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에서 슬램에 빠지게 된 사연
“오 제이비~ 눈이 왜이리 초롱초롱해. 주말에 잘 쉬었나봐?”
사실은 좀 피곤했다. 주말을 철원에서 불태우고 맞이한 월요일이었다. 그래서 잘 쉬고 왔냐는 동료의 말이 낯설고 신기하고 재밌었다. 어쩌면 나는 잘 쉬고 왔을지도 모른다. 모래바닥에서 흙먼지를 마시며 사람들과 슬램 한바탕을 벌이고 온게 나에게는 힐링이었을지 모른다. 처음 본 사람들과 어깨동무하며 리듬에 맞춰 몸을 격렬하게 흔들어대는 그 행위가 나에게는 최고의 휴식 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슬램에 중독됐다. 경력으로 치면 이제 막 입문한 뉴비 신입정도 된다. 락 페스티벌을 가본 건 올해 4월이 처음이었다. 친구따라 강남간게 아니고 친구따라 락페스티벌에 갔다. 사실 나는 ‘음악은 집에서 들어야 제맛‘ 계열의 사람이었다. 사람 많고 복작하고 그런 곳에서 굳이 음악을 들어야 하나 싶었다. 그치만 내 주변에는 흔히 말하는 ‘페스티벌충’이 몇몇 있었고, 그들은 락페 안에서 진정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들이 왜 그렇게 락페에 진심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들보다 더한 페스티벌충이 되었다.
페스티벌충이라는 워딩을 쓰긴했지만 나는 락페인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무언가에 빠져서 열정을 다할 수 있는 행위가 얼마나 아름답고 낭만적인 일인지를 나는 잘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세계관을 탐구했다. 락페인들의 세계에서 락페스티벌이라고 다 같은 페스티벌이 아니었다. 락페에도 티어가 있었다. 철원 피스트레인 DMZ 페스티벌은 국내 락페인들 사이에서 탑티어의 대우를 받는 공연이었다. 공연 라인업, 운영, 관객의 질 모든 측면에서 최고라고 했다. 축구로 치면 프리미어리그 정도 되겠다. 그래서 나는 철원에 가야 겠다고 결심했다.
내 의지로 철원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철원은 넓고 조용하고 쾌적했다. 이 오래된 동네에 슬슬 젊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철원 고석정으로 온 관광객들, 나이가 지긋하신 현지 주민들, 락페를 즐기러온 젊은이들. 이 조합이 정말 신선했다. 본 공연이 시작도 하기전, 고석정 분비자 (분수대+이비자 클럽)에서는 벌써 디제잉이 시작됐다. 철원 어르신들과 젊은이들이 EDM과 힙합 비트가 깔린 곳에서 앞사람 어깨에 손을 올려 원을 그리며 기차놀이를 하는 진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분수대 물을 펑펑 맞으면서. 이게 철원이다.
'다브다'라는 밴드의 연주로 페스티벌 본 공연이 시작됐다. 마치 애니메이션의 오프닝곡 같은 청량하고 활기찬 음악을 선보이는 팀이었다. 리드미컬한 산뜻한 연주 덕분에 사람들은 모두 다브다의 공연을 듬뿍 즐겼다. 음악에 맞춰 원을 만들고, 음악이 조용했다가 터지는 순간에 원 안으로 달려 들어 일제히 몸통 박치기를 해댔다. 이게 슬램이다. 어떻게 난데없이 몸을 부딪히며 놀 수 있나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그런데 나도 몇번 하다보니 적응이 되고 도파민이 터졌다. 초롱초롱한 눈이 떠다니고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모두들 모쉬핏의 맛을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이게 유토피아다.
해가 저물고 어둠이 깔린 무렵, 바밍타이거의 공연이 시작됐다. 바밍타이거가 이렇게 카리스마 있는 팀이었나. 역시 공연을 보면 다르구나 느꼈다. 그들의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감탄하고 있을 때, 내가 많이 들었던 곡 [부리부리]가 시작됐다. 노래가 시작되자 락페인들은 약속이라도 한듯 모두 양팔을 일자로 뻗고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며 부리부리 댄스를 시작했다. 그리고는 일제히 목이 터져라 외쳤다.
“에블바리 뛰어!!”
펄럭이는 깃발에는 단 두글자만이 적혀 있었다. ‘퇴사’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표정에는 행복이 가득 묻어있었다. 짜릿한 환희의 카타르시스가 샘솟는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생각 했다. 이게 천국이구나. 천국을 만든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근심, 걱정 없는 웃음과 기쁨만이 가득한 곳. 이 공간에서는 인간관계에 대한 복잡한 고민, 승진과 인정욕 때문에 생기는 치열한 정치 싸움은 없었다. 아티스트들은 강력한 에너지를 뿜으며 천국을 만들어줬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 내 몸은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다. 하루종일 방방 뛰고 소리를 지르니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전부 소진 해버린 느낌이었다. 집에 도착해 씻고 침대에 누우니 기분 좋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오늘 하루가 아름다운 청춘의 한 조각이 된 것 같다는 뿌듯함이 몰려왔다. 비워내니 다시 뭔가로 채워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일이 출근 인데도 기분이 좋았다. 뭔가 하고자하는 의지가 괜시리 생겼다.
몸은 피곤해도 정신은 충전이 된 하루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동료는 나에게 잘 쉬고 온거 같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래서 깨달았다. 나는 음악을 사랑하고 문화 콘텐츠를 정말 좋아하는 구나. 그런 것들이 나를 치유하고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건강한 선순환을 만드는 이 행위에 대해 생각했다. 비워내고 다시 또 채우고. 그 과정이 나에게 무언가를 또 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를 선물한다. 이 매커니즘이 꽤나 맘에 든다. 스트레스를 슬램과 함께 모두 털어내버렸다. 나는 락페에 중독된 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