 재즈 뮤지션들에게서 그런 태도를 찾기는 어려웠다. 우리가 하는 음악은 이러저러한 가치를 갖고 있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하는 탄식만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