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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엽 Mar 22. 2018

바람의 빛깔

- 포카혼타스, Colors of the wind

토요일 아침. 

포항으로 가는 길이 마냥 신나지만은 않았습니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첫째 아이와 

초등학생 둘째는 

볼 맨 소리로 

‘주말에 놀아주기로 했잖아’를 외쳐댔습니다. 


“아빠 오늘 금방 하고 돌아올게.” 


라고 돌아섰지만, 

실은 자정이 넘어서야 도착하는 기차를 예약했습니다. 

그렇게 간신히 아이들을 달래다보니 

잘못하다 기차를 놓칠지도 모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부리나케 지하철로 달려가 

사당역에서 갈아타고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 


10분도 남지 않은 시간에 

사력을 다해 뛰기 시작했습니다. 

휴- 제 자리를 찾고 나니 바로 떠나는 기차. 


자리를 확인하고, 

잠시 숨을 돌릴 새도 없이 울리는 영상 통화.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옆에 계신 어르신께서 

흐흠- 흐흠- 하시며 

자꾸 헛기침을 하십니다. 

이내 자리 밖 화장실 앞에서 통화. 

그렇게 

슬라이드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한 채 

포항역에 도착했습니다. 


변화경영연구소 영남권 모임은 

두 달에 한 번씩 독서모임을 합니다. 

단순히 책만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강연자를 꼭 초대해서 

책에 대한 뒷이야기를 듣는 것이 

특징입니다. 


벌써 61번째 모임이 진행될 만큼 

뿌리를 내렸습니다. 

어떻게 저를 섭외 할 생각을 하셨냐는 저의 질문에, 

선배 연구원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그냥요.” 


저는 '그냥'이라는 말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왠지 직관적인 냄새가 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이성적으로 이것저것 길이를 재지 않고, 

어떤 것이 나에게 더 이익일까를 

굳이 따지지 않는 느낌. 


그저 좋은 것 반, 

별루인 것 반, 

그리 나쁘지 않은 느낌이 1% 정도 더 한, 

왠지 대단한 것 하나를 얻은 듯 한 

뿌듯함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소중한 강연을 해달라는 기회를 주신 것 자체가 

‘그냥’ 좋았습니다. 


아직은 ‘작가’라는 칭호가 

무지 어색한 저에게 

무언가 날개를 달아주는 것 같은 

'허세'도 한 몫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제 강연은 

일반적인 ‘강연’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자라온 

어릴 적 이야기, 

그러다가 갑자기 찾아온 가족 회사의 부도, 

그리고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배신과 상실, 

그리고 

드라마틱한 회생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도표 몇 개를 그리기도 했지만, 

그저 강연을 포맷을 따라간 것이지 

그것이 핵심이 될 수는 없습니다. 


참가자 분들 중에 

몇몇 분들은 저와 같은 경험이 있으셨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시며 

깊은 한숨을 내쉬기도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독서 토론의 시간이었습니다. 

독서토론은 제 책 <파산수업>이 아니라, 

이미 다른 책으로 지정되어있었습니다. 

이번 달의 지정도서는 

채사장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라는 책이었습니다. 


각자 돌아가면서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 할 때였습니다. 

그분은 갑자기, 


“만약 네가 짐승들에게 말을 건다면 짐승들도 너에게 말을 걸 것이다. 

그러면 서로를 알아가게 될 것이다.”


라는 부분을 인용하시며, 

벌떡 일어나시더니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반주를 찾아 함께 틀어놓으시면서요. 


‘사람들만이 생각 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지는 마세요

나무와 바위 작은 새들 조차

세상을 느낄 수가 있어요

 

자기와 다른 모습 가졌다고

무시하려고 하지 말아요

그대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요

 

달을 보고 우는 늑대 울음소리는

뭘 말하려는건지 아나요

그 한적 깊은 산속 숲소리와

바람의 빛깔이 뭔지 아나요

바람의 아름다운 저 빛깔을 


이 노래는 디즈니 만화영화 

<포카혼타스>의 Colors of the wind라는 노래를 번안한 것입니다. 


9살 제주도 소년이 

한 프로그램에 나와서 

청아하게 부르던 모습에 유명해지기도 한 곡입니다. 


그 소년은 어느덧 성장해서 

얼마 전 평창올림픽 폐막식에서도 

래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노래를 듣고 난 다음부터 

저는 자정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 올 때 까지 

계속해서 이 멜로디를 흥얼거렸습니다. 


이 노래 가사처럼 

‘바람이 보여주는 빛을 볼 수 있는 그런 눈을 가지기 위해’ 

저 또한 새벽에 아이들의 칭얼거림을 뒤로 

포항행 기차를 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바람의 빛깔을 따라 

포항에 당도했고, 

이 모든 분들을 만나 

저의 이야기와 하나 되고, 


결국, 

노래 가사처럼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책 속의) 세상을 아름답게 들여다’ 보며 

책 속의 재미에 흠뻑 빠졌습니다. 


다음 날, 

포항에 가서 선물 사왔냐는 아이들의 질문에 

저는 이 노래 <바람의 빛깔> 동영상을 

유투브에서 찾아 틀어주었습니다. 


아직도 

선율 속에 바람처럼 산들거리는 

빛깔들이 눈앞에 선합니다. 


무언가 재지 않고, 

‘그냥’ 수락한 포항행 강연. 

무언가를 재지 않았기에 

더 많은 것을 얻어 갔습니다. 


포항의 바람도, 

사람들의 채취도, 

책에 대한 사랑도, 

그리고, 

새로 만나게 된 소중한 인연들도 말입니다. 


채사장 책의 제목대로 

‘우리는 언젠가 만나’게 되겠지요. 

바람의 빛깔을 따라서요. 


정재엽 드림 (j.ch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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