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담당 변호사의 소고
불법이지만 손해배상은 안해도 돼
최근 대법원은 지난 2011년 애플이 사용자의 동의 없이 위치정보를 수집한 것에 대해 우리나라 아이폰 사용자들이 제기한 집단소송에서 애플이 위치정보법을 위반한 것은 맞지만 손해배상은 할 필요가 없다고 최종적으로 판결했습니다.
아. 이 사건이 이제야 대법원 판결이 나왔구나.
지난 2011년 당시 이 사건을 담당하는 팀에 있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워낙 진행이 안되고 있었는데.
7년이나 걸렸네요.
분명히 과태료 300만원을 낸 불법이었는데, 왜 손해배상은 안해도 된다고 했던 것일까요? 마치 모 연예인의 유명한(...) 말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했어요
이 사건의 결론은 사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예상한 대로이긴 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그 때 아이폰을 쓰고 있던 사람들 - 저를 포함해서 - 이 애플의 불법 위치정보 수집을 알게 되었을 때, 화가 나거나 불안하지 않았거든요. 복잡한 손해배상의 법리가 있긴 하지만, 그냥 이렇게 생각하면 대략 맞습니다. 사실, 애플이 잘못하긴 했는데, 그게 이용자들에게 정신적인 손해를 입혔다는 증거는 없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사건에서 꼭 알아야 할 법률 상식이 하나 있습니다.
'지급명령'이라는 것이 날아오면 불법주차 딱지처럼 묵혀두면 절대 안됩니다.
법원인지 경찰서인지 모를 기관에서 이상한 서류가 날아왔는데 그 모양이 과태료 딱지처럼 생겨서 나중에 내려고 그냥 뜯지도 않고 묵혀두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제목이 '지급명령'이라면 꼭 뜯어 봐야 합니다. 이게 뭐냐면,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라도 누가 나한테 돈 100만원을 내 놓아라 이렇게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하면 법원이 내용을 보지도 않고 그냥 나한테 보내는 것이거든요. 2주 동안 내가 거기에 반박하는 서류를 내지 않으면, 법원은 그냥 '아 니가 아무 말 없는 것을 보니 돈 100만원 줄 것이 있구나'라고 판단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은 우리 집 TV에 압류 딱지를 붙일 수 있습니다 ㅠㅠ
이게 애플 사건이랑 무슨 관계가 있느냐. 처음에 애플로부터 위자료 100만원을 받은 사람이 바로 이 '지급명령'을 통해서 애플로부터 돈을 받아 냈거든요. 애플이 2주 내에 아무 대응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사람이 애플 은행 계좌 압류까지 해서 실제로 돈도 받아 냈고, 그래서 집단소송이 모집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엔 저도 의아했습니다. 왜 애플이 아무 대응을 하지 않았을까? 혹시 담당 직원이 과태료 딱지인 줄 알고 그냥 서랍에 넣어 놓았나? 뭐 당시 담당 변호사 중 한 명이었지만 정확한 이유는 모릅니다. 아마도 애플이 괜히 대응했다가 사건을 키울 것 같아서 무대응했을 수도 있고요. 적어도 저에게 '지급명령'이 뭐냐고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같은 팀 선배 변호사에게는 물어 봤을지도).
어쨌든 여기에서 우리는 '지급명령'의 중요성을 알게 됩니다.
지급명령은 꼭 뜯어보고, 꼭 2주 내에 법원에 꼭 이의신청을 합시다
2만명 넘게 참가해서 7년을 끈 집단소송인데 교훈이 좀 허무하긴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