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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창 Sep 21. 2015

Too Young To Go Steady

Keith Jarrett Trio





  한두 해씩 재즈 연주를 해온 기간이 늘어감에 따라 조금씩 깨달아 가는 게 있다. 그리고 그에 비례해 나의 부족함을 절감하게 되기에, 시간이 갈수록 ‘음악은 이런 거야, 재즈는 이렇게 연주하는 거지, 이런 게 훌륭한 연주야’하는 식의 글은 쓰지 못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 써보지 않고는 좀처럼 구체화되지 않는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려는 의도 반과, 나의 개인적인 깨달음이 내 주변 몇몇에게는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가질 것 같다는 느낌 반으로 용기를 내어 글을 써 본다.


  지난 가을은 온통 이 한 곡을 들으며 보냈다. 카 오디오에 걸려있는 시디를 바꾸지도 않았다. 자동 반복 기능이 없는 오디오라서, 곡이 끝날 때마다 버튼을 다시 눌러 처음으로 돌려가며 듣고 또 들었다. 그렇게 몇 번일지 모를 만큼 듣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 학교에 도착해 있곤 했다. 그러기를 한 계절이 지나가도록 반복했다. 한 곡 안에 너무 많은 음악이 담겨있었고, 나는 너무도 둔해서  한두 번, 하루 이틀 들어서는 도대체 그 빙산의 머리끝 조각 하나 조차도 다 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의 내 느낌은 이랬다. 이 연주는 키쓰 재릿이 한 게 아니다, 키쓰 재릿이라는 사람을 통해 인류 역사가 축적해온 예술적인 에너지의 총합이 그 일부를 드러낸 것이다, 키쓰 재릿은 그 통로일 뿐이다, 이런 종류의 생각. 물론 이 연주가 그런 예술성의 발현에 있어 유일무이한 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마일스일 수도 있고, 웨인일 수도 있으며 콜트레인일 수도 있고, 버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작년 가을에 이십 년도 전에 샀던 음반이 다시금 내게 다가왔으며-어떤 계기가 있었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 빙산의 머리끝을 조금 만져볼 수 있을 만큼 성장해 있었다. 지금껏 십 수년 간 음악을 탐구한 덕에, 이십 년 전보다는 음악을 더 잘 듣게 되었다. 수많은 키쓰 자렛의 음반과 그 연주들 중에서도 유독 이 곡은 특별한 것이 있다. 열  발자국쯤 뒤로 물러선다 해도 내게는 그렇다.


  이 연주를 들으며, 다시금 재즈 임프라비제이션은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미래를 예측하는 순간 현재는 없어져 버리며, 재즈 연주자는 미래를 예측하기보다는 과거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생각은 이전까지의 생각에 정 반대로 부딪히는 종류이다. 그러나 이 연주를 통해 내가 얻은 것은 이런 종류의 믿음이다.


  의식의 영역에서는 코드 진행을 잊어야 한다. 그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지금은 32마디 중 27마디, 어떤 코드에 와 있으며 이내 28마디는 오고야 말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지극히 예측 가능한 미래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어이 닥쳐오고 말 것이다. 그 미래를 대비하는 순간 지금은 없어져 버린다. 그것은 조금 이후의 현재로 받아들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을 지금 생각하는 순간 현재는 왜곡된다. 지금 내가 만들어 가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과거가 더욱 중요하다. 지금의 영점 오초 전에 나를 통해 세상에 나타난 소리를 주의 깊게 듣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소리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어떤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는가?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이 현재이다.


  나는 오랫동안 과거와 과거의 축적으로의 현재보다, 곧 없어져버릴 현재와 이내 다가올 미래를 더 신경 쓰며 연주해 왔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려워하며 미래를 대비한다. 다음 코드는 무엇이고, 그 코드 위에 내가 칠 수 있는 것들은 이러 이러한 것이며, 그것을 성공적으로 끼워 넣을 수 있는가가 나의 즉흥 연주였다. 십중 팔구, 만족스럽지 않았던 경험의 누적. 어쩌면 현재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미래보다 과거가 더 중요하다. 내가 만들어 낸 소리를 천천히 시간을 들여 들어야 한다. 그 허공에 날아가는 소리는 나의 마음에 감정의 변화를 일으킬 테니까. 나의 현재는 과거 나의 연주의 결과이니까.


  한번 이 연주를 다시 들어보려 한다. 지금 내 말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 키쓰 자렛은 현재에 집중하기 위해 지나간 소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미래가 현재가 되어 소리 날 때, 그조차도 놀라고 경탄하는 것을 다시 한번 지켜보려 한다.







  작년에 쓴 글입니다. 일 년 정도 지난 지금 다시 이 음악을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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