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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ot Jul 07. 2020

그날 친구 하나를 잃었다

진짜 친구였을까




고등학교 때였다.

석식시간에 항상 같이 밥을 먹던 친구와 밥을 다 먹고 나서 산책이나 할 겸 교내 밖으로 나왔다. 평소와 같이 그 친구와 운동장 트랙을 돌았다. 오늘은 꼭 이 친구와의 불편했던 점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자 다짐했다.







고등학교 때의 나는 밥 먹는 시간이 되기 5분 전부터 책상에서 오른쪽 다리부터 꺼내놓고, 튕겨나갈 준비를 하는 학생이었다. 밥을 먹으러 빨리 급식실에 가는 것도 좋아했고, 밥을 빨리 먹는 것도 좋아했다. 항상 밥을 빨리 먹는 나와 달리 나와 함께 밥을 먹던 친구는 음식을 먹을때 천천히 맛을 음미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밥을 늦게 먹든 빨리 먹든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당시의 나는 밥을 일찍 먹고 교실로 돌아가 공부할 시간을 벌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 친구와 둘이 밥을 먹을 때면 혼자 두고 갈 순 없어서 멀뚱멀뚱 기다리거나 주변에 다른 친구들이 밥을 먹고 있으면 합석해서 먹다가 나는 공부한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사에 빠른 나와 매사에 느린 그 친구는 언제부턴가 서로의 속도에 맞추기 힘들었던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당시 나는 그 친구와 함께 있는 순간들이 점차 불편해졌다. 내가 밥을 다 먹는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면 그 친구는 20분은 걸리는 친구였다. 이런 속도의 차이는 결국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함께 밥을 다 먹고 그 친구와의 합의점을 찾기 위해 운동장을 돌며 대화를 통해 해결하고 싶었다. 대화를 통해 서로에게 충분히 맞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와 운동장을 돌며 어떻게 대화의 포문을 열어야 할지 한참을 뜸을 들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혜진(가명)아,
나는 너에게 서운한 점이 있는데,
너도 나한테 서운한 거 있으면 말해줄래?



우리가 함께하는 모든 시간에서 나는 너와의 시간차가 느껴져서 솔직히 답답하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친구에게 나의 속도에 맞추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리고 나와 그 친구가 성격이나 취향이 많이 다르지만 서로 대화를 더 많이 하다 보면,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같이 맞춰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부분을 다 말하고 나서 너도 나에게 원하는 점이나 서운했던 부분이 있다면 말해줄래?라고 말을 맺었다. 그리고 나는 한껏 기대했다. 처음으로 타인과 맞춰갈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나와 다른 타인과 맞춰가는 방법을 배우면서 그 친구와 더욱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만이었다.




왜? 너만 나한테 맞추면 되잖아?

친구의 말에 나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마냥 충격에 빠져 버렸다.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다 겨우 입을 떼었다.



그럼 너는 네 잘못은 하나도 없이, 오로지 나 때문에 우리 관계가 좋지 않다는 거야?

말을 끝마치고서 나는 긴장했다. 친구가 정말로 그렇다고 대답하진 않겠지? 너만 잘못했어가 아니겠지? 손바닥도 부딪혀야 소리가 나듯 다툼이란 것도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분명 쌍방의 과실일 텐데. 우리 둘다의 잘못이니까 같이 맞춰나가자는 말에 이 친구도 호응해 주겠지? 하며 마지막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그 기대마저 산산조각 내는 말이 들렸다.


응, 너만 바뀌면 돼.



나는 더 이상 그 친구와 말을 섞을 자신이 없어져 버렸다. 이 이상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고, 솔직한 심정으로 그 친구를 나의 가까이에 두고 싶지 않아 졌다. 최대한 멀리 해서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아 졌다. 이렇게까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충격은 생각보다 컸나 보다. 내 나름대로 친구가 상처 받지 않도록 대화를 나눌 장소와 시간을 고르고, 말을 고르고 골라 상대가 들어도 기분 나쁘지 않을 단어로만 최대한 모아본 거였는데 이렇게 내 나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날 나는 친구 하나를 잃었다.









그 날의 일이 있고 난 뒤부턴 사람을 볼 때 대화가 통하는 상대를 좋아하게 되었다. 남자든 여자든, 어리든 나이가 들었든, 얼굴이 어여쁘던, 목소리가 좋던, 키가 크던, 그런 사소한 부분에 상관없이 대화가 통하는 상대라면 어떤 이야기를 해도 함께하는 그 시간이 좋다. 또한 갈등이 생겼을 때 대화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것. 그래,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그리고 나 또한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허구헌 날 말로만 하는 노력말고 정말 행동으로 보여주는 노력으로 말이다.


지금도 연락이 되지 않는 그 친구가 지금 다시 그때 그 질문을 했을 때 어떻게 대답할지 궁금하다.

지금도 여전히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고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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