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주간 일기(July_the 4th week)
#두번의여행
1. 아들의, 아들에 의한, 아들을 위한 여행
아이를 낳으면 무서울것이 없다고 했던가. 그렇지 않다. 전국의 모든 어머니들을 내가 조사하진 않았지만, 아이의 방학을 두려워 않는 엄마란 없다. 아들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복직후 휴가가 넉넉치 않은탓에 나는 하루만 휴가를 빼고 나머지 기간은 남편의 휴가 + 긴급 보육 등으로 메꾸는 계획을 세웠다. 아들을 위해 휴가를 냈다해도 내 소중한 하루의 휴가를 그냥 보낼순 없지. 당장 일정에 맞춰 여행계획을 세웠다. 아들의, 아들에 의한, 아들을 위한 여행을 꾸몄지만 정작 즐거운건 언제나 그랬듯 바로 나였다.
10개월부터 어린이집에서 사회생활을 한 아들이 너무 기특하고 안쓰럽지만 그덕에 얻은것은 단지 사회성 그뿐만은 아니다. 바로 대머리 시절 부터 함께한 친구들. 늘 함께 다니는 삼총사가 여름 여행을 함께할 주인공들이다. 풀빌라 근처 하나로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천둥벌거숭이 같던 녀석들이 언제 이렇게 커서 카트도 밀고다니고 원하는 물품을 척척 넣는다. 엄마들이 고기에 집중하다 잊을뻔한 과일을 챙겨준 것도 바로 이 녀석들이다.
드디어 도착한 숙소. 신상 풀빌라인지라 후기가 많이 없어 걱정반 설렘반으로 찾은 곳인데 웬걸, 너무 깨끗하고 유저 프렌들리 하게 설계되어있다. 엄마들은 푹신한 소파와 넉넉한 인스타 감성에 감탄하고 아이들은 짐을 풀기도 전에 계단을 보고는 복층 다락방으로 돌진했다. 이윽고 다락방을 모두 탐색한후 내려와 거실에 보란듯이 설치된 노래방 기계를 보자 더욱 흥분했다.(무…무서워) 노래방 기계 옆에 스파가 배치되어 있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 생각해보게 했으나, 결론적으로 기가차고 알이차게 즐겨주었다.
장본 물품들을 식탁에 풀어놓았다. 1박 2일 장인데 3박 4일 묵을듯한 양. 아주머니 세명이 모이니 먹는것 만큼은 너무나 든든한것!
식탁과 주방도 충분히 맘에 들었는데, 바베큐장으로 바로 연결되는 공간에 또 식사 공간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 정말 만족스러웠다. 주방 용품, 식기, 동선 등이 모두 사용자 위주로 맞추어져 있어, 사장님의 세심한 설계가 돋보였다.
아이들은 바로 수영복으로 환복하고 물에 뛰어 들었다. 습도 높은 날씨에 즐기는 물놀이가 얼마나 꿀인지 그들은 이미 알고있다. 그와중에도 들어가기 전에 가슴에 물을 묻히고 천천히 들어가는 모습이 어찌나 재밋던지. 이럴때만 선생님말 새겨듣는 아이들 ㅎㅎㅎ. 우리는 그들을 바라보기 좋은 장소(=바베큐장)에 터를 잡고 목을 축였다. 켈리를 전부터 한번 츄라이 해보고 싶었는데 말해무엇하나. 시-원한 맥주한잔은 왜 육아 중에 더욱 청량하게 느껴지는가.
엄마들을 찾지 않고 세시간여를 물속에서 내리 놀아준 아이들 덕분에 엄마들도 휴가기분을 만끽했다. 비로소 여행의 화룡점정 바베큐. 아빠들 없이도 숯도 잘붙이는 여자들. 최고급 한우는 애들 먼저 구워주고 우리는 삼겹살 알차게 구워먹기로. 그런데 진짜로 삼겹살이 더 맛있는 내 입맛 어쩌면 좋아. 이렇게 입맛까지 엄마로 진화하는 것인가 후훗.
바베큐가 완성될 즘 비가 한 두방울 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 구워진 고기는 바베큐장과 연결된 식탁으로 바로 이동. 두세접시를 땀을 빼며 구워서 식탁으로 대령하니 시원한 에어컨바람이 더 감사했고,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주어 보람찼다. 6명 모두 모여 뽀로로주스와 아사히 맥주가 어우러진 건배를 할 즈음부터 비가 멋있게도 쏟아졌으니, 그 비를 보며 먹는 저녁식사가 더욱 값지게 느껴졌다. 조금만 늦었어도 바베큐 어림없을뻔. 날씨요정 아이들 고마와.
식사후엔 비로소 노래방 타임. 어머니들도 노래 한가닥씩 뽑으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는 후문. 그들은 마이크를 우리에게 넘겨줄 의지가 1도 없었다. 아이브, 뉴진스, 르세라핌 그.. 또 누구냐. 아무튼 아이들 덕분에 4세대?5세대? 여돌들의 전성시대를 아주 그냥 제대로 실감했다. 100점을 맞기위해 그들은 가사를 한치의 오차없이 또박또박 힘껏 소리내어 따라 불렀는데 가사에 집중한 탓인지 음정을 놓쳐서 마치 랩같았다. 유딩래퍼(?)들의 공연이 끝날때마다 물개박수 쳐주느라 고생한 엄마들은 계속하여 맥주를 들이킬 수 밖에 없었다. 듣는 것이 부르는 것 보다 피곤한 아이러니.
다음날 아침. 밤새 비가 왔던것 같은데 언제 그랬냐는듯 너무도 청량한 하늘에 햇빛샤워. 마치 스위스 같은 이 분위기 뭐람. 가성비 스위스로 인정합니다.
어제 새벽까지 술마신 어매들 마음도 모르고 이자슥들 아침부터 수영 한판 더뛴다고 해서 옷 입혀 드리고 우리는 식탁에 앉아서 해장하며 구경. 방충망 너머로 사진 찍으며 눈육아한 엄마들 ㅎㅎㅎ
주먹밥으로 애들 아침 해주면서 너네 수영하면 오늘 스파는 못한다고 하나만 선택하라 했더니, 수영끝나고 스파도 몸 따듯히 덮힐겸 하고 싶다는 아이들. 너네는 진짜 돈이 안아깝다. 수영장에서 찬물에 한시간 넘게 놀더니 뜨끈한 스파를 하며 몸을 녹였다.
체크아웃하고 그냥은 집에 못가지. 나왔다 하면 뽕을 뽑는 아주머니들. 근처 핫플 카페 방문.
밀튼 카페는 총 두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층은 강뷰때문에 북적이지만 지하는 이토록 한산하다. 우린 어차피 아이들 때문에 뷰따윈 즐길새가 없으므로 당당히 지하 접수 ^^
아침에 든든히 해장했지만 우리는 또 달린다. 카페 시그니처 메뉴들 절대 못 놓치치지.(제발 놓쳐라 쫌.) 아이들도 1인 1메뉴 필수. 카페에서 노닥노닥하며 사진도 왕창 찍고 추억을 남겼다.
집에가려고 카페밖을 나오니, 이렇게 환상적인 날씨가. 집에갈때 날씨 더 맑고 좋아지는거 국룰.
집에 다다라서 점심 걱정하는 어매들. 근처 꼬마김밥집에서 김밥 픽업하구 아름다운 오후를 보냈다. 세 아이 각자의 성향은 다르다. 이제 아이들이 많이커서 성향이 다르다는 것 쯤은 확실히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시간을 알아온 탓인지 아이들이 각자의 성향을 존중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토라지더라도 곧잘 달래주며 서로 타협하여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모습은 너무 기특하고 대견하다. 너희의 작은 사회, 우리 엄마들이 계속 지켜줄게. 더 좋은 추억 많이 쌓자!
2. 엄마의, 엄마에 의한, 엄마를 위한 여행
친정엄마에게 올해는 뜻깊다. 첫째로, 약 40년 간의 교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한 해라는 점에서 그러하고, 둘째로는 환갑을 맞이한 해라는 점에서다. 엄마의 은퇴는 올 2월, 엄마의 생신은 올 6월 이었으나, 나는 제때 챙겨드리지 못했다. 시아버지가 투병중이신 탓에 즐거운 행사를 기획하는 것이 시의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에서, 엄마에게 양해를 구하고 축하를 미뤄두었다. 엄마가 섭섭해하시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엄마는 아버님 때문에 몸과 마음이 힘들 사위를 먼저 걱정해주었다.
아버님이 지난달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셨고, 어느덧 우리의 일상도 되찾았기에 엄마와의 여행을 기획할 수 있었다. 한템포 늦어진 축하파티, 그래서인지 더욱 더 완벽한 여행을 엄마에게 선물해 주고 싶었던 욕심이 컸던 탓일까.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내 욕심대로 완벽히 굴러가지 않았다. 남동생이 여행을 앞두고 코로나 판정을 받아 참석을 할 수 없게 되어 이미 아쉬움이 가득했는데, 이에 더해 여행 당일, 엄마 아빠의 바쁜 일정탓에 계획을 조정해야하자 마침내 내 안타까움이 짜증으로 표현되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매일 같이 엄마에게 잘하자 다짐했건만, 나는 그 다짐을 보란듯이 걷어차고 대차게 엄마에게 샤우팅하며 여행을 시작했다.
누군가는 부부싸움이 칼로 물베기라지만 내게는 엄마와의 싸움이 그렇다. 씩씩거리며 엄마에게 장전된 화를 폭발할 요량으로 만났는데, 엄마가 내 눈치를 보는 모습에 그만 또 스스로 반성하며 화가 스르르 풀려버렸다. 좋아진 기분으로 도란도란 수다 떨다 어느새 도착한 숙소.
내 기준, 여행은 숙소와 날씨가 절반 이상을 좌우한다. 숙소를 고를때 누구보다 고심하는 나. 좁은 호텔에선 우리 모두 함께하기 어려우니, 에어비앤비로 인적드문 곳에 위치한 조용한 숙소를 잡았다. 파아란 하늘, 초록초록한 잔디, 다양한 수목이 어우러진 정원을 지나 집으로 가는길. 너무 설레고 행복했다.
집안에 들어서자 마자 보이는 거실. 시원하게 트인 넓은 공간에 목재 식탁이 놓여져 있고, 깔끔한 화이트 톤의 벽면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잘 가꿔진 화분과 분위기 가득한 램프까지. 커튼을 열자 잔디정원이 보였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통창으로 여름 정원을 즐기는 호사를 누렸다.
거실 감상을 마치고 방을 하나하나 열어보는데, 깔끔히 정돈된 침구와 수건. 은은하게 풍기는 디퓨져향. 어느곳하나 나무랄 곳이 없던 완벽한 숙소였다.
짐을 풀자마자 아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손을 잡고 정원끝에 위치한 텃밭으로 산책나가고, 남편과 나는 바쁘게 엄마 파티준비를 했다. 가렌드, 풍선 스탠드 등을 설치하는 일은 손재주가 없는 내게 너무도 도전적인 일이었다. 엄마 축하파티를 제때 해주었다면 나는 그저 용돈을 두둑히 드리는 것으로 마음을 대신 했겠지만, 늦어진 축하라는 부채의식(?)때문에 난생처음 아기자기한 파티를 기획해보았다. 그런데 깨닫은 점 : 어? 나 생각보다 잘하네.
파티준비를 마치고 남편과 근처 편의점에 장보러 나왔다. 해가 살짝 진 정원은 또 그대로 매력이 가득했다. 감포의 퍼스널 컬러는 아마도 여름인가보아.
‘우리가 다녀올 동안 밭작물 좀 따줘 아들‘ 하며 아들에게 임무를 주었다. 아들은 한참동안이나 뜨거운 볕 밑에서 가지, 오이 등 여름 작물들이 자라는 모습을 함미하삐와 구경하다 방울토마토 10알을 따왔다.
주문했던 회와 치킨이 도착하고, 모두가 저녁준비로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 우리집 상전 두명(=가만히 있는 것이 준비에 도움되는 사람들)은 이렇게 도란도란 수다를. 하삐의 정신연령이 아들과 크게 차이나지 않아서 어찌나 다행인지 후훗.
케이쿠를 안먹는 가족. 그래도 엄마 파티를 위해 요렇게 아기자기한 케이크도 준비했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람! 앞으로 레터링 케이크는 이집이다!
신나게 먹고 즐기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산책을 나왔다. 운치있는 정원 너무 좋다.
근처 해수욕장까지 산책. 몽돌해변이라 모래해수욕장과는 또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해수욕장 가는길에 오토캠핑장을 보며 아들이 다음엔 저기 가보자고. 미리 찜콩함. 하고싶은 것이 많은 아들. 그리고 그런 것을 늘 표현하는 아들. 지나가는 말이라도 부지런한 엄마는 아들의 말을 잊지 않지. 다음에 반드시 데려와줄게 아들.
해수욕장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우노 카드놀이와 동양화 카드(=화투)놀이를 함께했다. 함미 하삐 정말 손자 1도 봐주지 않고 다 이겨버리는 클라스. 이겨서 좋아하는 엄마 아빠의 모습은 마치 아이같았다. 7세 아들은 실망도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승리를 함께 기뻐해주었다. 가장 으른같은 아들이 제일먼저 잠자리에 들고, 씻고 나오니 어느덧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 할 시간. 아빠는 유치함에 몸서리 치다 들어가버리고 엄마와 하트시그널을 나누었다.
아참, 내가 준비한 풍선. 짧은 문구지만 진심을 가득 담아 보았다.
나이가 뭐가 중요환갑, 엄마의 인생을 존경하고 사랑해!
새벽같이 기상한 우리집 으르신. 오늘 이구역 물총 스나이퍼 바로 얘.
제법 스나이퍼같은 모습에 멋있어서 한컷!
아침을 꼭꼭 챙겨먹는 우리가족. 블루투스 스피커로 흐르는 음악에 분위기를 더하고, 엄마가 좋아할 것 같은 커피를 내리고, 아들이 좋아하는 빵을 구웠다. 에르메스 백은 못사줘도 내가 커피계의 명품인 바샤커피를 준비했다면서 너스레도 떨어보고. 맛있고, 여유가득했던 아침. 나는 여행의 꽃을 조식으로 정의한다. 일상의 아침은 너무나도 바쁘기에. 늘 허둥지둥,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아침을 보내다, 이런 여유를 부릴수 있는 아침을 맞이하면 내가 여행왔다는 것을 실감한다. 같은 시간임에도 너무도 다르게 흘러가는 여행의 아침. 그 아침의 맛을 너무도 사랑한다 나는.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서 들른 바다뷰 카페. 시나몬 라떼가 특히 아주 고소하고 맛있었다. 아침을 빵으로 드시고도 휘낭시에를 꼭 챙겨드시겠다며 아들이 시킨 메뉴. 7세중에 누가 이렇게 휘낭시에 꼭집어서 좋아하냐구요. 그것도 무.화.과. 휘낭시에 꼭 먹어보고 싶었다며. 후훗. 역시 넌 내아들이야.
청량한 바다뷰 보며 힐링하고 다시 대구로.
동네에서 유명한 찜갈비집가서 엄마아빠 배 든든히 채우시게 하고 헤어졌다.
모두에게 다정한 내가, 다정을 늘 실천하려 애쓰는 내가 왜 엄마에게만은 그리도 다정하지 못한지 여행내내 많이도 생각했다. 그리하여 다다른 결론은 다정은 공짜가 아니니까. 언제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자란 나는 엄마의 사랑을 늘 너무나 당연하게만 여긴다. 엄마는 내가 무슨 일을 해도 늘 나를 사랑해줄테지만, 그 사랑의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잊고있었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엄마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유효하다. 할머니란 호칭이 더이상 어색하지 않은 우리 엄마, 환갑을 맞이한 우리 엄마. 더 이상 그 유효기간이 무한하거나 까마득해보이지 않는다. 먼 훗날의 내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라도 나는 엄마에게 다정의 가치를 실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효도하겠다는 거창한 다짐이 아니라, 전화 한통, 다정한 말 한마디 같은 다정의 리스트를 늘려가겠다고.
엄마를 위한 여행이라 말하고 기획하였지만, 어쩌면 온전히 나를 위한 여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먼 훗날의 나는 오늘의 여행을 너무도 그리워 할 것 같다.
#먹은것
나는 맛도리 먹도리지만, 의외로 유행하는 먹템을 찾아다니진 않는다. 마케팅에 놀아나고 싶지 않은 소신있는 먹도리랄까. 먹태깡, 아사히 맥주대란이 이어지고 있는 이번 여름, 나는 한번도 유행템을 찾아나서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전, 매일 드나드는 아파트 편의점에 갔다가 사장님이 준혁이네는 먹태깡 안찾으시냐고 물으셨다. 딱히 찾아먹진 않는다고 말씀드리니 말이 이어지지 않아 이어서 오늘 혹시 들어오나요? 하고 물으니 밤에 들어오는데 하나 빼두시겠다는 사장님. 사장님의 따듯함(?)덕분에 먹태깡 영접! 수고스럽게 얻어 낸 것이 아니라 더 기쁜, 이 요상한 마음은 나만의 것인가. 물론 맛있었지만 줄서서 기다릴 만큼은 역시나 아니었다. 그래도 사장님 덕분에 얻은 과자를 기똥차게 잘먹었다며 선의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원래 편의점 자리에는 조그마한 식료품 가게가 있었다. 마트라고하기엔 거창하고 구멍가게라고 하기엔 제법 큰 그런, 어느 아파트단지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동네 가게. 아파트 이름을 따서 지은 그 마트를 아들이 애기때부터 매일 드나들었다. 다른 가게와 다름 없이 필요한 물품을 다 구비해 놓았지만, 그 마트의 특장점은 바로 정말 맛있는 제철과일만 들여온다는 점이었다. 과일 매니아 아들때문에 사장님께 항상 새로 들어온 과일을 여쭈었고, 맛있게 먹은 후 늘 후기도 잊지 않았다. 사장님은 들여오는 과일을 고르시는데 나름의 자부심이 있으셨는데 우린, 아니지 4세 아들은 그것을 알아봐준 몇안되는 손님중 하나였다. 그렇게 사장님과 우리관계는 돈독해져 갔다. 재료를 사다 계산대로 가져가면 본의 아니게 우리집 저녁메뉴를 사장님께서 유추하시기도 하고, 며칠간 우리가 나타나지 않으면 준혁이가 아팟나보다며 함께 걱정해 주셨다.
그러던 어느날 사장님이 그 마트자리에 편의점이 들어설 것이라 귀띔해주셨다. 편의점 회사에서 이 자리에 편의점을 열지 않으면 근처에 해당 회사의 편의점을 내겠다고 협박같은 회유를 받은 그날이셨나보다. 많은 고심이 있으셨을테지만, 사장님은 그동안 마트를 성공적으로 운영해온 노하우를 더해 지금은 수완좋은 편의점 사장님이 되셨다. 사장님은 혁이의 성장과정을, 우리는 작은 마트의 변천사를 함께 목도했다.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이렇게 시간으로 점철된 인연이, 이유없이 잘되길 바라게 되는 그런 인연이, 나이들수록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먹태깡은 그자체보다도 사장님과의 관계에서 얻어진 부산물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오래오래 번창하시길.
토요일엔 늘 변함없이 스타벅스에서 점심을 먹는다. 아들의 학원 수업이 같은 동네에서 연달아 있기 때문. 내 절대 학군지에 위치한 학원으로 라이드 할 일은 없다고 장담해 왔는데, 아들이 원하는 종류의 수업을 받기 위해선 별 수 없었다. (엄마가 되고나서 느낀것인데, 세상에 장담할 일은 하나도 없다.) 긴 라이드 시간이 너무 고되지만, 7세 아들이 45분, 90분 수업을 연달아 받으면서도 늘 재미있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 내 수고에 대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느껴진다. 가끔 엄마 내가 원하는 시켜주기위해 운전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아들. 예쁨은 역시 찾아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한다. 어쨋든 아들에겐 재미난 수업이 있다면 내게도 보상이 있어야 하기에, 먹도리 엄마는 스타벅스에서 늘 맛난 샌드위치와 커피로 셀프보상. 이 시간이 얼마나 여유롭고 즐거운지. 이제는 루틴이 되어버린 스타벅스라 그리 맛있을 것도 없다 싶은데, 늘 가면 만족하게되는 스타벅스 마법.
승진시험에 합격한 후배들이 다 과장님 덕분이라며 점심을 산다기에 내가 애정하는 국밥집으로 데려갔다. 이 집 국밥 한번 먹으면 다른집 국밥먹기 힘들다는게 치명적 단점. 특히 부추무침이 michin 맛이다. 돼지국밥과 후배들의 사랑을 함께 먹었던 점심.
신행 다녀온 우리팀 차장님이 돌린 답례품. 호두과자도 안좋아하고 앙버터도 안좋아하는데 앙버터 호두과자는 넘나 맛잇는것. (으잉?)
아들 방학이라 아빠는 나이트 근무 끝나고 쉬지도 못하고 하루종일 아들과 함께 뒹굴었다. 출근전 일찍 일어나서 연어솥밥을 푸짐히 만들어두고 나갔다. 이것은 아들을 위한 것인가 남편을 위한 것인가. 누구를 타겟팅 했든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두 남자이기에 수고롭지 않았다.
같은 층에 근무하는 모르는 후배가 우리층에 예쁜 과장님이 계시다며 내 동기에게 말을 전했다고. 알고보니 그게 나라며 후훗. 역시 여자들에게 만큼은 인기가 많은 나.(여자한정) 예뿐 후배 밥이라도 사먹이자며 셋이 함께 했다. 내가 좋아하는 곳. 건강하고 맛있는 한끼, 아보카도 비빔밥집으로. 첨보는 후배였는데 한시간동안 연애, 결혼얘기하다보니 시간 순삭. 역시 회사사람이랑 개인적인 이야기 하는 것이 젤 재밋어, 짜릿해!
아들방학기간 끝으로 갈수록 점점 야위워지는 남편을 위해 이번엔 가지솥밥을 한푸대 해놓고 나섰다. 가지맛을 모르는 어린이 대신 오빠가 야무지게 먹어줬다는 후문. 누구라도 만족하면 됏다그 ^^
#읽은것
사촌동생이 책을 냈다. 공무원을 합격하고 얼마안되 퇴사대열에 합류, 해외에서 방황하는 요즘 시대의 청춘 중 한명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내 뒷통수를 날린 책이라 해야하나. 나를 누군가가 틀에박힌 공기업인이라 묶어 인식하고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조목조목 반박할거면서, 왜 나는 사촌동생을 그 청춘들 중 한명으로 치부하여 생각했을까. 자신과 딱맞는 삶의 모양을 찾기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그녀와 내가 다를바가 없다.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집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든 우리가 결국 우리 자신과 맞는 삶의 모양을 찾아 평생 방랑하는 것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공감하였다. 나와 다른 삶을 살지만, 결국 같은 것을 지향하는 그녀를 응원한다.
더나은 삶을 위한 철학이라는 제목에 끌려 선택한 책인데 계속하여 내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답을 얻고싶어요 흑흑. 더 나은 삶을 살기란 이리도 어려운 것인가봄.
#입은것
바쁜것도 아닌데 이번주는 ootd 사진이 두장밖에 남아있지 않네.
1. 우아한 블라우스에 가장 밴딩편한 바지 매칭. 매칭이란 것도 없었다. 연달은 저녁약속으로 그냥 가장 편하고 무난한 의상 선택
2. 캐쥬얼 데이라 최대한 젊은이 처럼 입은 것이 핵심. 정작 저렇게 입은 젊은이는 없다고한다.
#이벤트
회사사람이 나는 솔로에 출현했다는 소문이 파다하자, 집성촌 답게 온동네가 들썩들썪. 결국 다같이 한 집에서 단체관람 했다. 방송하기 세시간 전부터 모여 술판을 벌이다가 보니 더욱 꿀잼. 회사사람이 가족이고 연예인이고 친구인 이상하지만 재미난 우리동네. 이번주 가장 큰 이벤트였다.
#마치며
아들의 방학이었던 이번주. 남편의 희생과 노력 덕분에 나는 저녁약속들도 참석하고 평상시와 다름없는 매일을 보낼수 있었다. 늘 출근할 때면 엉덩이를 흔들며 잘 다녀오라고 배웅해주는 두 남자가 있기에 이번주도 힘차게 살아냈다. 늘 고마워 두남자. 이번주도 너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