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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lany Feb 23. 2018

[잡상] 사업가의 투자와 투자자의 투자에 대한 생각

# [잡상] 사업가의 투자와 투자자의 투자에 대한 생각


 투자에 대한 잡상을 오랜만에 나눠보려고 합니다. 부쩍 바쁜 한 주를 보낸 까닭에 '잡상'을 하고 있을 여유로운 시간이 없어서 한동안 뜸했네요. 오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것은 '투자'라는 동일한 행위가 행위하는 주체가 기업가냐, 투자자냐에 따라서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잡상입니다. 사실 세상에 아주 순수하게(Purely) 사업가적 투자만 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나마 사업가적 투자를 한다고 할 수 있는 기업도 사업의 주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투자의 주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논의의 편의를 위해서 극단적인 사업가적 투자만을 수행하는 주체가 있다고 전제하고 비교해보겠습니다. 


 그럼 논의에 들어가기 앞서서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미 제 글의 형태에 익숙해진 분들은 짐작하실 텐데, 사업가적 투자와 투자자의 투자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사업가적 투자는, 해당 자산의 산출물의 가치와 투자에 필요한 자금 규모만을 고려해서 투자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자산의 생산성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사업가적 투자를 수행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타인의 평가는 해당 자산의 생산성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업가적 투자의 결과는 전적으로 자산의 생산성, 즉 산출물의 가치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따라서 해당 자산이 생산성이 우수한 자산이라면 만족스러운 수익을 맛볼 수 있을 것이고, 자산이 생산성이 열등한 자산이라면 만족스럽지 못한 수익을 맛볼 것입니다.  


 반면에 투자자의 투자는 다릅니다. 물론 대부분의 투자자는 사업가적 투자적 성격을 일부 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논의의 편의를 위해서 순수하게(Purely) 투자자적 투자의 성격으로만 행위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투자자적 투자는, 해당 자산의 생산성과 그 생산성에 대한 타인의 평가 간의 괴리를 고려해서 수행하는 투자입니다. 이 경우 투자자에게 해당 자산의 생산성 그 자체는 어렴풋한 기준점이 되어줄 뿐, 그 자체가 투자자가 향유하는 수익의 원천은 아닙니다. 해당 투자자의 투자 결과는 전적으로 자산의 생산성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의 변화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실제 자산의 생산성과 그 생산성에 대한 타인의 평가 사이에 괴리가 발생한다고 해서, 항상 그 괴리가 축소된다고 확신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괴리율이 이미 큼에도 불구하고 더 벌어질 수도 있고, 괴리율이 (-) 값임에도 불구하고 더 작아질 수도(절댓값은 커지는 경우) 있습니다. 


 이 정도면 사업가의 투자와 투자자의 투자에 대한 정의는 어느 정도 된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각 행위 주체에 따라서 자신의 투자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무엇에 집중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먼저 사업가적 투자에 있어서 투자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은 간단합니다. 물론 '간단한' 것이지, '쉬운' 것은 아닙니다. 사업가의 투자 성과는 자산의 생산성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따라서 사업가는 철저하게 자산의 생산성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자산의 생산성은, 투자 금액이 정해져 있을 때, 산출물의 시장가치가 높을수록 & 산출물의 수량이 많을수록 높아집니다. 따라서 투자자는 자신이 계획한 투자 자산의 생산성에 대해서 가능한 한 정확한 평가를 통해서, 기대 산출을 예상하고, 해당 기대 산출 수준이 투자 자금과 비교해서 기준 이상의 자본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옳은 판단을 내려야만 합니다. 즉, 철저하게 실물 측면에 집중해야만 합니다. 이런 구조를 따를 수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사업가적 투자는 '만기까지 보유'하기 때문입니다. 즉, 해당 자산의 생애주기와 투자자 자신의 해당 자산에 대한 투자주기가 일치합니다. 따라서 언젠가 해당 자산의 만기가 도래하면(생애주기가 종료되면) 결국 사업적 투자를 수행한 투자자의 가계부에는 투입한 자본(-)과 산출된 재화(+)의 차액만 남게 되고, 만약 해당 재화의 생산성이 탁월했다면, 당연히 Bottom line도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투자자의 투자에 있어서 투자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조금 더 복잡합니다. 제가 닉네임으로 쓰고 있는 'Tolany'라는 단어의 유래가 된 헝가리 출신의 유명한 투자자 'André Kostolany'가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투자자의 투자를 수행한 인물입니다. 투자자의 투자는 해당 자산의 생산성이 아니라 해당 자산의 생산성에 대한 타인의 평가 수준에 의해서 성과가 결정됩니다. 투자자의 경우, 사업가와 달리, 해당 자산의 소유기간이 해당 자산의 생애주기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자산의 생애주기가 끝나는 시점이 도래하면 결국 투입한 자본과 산출된 재화의 시장가치 차액만 남겠지만, 투자자의 해당 자산의 소유기간과 자산의 생애주기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 자본 투입은 되었지만, 산출된 재화의 시장가치가 보잘것없을 수 있습니다. 혹은 자본 투입에 비해서 해당 자산에서 산출된 재화의 시장가치가 훨씬 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산출물'이란 무엇일까요? 기업의 '제품'이나 '상품' 혹은 '서비스'일까요? 제가 이전 글에서 말했다시피 기업은 기본적으로 '돈 버는 기계'입니다. 따라서 기업이라는 기계가 한번 작동을 하면 중간에 '제품', '상품', '서비스' 등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것 자체는 최종적인 산출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돈 버는 기계'의 최종적인 산출물은 당연히 '돈'입니다. 그중에서도 '현금'입니다. 그런데 저는 투자자의 투자에 있어서 성과가 '산출물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좌우된다고' 말했습니다. '현금'에 대한 '타인의 평가'라니, 이게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일까요? 하지만 금융시장에서는 얼토당토 한 소리입니다. 왜냐하면, 동일한 현금이라도 '어떤 기계에서 뽑아낸 현금'이냐에 따라서 가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투자자의 투자를 수행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성과는 투자한 자산의 산출물에 대한 타인의 평가, 즉 시장의 평가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따라서 투자자의 투자를 수행하는 투자자는 자신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조금 더 많은 것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우선 실물 관점에서 '산출물 수량'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투자자의 성과가 '산출물에 대한 시장의 평가'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평가의 대상이 되는 '산출물' 자체의 수량에 대한 전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산출물에 대한 시장의 평가'에 대해서 전망해야만 합니다. 투자자의 투자의 주체는, 자산의 생산성과 그 생산성에 대한 시장의 평가 사이의 괴리의 움직임에 의해서 보상을 받습니다. 따라서 평가의 대상이 되는 '산출물' 자체에 대한 전망뿐만 아니라 그 산출물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어떻게 변모하는지에 전망이 있어야만, '자산의 생산성과 그 생산성에 대한 시장의 평가 사이의 괴리'에 대한 전망을 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복잡합니다. 비교적 간단하게 정리해보자면, 사업가적 투자를 수행하는 주체는 실물의 생산성 그 자체에 의해서 보상을 받기 때문에 실물의 움직임에 대한 옳은 전망을 내리면 됩니다. 반면에 투자자의 투자를 수행하는 주체는 실물의 생산성에 대한 시장의 평가에 의해서 보상을 받기 때문에 실물의 움직임에 대한 옳은 전망과, 그 실물에 대한 시장의 평가의 움직임에 대한 옳은 전망을 내려야 합니다. 물론 때에 따라서 하나에 대한 전망이 틀렸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하나의 전망이 같이 틀림으로써, 예상이 틀렸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그런 행운은, 반대 경우로 상쇄될 테고 거래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나쁜 성과를 얻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투자자의 투자를 수행하는 주체는 왜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에 도전하는 것일까요? 답은 사업가적 투자를 할 수 있는 주체는 많지 않고, 동시에 투자자의 투자는 성공했을 때 그만큼 보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사업가적 투자를 수행하는 주체는, 보상의 크기가 딱 실물의 성장률 수준으로 고정될 것입니다. 물론 때때로 실물 자체의 성장률이 어마어마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상식적인 수준'입니다. '돈 버는 기계' 기업의 산출 수준은 점진적으로 증감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투자자의 투자를 수행하는 주체는 보상의 크기가 최대 '자산에 대한 시장의 평가의 변동성 + 자산의 생산성 성장'까지 커질 수 있습니다. 물론 나쁜 경우도 마찬가지로 손해가 커질 테지만 말입니다. 제가 앞에서 투자자의 투자를 가장 이상적으로 수행한 인물이라고 소개한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일생을 보면, 이런 투자자의 투자의 성격이 확실하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투자자의 경우 순수하게 사업가적 투자를 수행하는 것도, 순수하게 투자자의 투자를 수행하는 것도 녹녹지 않습니다. 전자는 기본적인 제약이 상당히 크고(능력, 자본의 규모, 위험 수용 가능 수준), 후자는 아주 어렵기 때문입니다. 결국 중간 어디에선가 절충점을 찾아야만 합니다. 우린 고래가 아닌 플랑크톤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제 개인적인 조건을 고려해서 사업가적 투자에 조금 더 가까운 투자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산성 수준에 대해 집중하고, 시장의 평가의 변동성은 거의 고려하지 않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짧은 잡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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