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나는 평생 꿀잠을 잔다

핸디캡 같지 않은 핸디캡이라 핸디캡이다

by Mark

나는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


언제부터였는지도 사실 잘 모른다. 다만 열 살이 조금 못 됐을 때, 가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왼쪽 귀를 내미는 모습을 발견한 엄마가 내가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발견했다. 당시 나는 별 다른 생각이 없이 오른손잡이, 오른발잡이가 있듯이 '오른귀잡이'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급한 대로 동네 병원을 찾았다. 몇 달 동안 매주 병원을 다녔지만 나아지질 않았다. 오히려 매주 엉덩이에 주사를 맞아야 했는데, 하도 주사를 많이 맞아서 주사 바늘 자국이 가득했고, 주사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정도였다. 나중에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지만 이미 청신경은 죽어 있었다.


엄마가 짐작 가는 것은 있었다.


아기였을 때 고열로 고생한 적이 있는데 사는 게 정신없다 보니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다. 어린 시절 고열로 청각을 잃은 경우가 간혹 있다고 하는데 내 경우도 그럴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어찌 됐든 나는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이 장애일까? 장애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이번에 사전을 찾아보니 '장애는 신체 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라고 한다. 사전적으로는 장애가 맞다. 하지만 군대도 3급 현역 판정을 받고 정상적으로 다녀왔으니 국가가 공인한 건강한 남자이기도 하다.

사전을 찾아보니 '장애는 신체 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라고 한다


핸디캡.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은 내게 핸디캡이다. 그런데 잘 들리지 않아서 핸디캡이 아니다. 오히려 핸디캡 같지 않은 핸디캡이어서 핸디캡이다. 무슨 얘기냐면 알아채기 힘든 핸디캡이다 보니 주위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나도 굳이 드러내기 싫은 핸디캡이나 혼자 골치가 아픈 경우다. 그래서 내게는 핸디캡 같지 않은 핸디캡이라 핸디캡이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으면 어떻게 들릴까?


정확히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양쪽 귀가 다 잘 들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한 적이 없어서 비교할 수가 없다. 굳이 표현하면 소리가 아주 깨끗하게 들리진 않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수준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소리가 오른쪽에서 나는 경우다. 소리는 파동을 통해 전달되는데, 중간에 파동을 막는 물체가 있으면 잘 전달되지 않는다. 때문에 멀리서 얘기하는 것은 왼쪽 귀로 잘 들을 수 있는데, 오히려 바로 오른쪽에서 나는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다. 수치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대략 절반 정도만 제대로 들린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생긴 버릇이 좋아하는 사람과 걸을 때는 그 사람 오른쪽에서 걷는 것이다. 아내와 걸을 때는 늘 오른쪽이다. 15년 가까이 그렇게 걷다 보니 이제 아내도 내 귀를 신경 쓰는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레 왼쪽에 선다.


하지만 사회생활하다 보면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진 않는다. 특히 임원 보고 같은 중요한 자리에서는 난처한 경우를 종종 겪었다. 무거운 분위기에서 오른쪽에 앉은 임원이 나에게 귓속말을 하려고 하면 참 난처하다. 왜냐하면 오른쪽 귀를 갖다 대는 것이 아니라 몸을 틀어 왼쪽 귀를 갖다 대야 하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전무님 제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아요'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집에서도 막내딸이 중요한 일이 있으면 아빠에게 귓속말을 하려고 달려오는데, 오른쪽으로 오면 '아빠 오른쪽 귀 잘 안 들려~' 하고 외친다. 딸은 그제야 왼쪽 귀에 속삭인다. 그만큼 평소에는 친한 사람도 신경 쓰기 어려운 것이 핸디캡 같지 않은 핸디캡이다.


오른쪽에서 들리는 소리는 제대로 듣지 못한다. 수치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대략 절반 정도만 들린다




핸디캡 같지 않은 핸디캡이라 핸디캡이다.


모두에게 핸디캡이라고 언급하기엔 작은, 핸디캡 같지 않은 핸디캡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서서 굳이 떠벌리긴 어렵고, 남들이 알아채기도 어려우니 눈에 보이는 핸디캡보다 어떤 면에선 더 불편한 핸디캡이다. 그것이 내 경우처럼 보이지 않는 신체적 결함일 수도 있고, 마음의 상처일 수도, 열등감일 수도, 감추고 싶은 과거의 한 장면 일수도 있다. 대부분이 언급하기에 예민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분들은 장애를 극복하기보다는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갖고 있는 핸디캡 같지 않은 핸디캡들도 마찬가지다. 완전히 낫기보다는 어느 정도 안고 갈 수밖에 없다. 낫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떨까? 귀가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 어렸을 때는 슬픈 생각이 들어 울기도 했지만, 이제는 이 핸디캡 같지 않은 핸디캡을 감사한 마음으로 안고 살고 있다. 오른쪽이 안 들려서 그런지 왼쪽 귀의 청력은 일반인보다 더 좋다. 한쪽 귀라도 잘 들리는 것에 감사하면서, 동시에 안 들리는 오른쪽 귀로 인해 장애가 심한 분들을 만 분의 일이라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 작은 핸디캡으로 인해 내가 조금이라도 더 겸손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핸디캡도 장점이 있더라.


핸디캡도 잘 찾으면 장점이 보인다. 잘 때 항상 왼쪽으로 누워서 잔다. 왜냐하면 잘 들리는 왼쪽 귀가 베개에 눌리면서 순간 세상이 고요해지기 때문이다. 양쪽 귀가 모두 잘 들리는 사람은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순간이다. 아무리 천둥 번개가 쳐도, 여행 갔을 때 같은 방의 누군가 코를 골더라도 내게는 남의 일이다. 평생 꿀잠 잘 수 있으니 이 핸디캡 같지 않은 핸디캡에도 장점이 있더라.




나보다 훨씬 더 심한 핸디캡 같지 않은 핸디캡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마찬가지 아닐까? 내게 있는 작은 핸디캡으로 인해 비슷한 핸디캡을 갖고 사는 이들을 이해하고, 나아가 이 핸디캡을 제외하고는 많은 것을 선물로 받은 것에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이 핸디캡은 굳이 극복하려고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