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rk Oct 19. 2021

냉정과 열정 사이 그 중간 즈음 어딘가

언제부터였을까. 내게서 열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이 늘 열정적일 수는 없지만 한때 열정의 화신이라는 말을 들었던 나였다. 40대인 나이 탓일까. 잠시 직장을 떠난 탓일까. 아니면 내가 뭔가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닐까. 무기력해진 것은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문득 20대 초반에 봤던 영화 제목이 떠올랐다. '냉정과 열정 사이'. 피렌체의 전경이 너무 아름다웠던 영화로 기억한다. 열정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 영화 제목이 떠올랐지만 정작 내 생각이 꽂힌 것은 영화 제목에 있는 '냉정'이라는 단어였다. 스스로 열정이 식었다고 걱정했지만 대신에 냉정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때론 열정이 넘쳐야 하지만, 그와 반대로 때론 냉정을 유지해야 한다. 나이, 환경, 모든 것은 핑계다. 40대도 충분히 열정적일 수 있는 나이고, 20대 역시 냉정함을 갖춰야 할 때가 있다. 나는 지금 냉정과 열정 사이 그 중간 즈음 어딘가 있다.




냉정이든 열정이든 어느 것이든 좋다. 내 경력을 돌아보며 과연 나는 언제 열정적이었고, 언제 냉정했는지 떠올려봤다. 그 기억들을 떠올려 사라진 열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은지 알고 싶고, 냉정해져야 하는 상황 속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곱씹어 보려 한다. 



열정 하나, 간절한 목표가 생기면 열정이 따라온다


인생에서 가장 간절했던 목표가 무엇이었을까.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던 목표들은 나 역시 똑같이 갖고 있었다. 수능과 대학 입시, 취직과 승진, 결혼과 자녀. 하지만 목표라는 것이 노력한다고 다 되지 않는 성질의 것도 있다. 그래서 '간절한' 목표라는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을 때, 겨우 이룰 수 있는 정도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따지면 간절했던 목표는 정말 다섯 손가락에 꼽는다.


그리고 간절한 목표가 있었을 때를 떠올리면 늘 열정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해외 MBA 합격이었다. MBA 자체만 놓고 보면 간절한 목표가 되기엔 조금 부족하다. 하지만 나는 MBA에 꼭 합격해야만 하는 절실한 이유인 'Why MBA?'가 너무도 많았다.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언론 업무를 하고 있던 나에게는 앞으로 원하는 경영 관련 포지션으로 이동하기 위해선 MBA가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MBA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필수 시험인 GMAT 공부를 하느라 당시 갓난아기였던 첫째가 있는 집이 아닌 대학 도서관으로 퇴근해야 했다. 커리어 전환을 위한 유일한 출구, 가족의 희생을 배수의 진으로 친 상황, 때문에 나는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을 하나도 보태지 않고 GMAT 시험을 준비할 때, 대학 시절보다 더 열정적으로 공부했다. 마침 모교가 집 근처여서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밤늦게까지, 어떤 날은 열람실 마지막 불 꺼지는 시간까지 있었다. 대학 시절 그렇게 공부했으면 전공을 싫어하는 일은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정말 열정적으로 했다. 늦은 나이에 고생한 결과, 원하는 MBA 지원 자격에 필요한 최소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정말 한치에 오차도 없는 딱 지원 가능한 최소 점수였다. 이후 MBA에 지원해 여러 선발 과정을 거쳐 최종 합격해 일본에서 MBA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목표한 대로 커리어를 컨설팅, 전략 분야로 바꿀 수 있었고, 희생했던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었다. 


열정을 갖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간절한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한 번뿐인 인생에서, 그리고 한 번뿐인 커리어에서 해내지 못한다면 정말 두고두고 후회할 목표를 세우고 열정을 불태워 보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달성해보자.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이라도 어떻게든 달성하고 그 기쁨을 누리자. 그 기쁨이 다음에 열정을 불태울 때 좋은 불쏘시개로 사용될 것이다.


열정 둘, 좋아하는 일을 하면 열정이 생긴다


세상에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내 주변엔 열명 가운데 한두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어렵다. 좋아하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가질 수는 없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여러 형태로 경험해볼 수는 있다. 


MBA를 졸업하고 다니던 회사로 돌아와 컨설턴트로 일했다. 사실 MBA를 마치고 고민이 많았다. MBA에서 배운 것을 활용하기엔 회사가 너무나 보수적이었다. 가고 싶은 팀을 정해야 하는데 귀국 직전까지 정하지 못하다 겨우 3개 팀을 써냈다. 이상하게도 회사에서는 귀국 후 한 달이 다되도록 발령을 내리지 않았다. 속으로 해외 지점에 보내려는 건가 생각했지만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회사에 인하우스 컨설팅팀이 신설됐고, MBA 출신 직원들과 외부 컨설팅 회사의 컨설턴트들로 팀이 구성됐다.


난 물 만난 고기였다. 회사의 일부 지원을 받아 해외에서 MBA를 마쳤기 때문에 졸업 후 컨설팅 회사나 외국계 기업에 가지 못하고 회사로 의무적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런 와중에 회사에 컨설팅팀이 생겼으니 한마디로 횡재했다. 비록 프로젝트 기간에는 자정 퇴근이 기본이었고, 중간에 프로젝트를 잠시 쉴 때도 밤 8시 전에는 집에 갈 수가 없었다. 컨설팅팀은 사내 별도 공간을 배정받아 외딴섬처럼 일을 했는데, 임원들은 아침이고 저녁이고 수시로 찾아와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확인할 정도로 관심을 받았다. 지나친 관심도, 집에서 잠만 자고 회사로 나오는 생활도 그때만큼은 괜찮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열정이 넘쳐났다. 물론 주말에서야 아들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던 삶을 계속할 순 없어서 이직을 했지만 이 컨설팅을 했던 기간이 내 커리어에서 가장 실력을 키웠던 소중한 기간이었다.


내 경우 운이 좋게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잠깐 동안 할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주변을 보면 본인이 도전해서 잠시 동안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경험하는 후배들이 많다. 이직에 도전하기도 하고, 부캐로 퇴근 후 도전하기도 한다. 그 도전 자체만으로도 열정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결과를 달성하면 금상첨화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도전의 영향으로 예상치 못한 기회가 찾아오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봐왔다.


열정 셋, 소명이 생기면 열정이 생긴다


소명(命)의 사전적 정의는 '임금이 신하를 부르는 명령' 또는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일'이다. 종교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그렇다고 완전 생소한 단어는 아니다. 소명은 한마디로 '부르심'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종교가 있는 사람이라면 '신'이, 종교가 없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로부터 받은 명령처럼 여겨지는 일들이 있다. 드라마를 보면 이런 대사를 하는 인물이 나온다. '제가 아니면 누가 이 일을 하겠어요.' 본인이 하는 일에 소명이 생기면 그건 마치 운명과도 같아서 열정이 생겨난다.


교회에서 초등부 교사를 7년 간 쉬지 않고 했던 적이 있었다. 주변에서는 대단하다, 훌륭하다는 과분한 칭찬을 받았지만 솔직히 내게는 소명과도 같은 일이었기에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열정적으로 헌신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교회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일종의 '부채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나중에 내가 돌본 아이들 중에 나처럼 교사로 헌신하는 이들이 나온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이다.


대학생, 취준생, 사회 초년생 중심의 젊은 커뮤니티에서 멘토로 활동한 것도 비슷한 소명이 있어서다. 커리어 내내 인복이 있었다. 늘 나를 인정해주고 때로는 뼈 있는 조언을 해줬던 그분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믿고 늘 감사하다. 그래서 아직 좋은 멘토를 만나지 못해 먼 길을 돌아서 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는 소명을 갖고 있다. 그래서 캐나다로 건너오는 며칠 전까지 멘토로 활동을 했고, 지금도 비공식적으로 멀리서 직간접적으로 코칭을 해주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 소명은 부채 의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내가 받았던 도움을 생각해보면,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을 이들에 대해 부채 의식이 생긴다. 그리고 이런 소명과 부채 의식이 생길 때 정말 순수하고 선한 의도의 열정이 생겨난다.


냉정 하나, 쓴 맛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들면서 냉정해진다


인생에 있어 여러 의미로 쓴 맛을 본 적이 있다. 큰 포부를 갖고 당차게 도전했다 쓴 맛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가장 쓰라린 경험은 아마도 사람에게서 맛본 것이 아닐까 싶다. 그중에서도 선배가 아닌 후배에게서 쓴 맛을 본 기억은 나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줬다. 그건 사람에 대한 실망보다는 나의 안일함에 대한 실망, 나의 가벼움에 대한 실망이었다. 


외국계 회사 시절, 내 후임으로 들어온 후배가 있었다. 개인주의적인 성격이 강했던 그는 선배들로부터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고 얼마나 버틸지 다들 궁금해할 정도였다. 나는 어떻게든 후배와 함께 가고자 했고, 여러 조언을 해줬다. 그런데 그런 조언 속에서 내가 큰 실수를 했다. 당시 팀장님이 나를 절대 신임해서 후임 팀장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다른 팀원들의 이야기에 너무 흔들리지 말라는 식으로 말한 것이다. 경솔했다. 그리고 후임은 내가 한 이야기를 다른 뉘앙스로 다른 팀원들에게 이야기했고, 결국 팀원들이 나를 오해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정작 당사자인 후배는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나갔다. 이 사태를 진정시키는데, 정확히는 내가 진심을 보이고 팀원들에게 다시 마음을 얻는데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으니 꽤 충격이 컸다.


이때 내가 배운 것은 사람을 절대적으로 신뢰해서는 안된다는 식의 교훈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도울 때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진중하게 해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말은 한번 뱉으면 도로 담을 수가 없다. 초등학생도 아는 사실이었지만 잠시 우쭐한 나머지 경솔했었다. 이후로는 깊이 있는 말을 할 때는 냉정함을 유지하고 잠깐이라도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곱씹어보고 하게 되었다. 호된 경험을 한 것만큼 인생의 교훈을 얻었으니 그 후배에게 고마워야 해야 할까. 


냉정 둘, 비교의식이 들면 냉정해진다


인간의 불행은 비교의식에서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의식이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때가 있는데 바로 냉정함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지나친 비교의식보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비교 의식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와 비슷하게 차장 진급했던 직원이 여럿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 한 명이 가장 먼저 팀장이 되었다. 사실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내 딴에는 그래도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했고, 직속 상사인 상무님도 공석인 된 팀장 자리에 나를 추천했다. 하지만 인사권을 가지고 있던 사장님의 생각은 달랐다. 내가 앞섰다고 생각했는데 뒤쳐졌던 것이다. 인정해야 했고 어제까지 같은 포지션이었던 차장을 팀장으로 두고 일해야 했다. 


돌이켜보면 이 경험이 내겐 독보다는 득이었다. 내가 팀장이 되기에 부족했던 점에 대해서 솔직히 인정하게 되었다. 내 업무였던 전략 관련한 분야에서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하지만 팀장의 위치는 자신의 분야뿐 아니라 다른 팀원들의 분야도 직간접적으로 자발적으로 경험하면서 본인만의 시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했다. 그리고 그런 자세는 나에겐 없었고, 승진한 차장에게는 있었다. 이후로 내가 속한 팀의 전체 업무에 대해 바라보게 되었고, 스타트업 회사 임원으로 이직했을 때 이런 자세를 갖고 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비교 의식이라는 단어가 갖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현실을 인정하게 하는 비교 의식은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신의 부족한 점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한 작은 노력을 시작한다면 결국엔 비교 의식의 상대와 함께 서로 윈윈 할 수 있다. 


냉정 셋, 혼자라는 기분이 들 때 냉정해진다


직장 생활 동안 혼자라는 기분이 든 적이 세 번 정도 있었다. 그중 마지막 경험은 바로 지금이다. 한국에서의 16년 간의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팬데믹 기간에 캐나다로 넘어온 이후로 늘 혼자라는 현실과 마주한다. 한국에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했건 여기선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 커리어를 대표할 수 있는 단어 다섯 개만 꼽아 보자. MBA, 컨설팅, 전략, 데이터 분석, 멘토링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런데 캐나다에선 이 중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MBA를 제외한 나머지는 한국 시장에 국한된 것이다. 현지 경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캐나다에선 아무런 효력이 없다. MBA 역시 경력과 조합을 이뤘을 때 보조적인 도움이 될 뿐이다.


그래서 누구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캐나다에서 만난 인연들로부터 조언을 얻지만 결국 나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는 숙제를 가득 안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굉장히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내가 혼자서 어떤 실력을 보여줄 수가 있는 사람인지를 구체적으로 돌아본다. 그러면서 냉정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명확해진다. 예를 들면 영어 공부를 미친 듯이 해야 한다. 다른 부분이 동일하다면 영어 커뮤니케이션이 뛰어난 현지인을 뽑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에서는 '이 정도면 됐지'라고 했던 내 영어 실력을 '그 정도로는 부족해'라고 생각되는 요즘이다.


그래도 가끔 이렇게 혼자라는 기분이 들 때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 든다. 일종의 재부팅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회사 이름과 주변의 좋은 지인들로 인해 나 자신을 과대평가하기가 쉽다. 그러다 결국 나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냉정하게 인정할 건 인정하고 홀가분하게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올해 준비 과정을 거쳐 내년에는 이곳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기 위한 도전을 할 예정이다. 하얀 도화지에 스케치를 하고 색칠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경우 다른 때와 달리 냉정함을 장기간 유지해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나 역시 처음 겪는 것이라 부딪히고 깨지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열정을 함께 찾아볼 생각이다. 냉정과 열정은 한국과 부에노스아이레스처럼 지구 반대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지근한 것이 가장 싫다. 뜨겁던지, 차갑던지 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커리어에서 때론 열정적이고 싶고, 때론 냉정하고 싶다. 지금까지 내가 언제 뜨거웠고, 언제 차가웠는지를 생각해보니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끊임없이 나 자신을 괴롭혔을 때였다. 현실에 안주하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지만 괴로운 현실을 부정하고 잊고 싶을 때가 많았다. 이제는 현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한걸음 나가야 할 때다. 

매거진의 이전글 만약에 말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