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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Jul 21. 2024

어서와 아이와 유럽여행은 처음이지

(1) 런던여행 프롤로그 및 에필로그

내게 유럽은 어릴적 아빠를 따라서 한번, 다 커서는 공부하느라 또 인턴하느라 두번, 살아볼 기회가 있었던 탓인지 여행지로서는 그리 낯설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곳이다. 그럼에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면 내 인생에 준혁과 주광이 등장하기 전, 그러니까 오롯이 자유 의지로만 살수 있었던 시절의 나(=전생)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곳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아이가 말이 트이고, 대화가 될 무렵부터 함께하는 유럽 여행을 늘 마음으로 꿈꿨다. 나에겐 경험에서 비롯된 확신이 있었다. 꼬꼬마 시절, 처음 유럽 땅에 발을 딛고 내가 받았던 충격과 감흥을 아이가 비슷하게나마 경험하게 된다면, 그것의 크기나 무게와 관계없이 그 경험이 그의 인생에 언제고 어떤 방식으로든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눈에 보이는 효용만 믿는 남편에겐 터무니 없는 소리였다. 그는 온종일 걷고 또 걸어야 하는 여행이 아이에게 부담만 주고 힘들게만 하는 것은 아닌지, 지금이 과연 그러한 임팩트를 주기에 적절한 시기인지를 나보다 깊게 고민했다. 남편은 아직은 조금 이르다며 조바심을 내는 나를 여러번 다독였지만 혁이는 괜찮을거란 내 설득에 결국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의 첫 유럽 여행이지만 에펠탑 찍고 콜로세움 찍고 빅벤 찍는 이른바 찍기여행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주로 한 도시에 짐을 풀고 최대한 오래 머물면서 그곳에 스며드는 방식 여행을 고집하기에 유럽의 수많은 도시들 가운데 한 곳을  집어내야했다. 머릿속에 불쑥 런던이 떠올랐다. 그곳이었을까. 이 결정엔 타당한 논리같은 것은 수반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여행을 마치고 난 지금, 결과론적으로 끼워맞춰 보자면 아이와 가장 잘 어울리는 특성을 가진 도시 같다는, 나만의 직 런던을 택하게  것 같다.


어문학부를 나온 나는, 주변의 많은 친구들을 보며 대부분이 본인의 성격과 기질에 견주어 그와 유사한 문화나 국민성을 가진 국가의 언어를 전공으로 택한다는 생각을 종종했고, 그러한 주장은 상당한 확률로 맞아 떨어졌다. 때때로 그러한 성격을 가졌기에 그 언어를 택했는지 또는 그 언어를 택했기와 잠재되어있던 그와 유사한 기질발현된 알 수없는 사례들도 있었으나, 나만의 논리는 사람마다 제각기 자신과 어울리며 이유모를 편안함을 느끼는 그런 나라나 지역이 분명 있을 거 생각하게 했다. 태어난 나라가 우연히 나의 기질과 정말 잘 맞는 국가일 확률이 그리 높을까. 이런 관점에서 들은 어떤 나라를, 그리고 도시를 그렇게 느끼게 될까, 하는 짧은 고민 끝에 나는 영국행 티켓을 끊었다. 내 직관이 이번에도 맞아 떨어질까 궁금해하며.


지난한 설득의 과정 끝에 결정한 여행이라 더욱 값지게 느껴졌을까. 8살 먹은 아들 뿐 아니라 40넘은 남편까지 고려한 열흘짜리 맞춤 여행일정을 짜면서도 조금도 귀찮거나 피곤한지 몰랐다. 어쩌면 여행을 기획하며 나는 남편과 아들이 품을 감흥보다는 이들에게 젊고 꿈많던 시절의 내 이야기들을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들떴는지도 모르겠다. 항상 내 이야기가 젤 재미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유럽은 내게 그런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더없이 적합한 그런 곳이니까. 그런데 여행내내 나는 내 얘기는 커녕 준혁이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은 것을 따라가기도 너무 바쁘고 벅찼다.


아이에겐 당연한 것을 다시금 생각케 하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 같은 곳을 가고 같은 것을 먹어도 내가 이전에 겪고 느낀 것과 전혀 다른 경험인것 마냥 색을 덧입혀준다.


익숙한 곳을 떠나 매일이 모험 같던 날들속의 에피소드들은 오래도록 우리 가족의 대화 주제로 오르내릴 것이 분명하다. 사진도 많이 찍고 기록도 열심히 남겼지만 정작 아들에게 베스트 모먼트를 꼽으라 하니 엄마 아빠와 함께 손잡고 걷던 모든 순간들이었다고 말해서 찡했다.


서로의 소중함을 다시금 알게 되고 우리만의 이야기를 갖는것. 그것만으로도 이 여행의 가치는 충분했다.


매일 새벽부터 이만보씩 걸어도 불평 한번 않고 먹고 놀고 보고 듣는 모든 순간을 온전히 즐긴 아들, 나와 아들이 즐겁게 다닐 수 있도록 훌륭한 짐꾼/놀이꾼/집사 etc. 역할을 해준 남편, 두 남자 덕분에 더없이 행복한 기억만 남겼던 이번 여행.


그 여행의 기록들을 풀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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