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리엄 맥어스킬 저
서평으로 약간의 관심을 받다 보니,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껴서 한동안 서평 작성이 뜸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2개월 이상 서평 작성을 안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뜸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60일 넘게 서평을 안 썼다고 생각하니, 쓰긴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볍게 기억의 색인을 남기는 목적으로라도 주절주절 남깁니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냉정한 이타주의자>라는 책입니다. 월리엄 맥어스킬이라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선의를 갖고 실천하는 이타주의적 활동들 - 예를 들어 사회구호활동, 기부 등 - 을 그저 '선의'라는 목적만 갖고 방법론적 고민 없이 행하는 것보다는 방법론적 고민을 하면서 실천할 경우에 훨씬 더 위대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물론 방법론까지 고민을 한다면 더 좋겠지만, 일단 '선의'라는 목적을 갖고 무엇이든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잠깐 스쳤습니다. 아마 서평을 보고 계신 분들이나 해당 서적을 읽는 분들도 처음에 드실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곧 아주 유명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사실 방법론적 고민이 수반되지 않는 선의는 세상에 큰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책에서 예로 들어준 사례처럼 부작용이나 발생시키지 않으면 다행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누군가의 이타적인 선의가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로, 또는 누군가의 선의가 아주 적은 효용으로만 전달이 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기본적인 사전 검증의 부재
기본적인 사전 검증 작업의 부재에 기인한 경우가 많습니다. 저자는 책에서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합니다. 1990년 대 MIT 교수가 된 마이클 크레머라는 학자가 제 3세계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서 무작위 대조 실험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당시 마이클 크레머라는 학자가 수행한 무작위 대조 실험이, 개발 프로젝트에 적용된 최초의 대조 실험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인즉슨, 그 이전까지 이루어진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대조 실험 등을 통해 객관적인 효과성 측정이 전무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놀라웠지만 한편으로 이해가 가기는 했습니다. 당장 우리 주변에서만 봐도, 선행에 대해서 숫자나 이성을 들이대는 것에 대해서 '본질을 흐린다'라는 등의 이유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재원이 투입되는 개발 프로젝트라면, 당연히 숫자를 바탕으로 한 계량적인 사전 검증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저자가 동료 연구원과 함께 수행한 연구의 결과를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저자가 동료 연구원 토비 오드와 함께 개발도상국 빈곤퇴치 자선단체의 비용 대비 효율을 조사해본 결과, 가장 효율적인 단체들은 '그럭저럭 좋은' 수준에 그친 단체에 비해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수백 배 더 큰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즉, 사람들의 기부나 국제단체 등의 재원이 가장 효율적인 단체에 집중되었다면 기존에 쓴 것과 비슷한 규모의 재원만 투입되었다 하더라도 개발도상국의 사람들의 삶의 질을 수백 배 더 개선시킬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선행에 숫자와 이성을 들이대면 본질을 흐린다' 같은 이유로 계량적인 검증을 안 하기에는 그 기회비용이 너무도 거대한 것입니다.
또 재미있었던 주제는 '한계적 의사결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선택에 대해서 다루는 학문입니다. 그런 경제학의 이론들은 대부분 '한계적 상황의 선택'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총량 단위가 아니라 한 단위를 추가할까 말까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의사 수는 87만 8194명입니다. 그리고 다른 연구에 따르면 미국 사회의 총 의료 편익은 22억QALY( 건강과 관련된 삶의 질을 평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단위입니다. )라고 합니다. 그럼 의사 1명당 2500 QALY 정도로 계산됩니다. QALY라는 단위가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저자는 일반적으로 생명을 구했을 때의 편익을 제공합니다. 사람 한 명을 구했을 때 QALY는 36.5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의사 한 명이 제공하는 의료 편익은 70명(2500/36.5)의 목숨을 구하는 수준과 맞먹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게 맞는 분석일까요? 아니요 틀린 분석입니다. 이 분석대로라면, 87만 8194명의 의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1명의 의사가 추가된다면 미국 사회가 누리는 의료 편익은 22억 2500 QALY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 연구에 따르면 추가적으로 1명의 의사가 늘어날 때 증가하는 의료편익은 4 QALY에 불과합니다. 그럼 새로운 의사 한 명의 가치를 2500 QALY로 생각해야 할까요? 아니면 4 QALY로 생각해야 할까요? 당연히 후자로 생각해야 합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요?
수확 체감의 법칙
경제학에서 한계적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수확 체감의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수확 체감의 법칙을 단순하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고소를 당해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고 합시다. 이때 우리가 변호사는 한 명도 선임하지 않은 상황에서 1명의 변호사를 선임하느냐 안하냐느냐 아주 큰 결과를 차이를 초래할 것입니다. 하지만 돈이 엄청나게 많아서 변호사를 다수 선임하다고 해봅시다. 이때 100명의 변호인단을 선임한 상태에서 101번째 변호인을 선임하느냐 안 하느냐가 과연 재판 결과에 미치는 영향력이 0명일 때 1명을 선임하느냐 마느냐가 재판에 미치는 영향력과 같을까요? 물론 다릅니다. 그럼 당연히 ['재판 결과에 미치는 영향력'/ '변호인의 숫자' ] 값은 변호인을 추가로 선임할 때마다 작아질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수확 체감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갑자기 수확 체감의 법칙을 들고 나오는 이유는, 방치된 곳에 더 많은 자원을 쏟아야 전체의 관점에서 더 효율적인 개선을 목격할 수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시다시피 인간은 본능적으로 집단이 속할 때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런 본능은 기부 등 구호 프로젝트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저자가 예로 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중국 쓰촨 성 지진의 사례처럼, 익숙하거나 더 많은 관심을 받는 쪽에 추가적으로 더 기부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류의 복지 개선이라는 목적에 더 적합한 행위는, 같은 1달러를 기부했을 때 훨씬 큰 결과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쓰촨 성 지진 피해 프로젝트에 기부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보다 친숙하고 언론에 더 많이 노출되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피해 프로젝트에 기부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책이 담고 있는 재미있는 화두가 많지만 특히 인상 깊었던 화두만 소개하였습니다. 이 밖에도 재미있는 화두가 정말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공부를 매우 잘하는 어떤 학생이 외과의사가 되어 제 3세계 국가로 의료봉사를 가는 것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종양전문의가 되어 돈을 벌어서 수익의 50%를 기부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행위임을 이야기하는 등 인상 깊은 화두가 정말 많았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화두가 담고 있는, 여전히 굶주리고 있는 수많은 인류를 위해서 우리는 보다 더 효율적이고 효과성이 높은 방식으로 이타주의적 행위를 실천해나가 한다는 주장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구제 프로젝트 등 이타적 활동들이 그동안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부분에서, 이는 곧 수많은 돈이 무익하게 낭비되었으며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방법의 개선만 이루어진다면 지금과 비슷한 재원으로도 훨씬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면도 볼 수 있었습니다. 즉, 이미 상대적으로 파레토 효율에 가깝게 운영되고 있는 다른 부문과 달리 파레토 효율과 먼 지점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작은 변화가 큰 진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긍정적이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보면서 짜릿함을 많이 느껴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