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에게 젊음의 상징과도 같은 노래가 있다. 90년대 초중반이 나의 시절이라고 믿었던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는 Faye Wong이 그런 역할을 했었다. 두 편으로 개봉되었지만 사실상 하나와 다름없었던 [중경삼림]과 [타락천사], 그 흔들리는 영상과 Faye Wong의 목소리는 떨어지지 않는 하나의 덩어리로 존재했다. 아니면 Mamas and Papas의 <California Dreams> 일 수도 있다. 간주의 플룻 솔로가 지독히 낮은 음정으로 연주된 그 곡 말이다. 따지고 듣자면 문제겠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영화에는 완벽하게 기능하고 있었다. 제대로 음정이 맞았다면 그렇게 불안한 느낌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흐릿해진 기억을 더듬어가며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영화 [La Boum]이 있다. <Reality>라는 곡의 제목이나'Dreams are my reality'하는 가사도, 1981이라는 연도도 생각해 보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2026년이니 앞자리가 바뀌고도 한참이 지났다. 라디오를 통해 이 곡을 듣던 나는 고작해야 초등학생이었고, 소피 마르소 역시 설익은 동경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떤 세대에게는 그들의 젊음을 상징하는 곡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꿈이란 나의 현실이에요', 하며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가사가 그 어떤 역사보다도 더 실제적으로 느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린 시절의 내가 이해하지 못했더라고 해도.
이런 이야기를 꺼내게 된 건 빌리 아일리쉬 때문이다. 그녀와 피니어스의 음악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요즘 세대의 음악과는 좀처럼 공감하지 못하는 내게는 특별함이 있다. 일단 마음껏 좋아하고 난 다음 그 이유를 찾자, 하는 게 음악을 대하는 내 태도이다. 왜 좋아하는지 이유를 찾기 이전에 마음은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 감정적인 반응을 멈춰 세울 필요는 없다. 감사하듯 그 정서의 소용돌이에 휘감기는 것,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조금 정신을 추스르고는 '도대체 어떤 것에 나는 반응한 거지?' 하며 생각해 보는 것, 그게 내가 음악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워낙에 히트한 곡이다 보니 세대가 다른 내게도 몇 번 들려온 곡인데, 실제로 이 곡을 제대로 접한 건 Logic Pro에 딸려온 세션파일을 통해서였다. 나도 세션 파일을 열고는 이리저리 클릭해 가면서 곡을 들었었다. 어쩌면 세션파일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면 더 꼼꼼히 들었을 것 같긴 하지만.
벌써 십 년 가까지 지난 곡인데, 숨길 수 없는 두 남매의 천재적인 재능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거친 겉면이 느껴진다. 최근의 음악을 들어보면 그들이 얼마나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절대로 그들의 시작점을 폄하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이다. 거대하고도 드문 재능이 젊음 -어림에 가까운- 과 만나 제멋대로 세상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성장해 버리는 것, 그걸 지켜본다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빌리의 목소리는 정확하다. 정확한 음정이 좋은 음악을 규정하는 절대적인 요소라면 그녀는 일단 패스이다. 그녀보다 성량이 압도적인 가수라면 끝도 없이 늘어놓을 수 있겠지만, 우리는 마이크를 전제로 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코앞에 대놓은 마이크 앞이라면 속삭이듯 노래해도 상관없고, 어쩌면 크지 않은 성량이 더 유리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 코 앞에서 노래하는 것 같은 이미지를 구축하고 나면, 툭툭 던지는 한 마디에 듣는 이의 감정은 더 흔들리기 마련이다. 콘서트 홀의 중간에서 뒤쪽에 자리 잡은 채로 디바의 벨팅을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감상이다.
단지 '요즘 인기 있는 가수니까'라는 생각으로 넘기기에는 영화 속의 제임스 본드를 너무도 잘 그려내고 있다. [Barbie]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어쩌면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은 이 곡으로 이미 그 영화의 이미지는 내 머릿속에 가득하다.
유튜브는 내 머릿속을 다 들여다보는 듯이 <Birds of A Feather>를 주구장창 띄워주었고, 몇 번의 외면 끝에 기어이 그 영상을 클릭하고 말았다. 보자마자 한참 전에 보았던 영상이라는 기억이 나긴 했지만,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조금이나마 다른 사람이다. 이 곡과 이 노래를 처음 본 것인 양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캘리포니아 해변가의 빌리 아일리쉬라면 2020년대 중반의 젊음을 상징하기에 그보다 나은 예제는 없을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