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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k Oct 13. 2021

만약에 말야

'만약에 말야...' 커리어에 만약은 없다. 만약에 그때 이랬다면, 만약에 그때 저랬다면, 어땠을지를 생각하는 것은 부질없다. 아니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만약에 말야...' 하면서 과거를 돌아보기보다는 미래를 생각하기에도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에 말야...'라고 돌아볼 수 있는 인생의 길이가 되면서 한 번쯤은 부질없다고 여겼던 그 가정을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부질없을지, 아니면 부질 있을지는 생각해보고 나서 결정할 문제다.




만약에 말야, 전공을 제대로 정했다면 어땠을까


학부 시절 전공은 전기전자전파공학이었다. 그 시절 대부분이 그랬듯 중고등학교  단순히 수학, 과학을 잘한다는 이유로 이과로 지원했고, 또 누구나 그렇듯 수능 시험 점수에 맞춰 지원 가능 학교와 학과에 지원한 결과였다.


하지만 전공은 나와 맞지 않았다. 나를 아는 많은 이들은 나에게 '문과 체질'이라고 했고, 실제로 내 커리어의 대부분을 이과 출신이 아닌 문과 출신이 걷는 길을 걸었다. 커리어 내내 단 한순간도 대학 시절 배웠던 전공과목 내용이 도움 된 적이 없었으니 어떤 말로 위로를 해도 대학 시절은 참 세월이 아까운 기간이었다.


결국 전자공학보다는 글쓰기를 좋아해 첫 직장에서 글 쓰는 일을 했다. 이후 경영에 관심을 갖게 되어 MBA를 다녀오고 컨설팅과 전략 매니저를 거쳐 작은 회사에서 임원까지 하게 되었다. 런 커리어의 궤적에 대해 불만이 있진 않다. 다만 학부 시절 전공을 제대로 정했다면 어땠을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러고 보니 지금 다시 학부로 돌아간다고 해도 어떤 전공을 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딱 하나를 꼽기가 어렵다. 전공을 정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어렵긴 마찬가지다. 당시에는 너무나도 정보가 없었고, 지금은 너무나도 정보가 많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전공을 정하기에 충분한 정보와 경험이 있었다면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내가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올해 캐나다로 건너와서 이곳 고등학생들의 생활을 보니 좋은 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고등학생 때부터 삶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도록 돕는 것이다. 대학(University)을 갈지, 아니면 특정 직업에 바로 도전할 수 있는 칼리지(College)를 갈지, 아니면 바로 취직을 할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4년 동안 그 도전에 필요한 과목을 수강 신청해서 듣는다. 그리고 본인의 선택에 따라 몇몇 직업을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물론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고등학교 내내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 학생들도 대학을 나와서도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다시 칼리지에 들어가는 경우도 수두룩 하다. 그래도 본인의 진로에 대한 한 살이라도 이른 나이에 고민을 시작하도록 돕는다는 것은 무조건 칭찬받을 일이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에 도전하는 이들을 상담할 때가 종종 있다. 직업을 특정하고 도전하는 이들도 있고, 정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 지를 몰라 헤매는 이들도 있다. 경력직의 이직을 도울 때도 마찬가지다. 현재 직종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바꾸고 싶은데 어디로 바꿔야 할지는 모르겠다는 이들이 많다.


직장인들도 고등학생과 마찬가지다. 진로에 대한 고민은 한 살이라도 어린 나이게 시작하는 것이 좋다. 지금 민하고 경험하는 것이 앞으로의 삶에서 '만약에' 상황을 마주했을 때 좋은 선택을 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에 말야, MBA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직장 생활의 변곡점을 하나 꼽으라면 MBA다. MBA 도전 자체가 무모했고, 도전이 성공으로 이뤄지는 과정 역시 기적이었고, 도전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부서 배치까지 말이 안 되는 상황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MBA는 절대적으로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다만 내 경우 MBA를 통해 커리어 경로를 바꾸고자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만약에 MBA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또는 도전에 실패했다면 어땠을까. 지금의 내 모습이 어땠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을 것이란 사실이다. 대략의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았을 거 같다. MBA 도전에 실패하고 계속 언론담당 업무를 하다가 순환 근무 시기가 와서 전공과 상관없는 부서에 발령을 받았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좋아하기에 그 부서에서 새로운 업무를 습득하고 전문가에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당시 첫 회사의 보수적인 문화에 불만이 많았던 터라 끊임없이 이직 시장에 문을 두드리다 어느 정도 이름 있고, 관심 있었던 경영 관련한 업무를 할 수 있는 포지션이라면 무조건 이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이후의 커리어는 더 이상 짐작하기가 어렵다.


결국 커리어에 변곡점이 한두 개 정도 필요하다. 그 순간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추천하는 것은 본인이 변곡점을 만들라는 것이다. 그것이 훨씬 가치 있고 또 헛고생하는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만약에 말야, 도쿄 주재원에 발령받았다면 어땠을까


일본에서 MBA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도쿄 지점에 주재원 공석이 생겼다. 일본을 누구보다 잘 알고 경험했기에 발령 1순위로 꼽혔고, 나 역시 아내와 상의 끝에 지원했다. 사실 MBA를 목표로 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결국에는 해외에서 생활하면서 보다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함이었는데 도쿄는 선택지에 있던 도시는 아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일본에 있는 MBA를 가게 되었고 마침 도쿄 지점에 자리가 생겨 뭔가 이끄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주위 모든 이들도 내가 도쿄 지점으로 발령받을 것을 기정사실처럼 여기고 있던 때에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다. 회사에서 MBA를 다녀온 사람들을 따로 모아 컨설팅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회사에선 도쿄 지점은 다음 기회에 가라고 했고 밤낮없이 일하는 컨설턴트의 삶이 시작됐다.


사실 주재원이 하는 업무는 많지 않다. 당시 대기업 해외 지점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룹 계열사들이 해외에서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었고, 다른 하나는 최고 경영진이 방문했을 때 비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물론 일반 직원들과 비교해서 해외 주재원으로서 받을 수 있는 혜택도 확실히 있었다.


만약에 발령받았다면 어땠을까? 도교에서의 삶은 평탄했을 것이다. 업무가 과중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의 라이프 스타일을 누렸을 것이고 임기 4년을 채우고 본사의 좋은 자리로 복귀했을 것 같다. 이런 경우 아무래도 이직하기에는 경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직보다는 회사에서 빠른 승진을 노리는 쪽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때문에 주재원 발령이 갑작스럽게 없던 일이 된 것은 이후 내 커리어에 큰 변화를 가져다줬다. 없던 일이 되어 의기소침했지만 대신에 글로벌 컨설팅 회사와 프로젝트 팀을 꾸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컨설턴트 업무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경험을 지렛대 삼아 외국계 기업 전략 매니저로 옮길 수 있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신의 한 수였다.


이처럼 커리어에 있어서 결정적인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때가 결과적으로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더 결정적인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때문에 놓친 기회를 아쉬워하기보다는 처한 상황에서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도전하는 마음 가짐을 갖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만약에 말야, 직장인 커뮤니티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직장인들이 서로의 관심사에 따라 활동하는 커뮤니티가 여럿 존재한다. 이런 커뮤니티 활동을 하지 않는 직장인들이 사실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직장인 커뮤니티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2016년으로 기억한다. 호주로 2주간 출장을 다녀온 후로 영어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던 나는 즐겁게 영어 공부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리고 지인이 SNS에서 '좋아요'를 눌렀던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진행하는 영어 토론 모임에 참석했고 자리 잡게 됐다. 나중에는 영어 토론 모임뿐 아니라 커뮤니티에서 진행하는 여러 모임에 참여해 공통분모가 있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면서 커뮤니티에 애정을 갖게 됐다. 그리고는 현재까지 커뮤니티를 움직이는 파트너 중에 한 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만약에 커뮤니티에서 활동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런 가정을 하기엔 커뮤니티를 통해 받은 것이 너무 많다. 마지막 회사 대표님을 만난 곳도 그곳이었고, 직장 생활에 대한 고민을 있는 그대로 나눌 수 있는 인생 동료를 얻은 곳도 그곳이었다. 그리고 이 값진 경험을 했기에 이후로도 여러 커뮤니티에서 후배들을 돕는 멘토 역할을 해오고 있다.


직장인 커뮤니티 역시 필수가 아닌 선택이다. 왜냐하면 좋은 커뮤니티를 만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자신에게 잘 맞는 커뮤니티를 만나는 것인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로 시간과 노력만 낭비하고 접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 그럼에도 직장인 커뮤니티는 다양한 산업의, 다양한 직군의, 그리고 성장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만날 수 있다는 장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내가 커뮤니티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지인들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맺어가며 꽤 잘 살았을 것이지만 지금처럼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과 교제하며 알아가고 성장하는 기쁨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에 말야, 팬데믹 기간에 캐나다에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팬데믹이 한창인 기간에 캐나다로 건너온 지 6개월이 넘었다. 왜 꼭 지금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사실 할 말이 없다. 건너 오고자 시도는 했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시기를 정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임원으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와야 했고, 한국에서 조금씩 자신의 브랜딩을 넓혀가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무명'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곳에 오는 것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가 아니면 힘들었다.


만약에 캐나다에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도 해외 생활에 대한 도전은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길게 세웠던 목표가 바로 해외 생활에 대한 도전이었다.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5년 정도의 인생 목표를 늘 세웠고, 어떻게든 달성했다. 하지만 해외 생활에 대한 도전은 목표한 기한을 넘겼다. 끊임없이 문을 두드려봤지만 열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문이 팬데믹 기간에 열렸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가장 오래된 도전 과제였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으로 건너왔다.


물론 가끔 내가 처한 현실을 깨닫고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주변에서는 나의 이런 도전에 대해서 용기 있다고 말하지만, 그 말은 무모하다는 말의 긍정적인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무모함에도 마음 깊숙이 뜨거운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은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세웠던 목표를 16년 만에 이뤘다는 성취감이다. 물론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그럼에도 16년간 수많은 '만약에'를 겪으면서 여기까지 온 것처럼 앞으로의 커리어 역시 수많은 '만약에'를 맞닥뜨리고 겪으면서 한층 더 성장할 것이라 기대한다.



  

'만약에 말야'라는 가정을 해보면 해볼수록 깨닫는 것이 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인생 자체가 기적이라는 사실이다. 인생은 장밋빛이 아니다. 좋은 일들로만 가득 찰 수도 없다. 여러 상황에서 더 좋은 결과가 일어났다면, 반대로 더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했다면 삶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통해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만약에' 상황이다. 그때에 후회하지 않을 선택과 방향을 택하기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어제보다 오늘, 그리고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상황을 이끌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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