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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ot Jun 24. 2020

나는 첫 회사에 출근한 지 3일 만에 잘렸다

먼저 잘라줘서 감사했습니다.

그러다 퇴근시간이 가까워 올 때쯤 선배님과 팀장님이 함께 나갔다가 두 분이 웃으며 다시 자리로 오셨다. 그리고 팀장님이 나를 따로 불러내셨다. 싸한 느낌이 왔다.



지수 씨, 스스로도 일 못한다는 거 알고 있죠?
우리랑은 안 맞는 것 같은데 내일부턴 안 나오는 게 낫지 않을까요?




예상했던 대로였다. 나는 첫회사에서 출근한 지 3일 만에 잘렸다.





잘렸다. 그것도 3일 만에 잘렸다. 온갖 걱정과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약간의 해방감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구질구질하게 저에게 하루만 더 기회를 주십사 청했다. 정말 오고 싶었던 회사라서 이렇게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할 것 같았다.




퇴사권고를 듣고 회사를 나오는데 울컥했다. 그래도 길거리에서 울고 싶지 않았기에 참았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일까.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응, 엄마~
퇴근했어? 오늘은 어땠어?


전화를 받는데 엄마 목소리를 듣자마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이미 울고 있었다. 부모님께 부끄러운 딸이 되었다는 죄책감과 나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으로 범벅이 되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대로 주저앉을 것 같아 급하게 전화를 끊고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잘렸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 부끄럽기도 하고 다른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을 친구에게 나의 소식으로 분위기를 깰 수는 없었다. 잘 놀라며 친구와 전화를 끊고 막냇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까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최종적으로 잘렸다고 전했다. 수화기 너머로 탄식이 들려왔다.









자취방에 도저히 혼자 있을 수 없을 것 같아 본가로 향했다. 다행히 내일부턴 휴일이기도 했고, 그 회사에서 기회를 주시기로 한 날은 4일이나 뒤였기에 가능했다.


본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혼자 세상 모든 우울을 다 짊어진 양 창밖만 바라봤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리고 집까지 걸어가려는데 아까 통화를 했던 막냇동생이 마중 나와 있었다. 평소엔 스스로 마중은커녕 손에 돈을 쥐어줘야 나오는 아이인데 내 심란한 마음을 알았는지 옆에서 묵묵히 같이 걸어주는데 그게 그렇게 고마웠다.


완벽한 내 사람이 옆에 있어서일까. 그때부터 길 한복판이고 뭐고 눈에 뵈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는 처음으로 그렇게 울어 본 것 같다. 회사에 대한 악감정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부족하고 모자란 것에 화도 나고 부끄럽기도 했고, 세상에 거부당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이틀을 우울해하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고민했다. 이미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곳에 하루의 기회를 잡았으니 마지막까지 도전해 볼 것인가, 아니면 이번 기회에 나의 부족한 점을 알았으니 그것을 보완하여 다른 곳에 지원을 하며 재충전할 시간을 가질 것인가.


결정했다.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곳에 가기보단 스스로에게 부족한 점을 채우고 다음 회사에 가기 전에 완벽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다 채우고 가기로.








그래서 3일 만에 잘린 회사에 장문의 카톡을 남겼다. 전화를 해서 전하고 싶었지만 번호를 알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우선 3일 동안 답답하셨을 텐데 성실하게 업무를 가르쳐주려고 하신 선배님과 팀장님께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 자신도 당장 업무에 뛰어들기는 부족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팀장님께서 회사와 제가 맞지 않다고 말씀하셨을 때, 더 확실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 자신도 이 회사와 맞지 않다고 느꼈기에 여기서 회사와의 인연을 놓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회사에서 함께 업무를 하게 되어 영광이었고,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 짧은 고생했다는 답장조차 없이 나의 카톡은 읽고 먹혔다. 하지만 그동안 답답했던 속이 그제야 시원해졌다. 억지로 붙잡고 있던 동아줄을 놓은 기분이었다.


그곳을 확실하게 놓고 보니 알 수 있었던 것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업무 외적인 인간관계에서 조금 버거워했었는데 만약 그곳에서 먼저 나를 자르지 않았다면 분명 첫 회사라고 억지로 다녔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 마음은 썩어 문드러졌을 테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한 후부터 나는 다시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래도 그 회사를 3일밖에 안 다녔지만 분명 혼나면서도 배운 것이 있었고, 나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시작했다.

내게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마케팅 관련 책도 읽고 실제로 마케팅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사례도 찾아보고 요즘 트렌드를 알기 위해 경제기사, IT 관련 소식들은 모조리 알아보며 조사했다. 실무적으로 부족하다 생각했던 엑셀도 속도를 올리기 위해 연습하고, 기본적인 것은 모조리 알아 두려고 공부했다.









그렇게 다시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고, 감사하게도 다시 한번 내게 기회가 주어졌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아직 취준생인 분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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