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시작한 지 2주가 되어 간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오래 앉아 있다고 해서 좋은 글이 써지진 않더라. 오히려 좋은 글감이 있으면 30분 만에 윤곽이 그려지기도 했던 반면,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대체 무슨 글을 쓰고 싶은 건지 나조차 헷갈리기도 했다.
하루는 식구들이 모두 잠든 후 노트북을 열고 글을 완성해볼 심산이었다. 내 작업 공간인 식탁을 물티슈와 각티슈로 깨끗하게 닦았다. 너무 조용하면 오히려 집중이 되지 않아 헤드폰을 쓰고 악뮤 노래를 틀었다. 처음에는 생각한 흐름대로 잘 써지는가 싶더니 새벽 2시 즈음이 되니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쓰레기 분리수거하러 나갔다 들어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사온 캔커피도 마셔봤지만 쏟아지는 졸음의 무게는 애초에 캔커피 따위가 감당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냉장고를 열었다. 마치 간식거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배고프면 일단 냉장고부터 열어보는 아들 녀석처럼 말이다. 어제 장을 보지 않아서 그런지 딱히 먹을거리가 보이질 않는다. 그때 문짝 안쪽 가장 위에 쌓여 있는 치즈 아래로 검은색이 무언가가 반짝거렸다. '아! 맞다! 초콜릿!' 이틀 전에 막내딸이 초콜릿을 사달라고 졸랐을 때 m으로 시작하는 동그란 초콜릿을 사줬다. 하필 작은 사이즈가 없어서 큰 사이즈를 사줬다. 얼마 전 치과를 다녀와 고생한 딸이라 다 주지 않고 절반만 용기에 담아주고 나머지는 내가 필요할 때 먹으려고 냉장고 치즈 아래 잘 보이지 않게 넣어뒀다. 나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한 개, 두 개... 몇 개를 집어 먹었을까? 신기하게도 졸음이 달아나고 정신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역시 당이 떨어진 것이었나? 그래도 이렇게 정신이 맑아지다니 솔직히 조금 놀랐다. 의자를 앞으로 당기고 다시 글을 쓰려고 하는데, 이 기분을 잊기가 싫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새벽 3시에 이 초콜릿과 같은 존재에 대한 글을 꼭 써보겠노라고. 나는 브런치의 작가의 서랍에 '새벽 3시 초콜릿과 같은 존재'라는 제목만 달랑 저장하고 쓰던 글을 마저 써 내려갔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쓰기로 다짐했던 글은 시작도 못하고 되려 다른 글을 발행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당시 내 감정을 제대로 담은 글을 쓸 자신이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발행했던 글은 모두 '슬기로운 직장 생활'이라는 매거진에 들어가는 것들이었다. 매거진을 채워가는 도중에 감성이 실린 글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그래도 그때의 감정이 더 이상 희석되기 전에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존재가 있다. 내가 그 존재를 항상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늘 내 주위에 있고, 무언가에 집중하지 못하고 피곤해하는 나에게 함께한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그런 존재 말이다. 나는 그들을 '새벽 3시 초콜릿과 같은 존재'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내게도 그런 존재들이 하나도, 둘도 아닌 셋이나 있다.
첫 번째 초콜릿은 4년 전 처음 만난 잉클 OB 멤버들이다. 잉클은 HFK에서 운영하는 잉글리쉬 클럽의 약자다. 이 멤버들과는 처음 2년 동안 거의 고정 멤버로 한 달에 두 번씩 영어 아티클을 읽고 만나 토론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아무 연고가 없는 이들이 2년 동안 커뮤니티를 이룰 수가 있을까? 이 멤버들과 처음 만났던 날들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첫날부터 마치 오랜 친구처럼 대화가 즐거웠다는 것이다. 2년이 지나고 개인 신상의 변화로 지금은 절반 정도만 남았지만, 우리는 그와 상관없이 OB 모임을 이뤄 종종 만나고 있다. 사실 만나는 주기도 일정하지 않다. 이직과 같은 이벤트가 생기면 만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뜬금없는 이유로 만나기도 한다. 이들이 나에게 '새벽 3시 초콜릿과 같은 존재'인 이유는 대화를 하면 할수록 에너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시시콜콜한 주제이든, 진지한 주제이든, 모두 초롱초롱한 눈으로 들어주고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받아준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아픔과 어려움에 진심으로 공감해주고 경사가 있으면 너무나 해맑게 기뻐해 준다. 이들을 알아갈수록 살아온 삶의 여정이 다르다는 걸 발견하면서 동시에 그럼에도 나와 참으로 잘 맞다고 생각한다. 아래 사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다. 내게는 '새벽 3시 초콜릿과 같은 존재'인 이들의 모습을 잘 담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초롱초롱한 눈으로 들어주고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받아준다
두 번째 초콜릿은 막내딸이다. 사실 '막내딸'은 그 단어만으로도 반칙이다. 딸바보 아빠들에겐 굳이 왜 새벽 3시 초콜릿과 같은 존재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을 거다. 초등학교 2학년 막내딸은 몇 년째 아빠가 퇴근할 때마다 '어흥' 호랑이 소리를 내며 달려 나온다. 나도 몇 년째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안아준다. 하루 동안 어떤 힘든 일이 있었는지 상관없이 해맑은 얼굴만 봐도 피곤이 싹 가시는 내게는 비타민과 같은 존재다. 여전히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잘 생겼고, 아빠와 같은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걱정한다. 아빠로서 한 가지 걱정이라면 과연 막내딸이 언제까지 아빠 바라기로 남아 줄지다. 이런 걱정을 얘기할 때마다 아내는 이렇게 답하곤 한다. '아직 생기지도 않은 일 걱정하지 말고, 지금 실컷 즐겨~' 이 말이 정답이다.
딸은 아빠와 같은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걱정한다
세 번째 초콜릿은 사람이 아닌 내가 너무나도 아끼는 노래들이다. 아내는 내 노래 취향을 아재 감성이라고 말하긴 하지만, 나는 이 곡들을 수백 수천번씩 듣고 있다.
김진호 - 가족사진 (링크)
정승환 - 사랑에 빠지고 싶다 (링크)
손승연 -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링크)
양희은, 악뮤 - 엄마가 딸에게 (링크)
이소라 x 정승환 -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링크)
곽진언 x 김필 - 걱정말아요 그대 (링크)
이문세 x 김윤희 - 그녀의 웃음소리뿐 (링크)
이들 노래의 가사뿐 아니라, 나와 비슷한 감정을 지닌 댓글들까지도 사랑한다. 내 마음에 위로가 필요할 때든, 정말 큰 힘이 필요할 때든, 기분이 좋을 때든, 여유를 즐길 때든 이 노래들은 늘 내 곁에 있었다. 4년 전 엄마가 암에 걸리셨을 때는 '가족사진' 노래를 들으면서 참 많이 눈물 흘리면서 동시에 위로를 받았다.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들으면서는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는지 때마다 뒤돌아본다. 노래란 '그저 노래'이기도 하지만 노래를 만들고 부른 사람의 감정이 묻어나기 때문에 특별하다. 그 감정선이 나와 맞게 되는 순간이 오고 그때는 '새벽 3시 초콜릿과 같은 존재'가 된다.
노래를 만들고 부른 사람의 감정이 묻어나기 때문에 특별하다
이처럼 나에게 새벽 3시 초콜릿과 같은 존재가 많아서 정말 행복하다. 그런데... 글을 써 내려가다 한순간 막혀 버리고 말았다. 바로 나 스스로를 향한 질문 하나 때문이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새벽 3시 초콜릿과 같은 존재일까?
잉클 OB 멤버들에게 나는 새벽 3시 초콜릿과 같이 마음이 힘들 때 위로가 되어 주는 존재일까?
막내딸에게 나는 새벽 3시 초콜릿과 같이 행복을 주는 존재일까?
내 주위 사람들에게 내 보석함의 노래들처럼 나는 새벽 3시 초콜릿 같이 기분 좋은 영향을 주는 존재일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래서 아직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런 존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여러분의 새벽 3시 초콜릿과 같은 노래는 어떤 곡들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