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기

_검은 세상 속 하얀 선

by JB



저는 볼펜보다는 샤프가 좋고, 샤프보다는 연필이 좋습니다.
아날로그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흑연이라는 재료가 가진 특성이 마음에 듭니다.

유성펜은 돌 위에 마음을 새기는 기분입니다.
하나하나 망치로 조각을 내듯 적어야 하고,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새 종이가 필요해집니다.
그 순간 저는, 적어두었던 종이를 찢어버리고
새 종이 위에 더 신중한 마음을 올려놓게 됩니다.

반면 연필은 다릅니다.
적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우개로 지울 수 있고,
정 없으면 지우개똥으로,
그조차 없다면 손으로도 선을 뭉갤 수 있지요.

생각도 원래 그렇게 유동적입니다.
어제는 A가 옳다고 믿다가도,
하루가 지나지 않아 A가 틀렸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종이 위에, 펜이나 연필을 들고
각자의 그림과 글과 선을 새깁니다.

어떤 이는 저처럼 연필을 선호하고,
어떤 이는 돌 위에 발자국을 남기듯
매 순간을 망치로 새깁니다.
무엇이든 정답은 없습니다.
삶은 결국,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어느 순간 펜에서 연필로,
연필에서 다시 펜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어떤 방식이든, 삶은 계속 새겨질 것입니다.




*
충분히 삶을 새기다 보면,
어느 순간 더 이상 새길 공간이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흰색의 돌 위를 걷다가
갑자기 검은색 공간이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 옵니다.

그 어두컴컴한 시야는 한 없이 떨어지는 낭떠러지일 수도 있습니다.
려움부터 들겠지요.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시간은 흐르고,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일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흰 돌의 가장자리를 서성이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어떤 계기로든 넘어가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떠밀리거나,
용기를 내거나 말이에요.


그러다 깨닫게 되죠, 발을 디딘 이곳은 횡단보도라는 것을요.
어떤 날은 검은 돌 위를 걷고,
어떤 날은 흰 돌 위를 걷습니다.

저의 아버지께서는 늘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항상 잊지 않으려 합니다.
지금 제가 딛고 있는 이곳은 낭떠러지가 아니라
횡단보도라는 사실을요.

앞으로
당신도 수많은 흰 돌과 검은 돌 위를 걷 되겠죠.


그러니, 걸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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