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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창 May 18. 2015

Ave Maria Guarani

 


  그녀가 갑자기 아아아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당황한 것은 맞은 편에 앉아있던 남자였다. 제법 가까운 사이이긴 해도 남들의 눈이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열한 시 반을 지나 그 다음 날로 다가가고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맥주를 파는 곳이었다. 2010년의 가을에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무심함을 몸에 지니고 있어서, 그 짧은 소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 다들 흘끔, 하고 한 번 쳐다보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다시 일상의 피곤함과 서로 아는 누구의 뒷이야기와 그저 그런 연애담 -대개는 실패작인- 들을 이어 갈 뿐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로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음악은 어느새 사라 브라이트만을 거쳐 카펜터스로 지나간 뒤였다. I'm on the, top of the world lookin', 하는 후렴구가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비어 있는 소리의 공간을 채우는 것 이외의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선곡이었다. 무어라도 할 말을 찾아야 했던 그가 말했다.


  "노래 참 잘하네, 어렸을 때는 그런 생각 안 하고 흘려 들었었는데."


  그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뭐,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것이었다. 모른 체하고 말을 이어갔다.


  "마약 중독으로 죽었다고 했지? 아까운 목소리인데. 요즘 저렇게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될까?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부르는 목소리잖아. 물론 부르는 당사자는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거식증."


  자세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짤막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이만하면 어떻게든 대화를 끌어갈 만하다.  


  "저런 곡 하나 가지고 있는 사람의 기분은 어떨까? 저런 곡이라면 이젠 클래식이잖아. 내가 어렸을 때에도 옛날 노래였고 지금 어린 애들에게도 옛날 노래인데, 그런데 아직까지도 라디오에서 늘 흘러나오는 그런 곡. 음악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기억할 수 있는 그런 노래를 쓴다는 건 어떤 경험일까? 저런 곡을 쓴 사람이라면 밥 먹다가, 커피 마시다가 우연히 자기 노래를 듣게 될 거 아냐? 주변에 흥얼거리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지 한 번쯤 둘러보게 될까?"


  그녀는 고개를 잠시 들었다. 눈 옆으로 희미하게 눈물 자국이 있었다. 그의 시선을 약 십오 도쯤 비껴간 채 그녀의 시선이 벽면에 닿았다. 제법 나쁘지 않은 노란 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벽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이리저리 지나가는 이야기들이 얼마간 덧입혀지고 나서야 가능한, 차분한 느낌이 깃든 노란 빛깔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중얼거렸다는 것에 더 가깝긴 했지만, 음의 높낮이가 조금 있었다.

  

"아베마리이이이아-"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제법 굵은 눈물이 툭, 하고 청바지 위로 떨어졌다. 그는 더는 무슨 말을 이어 갈 수 있을지 궁리하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대신 손을 들어 머리를 긁적거리고는 크게 한숨을 쉬어 보았다. 갑자기 어깨 위의 공기가 무거워지고 있었다. 공기도 실제로 존재하는 그 무엇이라면 그것도 나름의 질량을 가질 법했다. 저 하늘 높은 곳부터 만유인력의 힘으로 겨우 붙잡혀 있는 공기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건물의 지붕에 내려앉은 공기의 무게를 그의 어깨가 감당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저 이 미터 남짓한 천정의 높이만큼 쌓인 공기의 무게만 받쳐 내면 된다. 다시 말하자면 그의 어깨에서 갑자기 힘이 쭉 빠져 버렸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이어가는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 그 사이에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다음, 이십 년쯤 지나 다시 만난다면 어떤 기분일 것 같아?"


  왜 저런 걸 묻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지는 없었다. 일단 어떻게든 이야기를 계속 풀어나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글쎄, 많이 어색하겠지만 그래도 제법 반갑지 않을까? 가끔씩 생각날 때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했을 텐데."


  "난 만나고 싶지 않아, 다시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입을 닫아버렸다. 이제 스물 남짓한 인생을 산 그녀가 누구와 헤어진 뒤 스무 해를 또 보내고 난 다음을 상상한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것을 생각하고 염려하기에는 너무도 아름다운 시기를 보내는 중이었다.  


  "다들 나이가 들 거 아냐. 눈가로, 코 옆으로 주름도 생기고, 허리에 군살도 붙고, 머리카락도 가늘어지고. 그렇게 만나서 이십 년 전의 당신은 참 아름다웠었는데, 하는 종류의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지는 않아."


  스물 언저리의 평범한 삶이 생각해 낼 만한 평범한 이야기였다. 어디서 읽은 글귀가 무의식의 저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중일까. 누구라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법한 이야기인데 그것이 지금의 그녀에게는 아주 절실한 모양이다. 그리고 또 한참이 지났다. 한 호흡 정도 말하고는 휴우, 하고 쉬어가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작정한 듯이 쏟아내었다.


  "다시 꺼내 듣기 어려운 음악이 있어. 몇 년이고 전에 들었던 음악인데, 수도 없이 듣고 또 들었던 음악인데, 이제는 잊고 지내는 음악. 근데, 그런데, 지나가다가 우연히 듣게 되는 거야. 그러면 또 며칠간은 갑자기 우울해지는 거지. 그때 그 시절의 기억으로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가슴 어딘가는  싸아해 지는 법이라서. 그 음악이 책장 어디에 꽂혀있는지 너무 잘 아는데, 눈을 감고 찾으라고 해도 한두 번만 더듬고 나면 집어낼 수 있는데, 그걸 꺼내서 플레이어에 넣기만 하면 되는데, 그럴 수 없는 거야. 그걸 듣는 순간 그로부터 또 며칠 동안은 땅이 꺼지라고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릴 테니까. 그 감정의 홍수란 게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걸 너무 잘 아니까 맞닥뜨리기가 두려운 거야. 그런데 마음 한편에선 또, 듣고 싶은 거야, 그 소리들을. 내가 너무도 사랑했던 그 소리의 움직임들을 다시 만나 보고는 싶은데, 그 다음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그래서 그냥 며칠을 묻어두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다시 들어보는 거야. 그리곤 여지없이 나가떨어지는 거지. 근데, 그런데 말이야, "


  또박또박 이어가던 그녀의 이야기가 채 끝을 맺지 못한 채 멈춰 섰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조금 더 낮아져 있었다.


  "그렇게 나에겐 소중했던 그 무엇이 저렇게까지 싸구려 취급을 당하는 걸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아니, 받아들일 수가 없어."


  알 듯 말 듯한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가 실수하거나 한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그녀는 그저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을 뿐이었다. 지나간 그 무엇인가에 대해.  


  "저건 가브리엘즈 오보라고, 알겠어? 목숨을 걸고 이과수 폭포를 거슬러 올라간 다음, 목에 겨눠지는 창끝이며 화살촉을 바라보며 부는 오보 소리라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아베 마리아 과라니가 이어져야 하는 거야, 원주민들의 합창이. 지금 이 세상은 너무 잘못 돌아가고 있는 거야. 어떻게, 어떻게 저게 넬라 판타지아가 될 수 있어? 나의 상상 속에서 모두가 평화롭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본다고, 영혼이 떠다니는 구름처럼 자유로운 세상을 꿈 꾼다고? 그게 말이나 되는 얘기야? 내 눈 앞에는 창끝을 바라보며 부들부들 떠는 한 신부님이 보이는데, 오로지 그 악기 하나에 목숨을 걸고는 부들부들 떠는 그가 보이는데, 그따위 가사를 붙여서 그렇게 값 싸게 불러 제껴도 되는 거야? 그저 괜찮은 멜로디니까, 인세 내고 가사 붙여서 노래하면 되는 거야? 그때 그 영화를 보고 울던 사람들은 다들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대체? 저 멜로디가 멈추고 나면, 그 다음에는 아베 마리아 과라니가 나와야 하는 거라고, 아-베-마, 리이이이아-. 스무 해 넘게 지나서 추한 모습의 넬라 판타지아로 만나게 되느니 차라리 듣지 않고 있는 게 훨씬 나을 뻔했어. 근데 어딜 가나 만나게 되는 거야, 나는 피하고 싶은데."  


  그리고 그녀는 정말로 울기 시작했다. 스물넷의 그녀가 소리 내어 마음껏 우는 동안 그는 1986년도에 나온 음악이 어찌 하다 그녀의 삶에 저토록 깊이 들어가게 되었는지 곰곰 생각해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여전히 흘끔, 하고 마는 사람들 속에서.    


  








Gabriel's Ob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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