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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비 파크 Jan 10. 2024

대기업에 취직 시켜드릴게요, 당신의 영혼을 제게 파세요

더 소울 셀링 컴퍼니: 비싼 취향값을 삽니다, 소원을 들어 드릴게요.




을지로를 갔다. 혼자 사진이나 찍을 겸. 요새는 생각이 너무 많다. 아늑한 서울의 옛 정취 들을 마주하다 보면 새로운 생각이 나올까 해서 이곳 왔다. 온 김에 아이폰에 사진도 좀 담고. 사진을 찍으려던 순간, 어떤 외국인이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걸었다. 금발 벽안의 미인이다. 그 백인 여자는 카페, 더 소울 셀링(Cafe, The Soul Selling)이라는 곳을 찾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카페를 검색했다. 역시나 구글에는 나오지 않는 곳이다. 네이버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이 못 찾을 만도 하다 생각했다. 네이버에 검색하니 블로그 후기가 나온다. 나는 이 블로그 후기를 따라 카페를 찾아 나섰다. 나도 혼자 온 겸, 영어 연습이나 할 겸, 그 여자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했다. 



터키 출신이라고 밝힌 그 여자와는 어색하게나마 아이스 브레이킹을 시작했다. 고등어 케밥을 좋아한다고 했다가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녀는 이런 말이 도무지 지겨웠을 것이다. 내가 말해놓고도 아차 싶었다. 차라리 카이막을 먹어보고 싶다고 했어야 했나.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오~아이 노우 흥민쏜!”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 이려나. 어쨌든 그녀는 여행 중이라 했다. 우리는 그래도 좋은 말동무가 됐다. 



카페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외국 여자는 갑자기 나에게 정색하며 이렇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우리는 더 소울 셀링 컴퍼니입니다. 우리는 영혼을 매입합니다. 경기북부 영혼 데이터를 검색한 결과 당신의 영혼 취향 값이 가장 높게 나왔습니다. 우리에게 당신의 영혼을 파시겠습니까? 영혼을 파시면 당신이 고민하시는 취업 문제를 해결해 드립니다. 우리는 단지 당신의 문화 취향만 가져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에게 가장 일반적이고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의 취향 값으로 디폴트 해드립니다. 잘 선택하십시오. ‘예스’라는 결정을 하시면 다음 달부터 적용이 되며 모든 금액은 무료입니다. 내일까지 답변 주십시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놀라기 보다도 미묘한 기쁨의 감정이 우선적으로 올라왔다. 내 취향 값이 그렇게 비싼가? 뭔가 인정받은 기분이랄까. 속으로는 좋아했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래, 내 취향이 좀 독특하긴 했지. 그때부터 나라는 인간에 대한 회상이 시작됐다. 나는 어려서부터 반골기질이 좀 있었다. 뻣뻣하고 딱딱한 사무직 생활은 죽어도 못할 거라 생각했다. 나는 늘 좀 특이하고 자유로운 인간형이라 생각했으니까. 군대의 수직적인 문화를 유독 힘들어했던 나였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남들 다 좋아하는 대중문화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중학교 때 친구들이 세븐, 이효리, 빅마마를 들을 때 나는 UMC, CB MASS, 각나그네, 가리온 등을 들었다. 남들이 다 좋아하는 건 굳이 따라가지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미치도록 빠져들었다. 괜히 이 세상에 저항하고 싶어서 힙합, 인디뮤직만 골라 들었다. 영화도 인디영화만 골라봤다. 독립적으로 만든 건 죄다 관심이 갔다. 기존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들을 모조리 응원하던 나였다.



그런 내가 이제는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 났다니, 참 인생이란. 한해 한해 가면서 내 취향도 노멀화 되는 부분이 있고, 많은 영역에서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걸 느낀다. 예전에는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고 싶었는데, 지금은 딱히 그렇지도 않다. 무슨 일을 하던 돈 많이 주고 복지가 좋다면 할 수 있을 거 같다. 최근에는 농담처럼 나를 써주는 대기업이면 내 영혼도 팔 거라는 말을 했었다. 나를 감시한 그 더 소울 셀링 놈들이 내 말을 감청이라도 한 건가??



어쨌든 나란 사람은 이렇게 계속 바뀌어 왔다. 나는 커서 저런 사람이 안될 거야 라고 했던 어린 시절. 지금의 나는 그런 사람과 가까워져 있다. 앞으로도 나란 존재는 계속 변할 거 같다. 사실, 나의 이 변화가 마냥 싫지는 않다. 어찌 보면 유별나다는 건 한국사회에서 살기 힘들다는 뜻이니까. 노래방에 가서 엠씨더맥스를 즐겨 부르는 친구들처럼 사는 게 더 편할지도 모른다. 한두 살 차이로 형님을 깍듯하게 모시는 그런 부류가 살기 더 편할지도 모른다. 보수적인 조직문화에서는 그게 훨씬 적응하기 편할 테니까. 9 to 6의 쳇바퀴를 견뎌내는 건 그들이 더 수월할 거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그래, 뭐 취향 그거 그렇게 중요해? 밥 먹여주는 거 아니잖아… 진짜 행복은 남들 사는 만큼 사는 평범하게 사는 거 일수도 있잖아. 아니야. 그래도 나는 아직 독립서점에 가고 싶어… 생각의 핑퐁을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나는 다시 그 카페로 향했다. 도저히 결론을 내기 어렵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런 기회가 또 내게 주어질까? 그런 생각의 기차를 따라 나는 다시 카페로 향했다. 



나는 결국 결단을 내렸고, 다시 그 외국 여자에게 말했다. 그 여자는 기대를 잔뜩 품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내 취향을 그렇게 사고 싶은가.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거 할때가 제일 행복해요. 돈 많이 못벌어도 독립서점 가고 서순라길 탐방하고 실리카겔 공연 보러 가겠습니다. 영혼 안팔거에요 카이막이나 먹어요”



나는 결정의 그 순간에서 20년 뒤에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어떤 모습이 더 행복한가를. 나에게 있어 취향이란 생명력이었던거 같다. 나라는 사람은 취향이 있기에 존재한다. 취향을 뺐어가면 모든 걸 빼앗아 가는 거다. 취향은 살아있음에 또 다른 말이다. 이 결정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른다. 나는 그저 붓으로 내 하루하루를 칠해가며 살아갈 뿐이다. 인생에 끝에서 어떤 그림이 완성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내 방식대로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려고 한다. 그게 더 재밌으니까.


터키 여자는 놀란 표정을 하더니 나에게 걸어와 조용히 귓속말을 남겼다. "물론 이 이야기는 완전한 픽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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