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y Mintus Trio - A Gershwin Playground
Artist : Guy Mintus Trio
Title : A Gershwin Playground
Release Date : Oct 23, 2020
Label : Enja
Personnel
Guy Mintus - Piano
Omri Hadani - Bass
Yonatan Rosen - Drum
Track Listing
1. Let's Call the Whole Thing Off
이스라엘과 뉴욕을 정체성의 거점으로 삼는 젊은 피아니스트 가이 민투스. 그를 주축으로 결성된 유대인 트리오는 거슈윈이라는 거대한 성의 첫 공략점을 'Let's Call the Whole Thing Off'로 삼았다.
스윙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동기로 삼는 것처럼 보이는 앙상블이지만 첫 8마디가 지나고 혼자서 반음을 올려 멜로디를 연주하는 피아노를 발견하는 즉시, 이 사람들이 어떠한 자세로 거슈윈을 집어삼킬 준비를 하고 있는지 직감하게 된다. 앨범의 타이틀에 포함된 ‘Playground'라는 단어처럼 세 사람은 놀이를 하듯 거슈윈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며 가열하고 연성한다. 이 거칠 것 없는 손놀림에 덧붙여지는 것은 리더인 가이 민투스의 태생적 배경, 문화적 배경에 의한 이스라엘의 음악, 부기우기, 인도의 리듬, 폭발하는 에너지의 락킹, 잘 훈련된 대위법적 편곡, 숙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화려하기 그지없는 대가적 기질의 피아노 테크닉이다.
역설적으로, 그러한 특징들이 버무려짐으로 인해 편곡 상의 난해함 혹은 산만함을 불러올 수도 있음을 어쩔 수 없이 주지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앨범의 첫 번째 곡 ‘Let's Call the Whole Thing Off’는 친숙한 테마에 유대 음악의 선율을 과하지 않게 끼얹고, 후반부의 템포를 변화무쌍하게 조절함으로써 단 한순간도 듣는 이의 주의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2. Fascinating Rhythm
트리오는 음악이 자유롭게 흘러가는 대로 두는 듯 빡빡하거나 정밀한 합을 들려주지 않는다. 원곡의 멜로디가 가볍게 흘러나오고 가이 민투스의 즉흥연주는 시작점을 명료하게 보여주지 않은 채 은근슬쩍 움직이는데, 시간이 지나갈수록 이들의 인터플레이가 강한 동세를 추구한다. 너무 두드러지지는 않게, 그러나 이전보다 조금만 더 세게, 더 크게, 더 많이 휘저으며 몸집을 불려나간다.
그러다가 이내 곡의 끝마무리에서는 전위된 코드 위에서 'I Got Rhythm'의 벌스 파트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Fascinating Rhythm'과 같은 구성 방식으로 다이나믹을 점차 올려가며 가이 민투스의 즉흥연주로 진입하는데, 나는 이것이 못내 아쉽다. 제목을 붙여놓은 원곡은 3분 30초 정도만 연주하고 그 이후로는 전혀 다른 곡이 등장하는 셈이니 말이다. ‘Rhythm Change'라는 재즈의 핵심 코드 진행으로 굳이 진입하는 이유가 있었을까? 물론 스트라이드 피아노를 비롯해 올드한 재즈의 향취를 불러일으키는 장치를 군데군데 삽입한 것, 그 위에 가이 민투스의 현대적 재즈 솔로잉을 쌓은 솜씨 자체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그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것은 연주가 아니라 음악적 구성에 대한 질문이다.
3. The Girl I Love
특정 지역의 음악을 재즈와 혼합시킬 때 적정 비율이란 것이 존재할까? 누군가는 전자의 비율을 높이, 누군가는 후자의 비율을 높이 설정하겠지만, 나는 비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밀도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 음악적 재료가 밀접하게 섞여서 단단한 경도를 완성한다면 사실은 비율 따위는 상관없는 좋은 소리가 될 테다. 'The Girl I Love'는 거슈윈의 명곡 ‘The Man I Love'에서 단어의 성별만 바꿔 연주한 곡으로 가이 민투스가 직접 보컬까지 맡아 중동 음악과 재즈의 밀도 높은 혼합물을 들려주는 자리다. 가이 민투스의 보컬 역량은 차치하고, 나는 전혀 다른 지역의 두 음악이 혼합되는 양태에 이끌렸다. 낯설지만 어색하지 않고, 신선하지만 과한 풋내가 나지도 않는 이 공존은 매력적인 동시에 약간의 회의감도 전해주는데, 이러한 조화가 재즈와 국악에서도 가능할까?라는 역설적 질문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나라 음악가들에게 국악과 양악의 병합은 종종 강박적인 모습으로까지 드러나는 때가 있다. 국악가들에게도 양악가들에게도 그렇다. 그런 흐름 속에서 일종의 도전작, 실험작으로만 남겨지는 작품들을 마주할 때면 음악가들의 역량 부족이 아니라 애초에 아귀가 맞지 않는 두 블럭을 마주치게 하는 데서 오는 괴리를 쉽게 인정할 수 없는 걸까,라는 의문도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그렇다고 결론을 내지는 않았다. 언제라도 나의 의문이 부적절한 것이었음을 증명하는 작품이 나올 수 있음을 인정한다).
4. It Ain't Necessarily So
이전 곡에 이어 가이 민투스의 보컬이 재등장한다. 그의 중성적인 목소리는 묘하게 퇴폐적인 구석이 있어 원곡의 가사를 훨씬 자극적으로 전달하고, 느림과 빠름을 규칙적으로 왕복해 바꾸는 편곡은 마치 보드빌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는 배우를 감상하는 것처럼 다양한 청각적 풍경을 제공한다.
첨언하자면, 이 곡은 유대인의 종교적 전통에 영향을 받은 거슈윈의 작품으로 가이 민투스의 태생적 배경을 고려할 때 선곡 이유를 한층 더 납득하게 된다. 유대인이 부르는 ‘성경 부정’ 가사라니, 그 자체로 얼마나 강렬하고 짜릿한가.
5. I Loves You Porgy
증2도 간격의 의도적 사용이 분명한 인트로에 가이 민투스의 허밍이 얹히는데, 이국적 느낌이 물씬 나는 멜로디 안에서도 원곡인 'I Loves You Porgy'의 흔적이 조금씩 드러난다. 마치 땅 아래 묻힌 화석을 천천히 발굴해 가는 것처럼 그의 피아노와 노래는 점진적으로 테마를 향해 진입한다. 이전 트랙들에서도 종종 쓰인 기법이지만 페달 포인트-화성이 진행되는 가운데 가장 낮은 음을 같은 음으로 고정하는 것-와, 트레몰로가 주된 무기다.
그러나 가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멜로디와 루바토로 진행되는 묘한 구성 속에서 베이스와 드럼이 은근히 스며들어와서 언제 자리 잡았는지 모를 정도이고, 이렇게 음악적 질감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 이들의 목표였구나, 하고 짐작할 뿐이다.
6. They Can't Take That Away
가볍고 부드러운 스윙에서 베이스가 A 파트의 멜로디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피아노는 B 파트의 멜로디를 담당하고, 다시 돌아오는 A 파트를 베이스가 차지한 뒤 그대로 즉흥연주로 이어간다. 앨범에 수록된 곡들 중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재현되는 거슈윈의 곡이다.
리더인 가이 민투스의 역량이 워낙 돋보이는 앨범이지만, 이 곡을 통해서만큼은 그와 함께 하고 있는 옴리 하다니, 요나탄 로젠 역시 재즈의 언어를 충분히 흡수하여 완숙한 기량으로 들려줄 수 있는 준비된 연주자임을 파악할 수 있다.
상당히 무난한 편곡임에도 '무난함'이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게 되는 것은 앞뒤로 배치된 곡들의 편곡적 개성이 워낙 강해서인데, 정규 앨범 발매에 있어 숙고를 거친 트랙 배치가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7. Someone to Watch Over Me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원곡의 코러스 파트뿐만 아니라 벌스 파트까지 충실히 재현된 스탠더드 연주를 상당히 선호하는 편이다. 우리가 듣는 일반적인 스탠더드, 특히 스탠더드 연주곡은 코러스 파트만 연주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가사의 의미와 작곡의 통일성을 생각한다면 벌스 파트 역시 분명히 고려되어야 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특히 곡의 머리와 꼬리를 전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엘라 피츠제럴드의 'Someone to Watch Over Me'를 상당히 높은 완성도의 음악으로 생각한다(그녀의 음악적 기량은 논외로 하고).
만약 이 트리오가 벌스 파트부터 시작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주를 높게 평가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상당히 식상하게 들릴 수 있는 Even 8th beat-8분음표를 스윙 없이 균일하게 연주하는 것-를 전혀 지루하지 않게 완성해 냈다는 것, 노래에 내레이션과 휘파람 등 이질적인 방식을 추가해 새로운 질감을 만들어냈다는 것, 즉흥 연주 없이 밴드의 앙상블 만으로 원곡이 충실하게 재현되었다는 느낌을 준 것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구조적 형식미를 준수하게 구축해 냈기 때문이다.
8. Rhapsody In Blue
가이 민투스의 비르투오조적 면모가 돋보이는 피아노 솔로곡. 거슈윈의 대표곡 중 대표곡인 'Rhapsody In Blue'를 오로지 피아노 한대로 연주해 냈다는 것은 그가 단순히 연주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편곡적인 측면에서도 얼마나 절정에 다다라있는지를 증명하는 항목이다. 원래의 오케스트라 버전에서 감상할 수 있는 디테일한 사항들을 놓치지 않고 피아노 한대에 섬세하게 구축해 낸 것, 그리고 그 재현에 있어서 무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보통 연주력의 부족은 그가 무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데에서 증명된다-그가 왜 젊은 나이에 '천재'라고 불렸는지 납득하게 된다. 무려 15분에 근접하는 피아노 솔로곡이, 그것도 굳이 지나칠 정도로 유명한 곡을 골라 이 정도의 퀄리티로 청자를 묵묵하게 감상하게 만드는 것은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다.
9. Summertime
아프로 큐반 리듬과 유대 음악 선율의 묘한 조합이 이 기상천외한 앨범의 마지막 자리를 빛낸다. 가이 민투스의 즉흥연주 위에 그의 스캣이 유니즌으로 추가되고 베이스와 드럼의 리듬 세션도 이 3박자 계열의 음악 위에서 유달리 더 신이 난 것처럼 들린다. 여기에 메트릭 모듈레이션을 통해 4박자의 느낌으로 변태한 피아니스트의 즉흥연주가 불을 뿜는다. 아래에 가이 민투스의 즉흥연주 채보 파일과 영상 링크를 첨부한다.
어쩌면 호불호가 극명히 갈릴 수도 있을만한 편곡일 것이다. 원곡의 느낌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과 자신의 자아를 충실히 증명하는 것은 연주자 뿐만 아니라 청자들에게도 입장이 나뉘는 지점일 테니 말이다. 어찌 되었든 이 세 사람에게는 오로지 후자의 길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A Gershwin Playground' 타이틀을 고려해 보라. 'The Gershwin' 이 아니라 'A Gershwin'이라는 말에는 전설을 평범하고 무난하게만 받아들이려는 의도 대신 그를 발판으로 삼아 담장 바깥의 풍경을 보려는 장난기 많은 어린아이의 까치발, 그 발끝의 발짓이 함축되어 있다.
#agershwinplayground #guymintus #omrihadani #yonatanrosen #enja #jazz #jazzalbumreview #jazztranscription #재즈 #재즈앨범리뷰 #재즈악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