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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ot Jun 26. 2020

동생이 내게 언니라 했다

하지만 다시 감자가 되었다



우리 집에서 나의 존재감은 꽤 옅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은 아니다. 딸부자 집의 장녀로 살아오면서 딸이 많아서 그런지 우리 집은 항상 시끌벅적한 집이었고, 단 한 번도 부모님의 사랑이 부족하다 느낀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하나가 부족했다, 동생들의 사랑!








나는 어릴 적부터 동생들을 상당히 귀여워하는 언니였는데, 그게 유별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친구들과 동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부터다. 친구들은 본인의 동생에 대해서 나만큼 예뻐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동생이 집에서 애교를 부리면 친구들은 징그럽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그에 비해 나는 동생들의 애교를 보기 위해 맛있는 것을 사주거나 갖고 싶다는 옷이나 액세서리를 사주는 등 뇌물을 주는 언니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들은 목적이 있었다..)


그렇게 나에게 있어 동생들은 무얼 해도 귀여운 존재였다. 남자 친구에게도 안 생기던 콩깍지가 동생들에게 꼈다. 하지만 내가 정말 많이 예뻐하는 것과 반대로 동생들은 나를 놀리고 괴롭히기 바빴다. 놀리면 나오는 나의 반응이 재밌다며 놀리는 것이 거의 일상이었다. 











나의 동생들은 어려서부터 나의 맹한 구석을 잘 알아서인지 아님 편해서인지 나를 절대로 언니라 부르지 않았다. '감자'(애칭 혹은 별명)로 부르거나 ‘지수야’라며 이름을 불렀다. 그렇다고 해서 서운하다거나 기분이 나빴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동생들이 나를 편하고 친구처럼 여기는 것 같아 기뻤다.


그러다 어느 날, 둘째가 내게 ‘언니’라고 부르며 다가왔다! 내게 원하는 것이 있어 보였다. 찰나에 본 그 아이의 눈은 탐욕과 순진함을 섞은 얌체 같은 눈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언니라고 부른 것 자체가 놀랄 일이었고, 감동이었다.




와 피피(가명)가 나를 언니라고 했어..





놀란 나머지 그렇게 말했더니 동생은 내 말이 웃겼는지 한바탕 폭소가 일었다. 밖에서 둘째 동생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듣고 막내까지 내 방에 달려와서는 둘이 신나게 같이 웃어젖혔다. 당시 나는 웃는 둘이 그저 귀여워서 같이 웃었다.


동생들과 허물없이 편하게 지내는 것이 좋아서 언니라고 부르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오랜만에 들은 언니라는 말은 생각보다 좋았다. 크리스마스에 산타할아버지로부터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은 그런 느낌이었다. 항상 만만한 언니로만 여겨지는 줄 알았는데 나를 언니로 여기긴 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나는 다시 감자가 되었다.

아주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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