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벌이 재택근무의 현실
'당근 마켓에서 책 받기로 했는데 금요일 오후 5시 괜찮아?'
아내는 며칠 째 당근 마켓에서 중1인 첫째가 집에서 읽을만한 책을 찾고 있었다. 팬데믹으로 인해 1학기 때도 3주에 1주 꼴로 학교에 갔는데, 2학기는 시작부터 100%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되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의 반 타의 반 책 읽을 시간도 많아졌는데, 집에 있는 어지간한 책들은 다 읽었고 중학생 수준에 맞는 책들을 알아보고 있었다. 마침 눈여겨봤던 책 세트가 매물로 나온 모양이다. 금요일은 오후 4시 이후에는 급한 업무가 아니면 조금 일찍 업무를 마친다는 걸 아내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난 조금은 냉정하게 대답했다.
'모르지, 나 재택근무할 때는 일단 없다고 생각하고 계획 세워달라고 했잖아.'
재택근무하면서 이 말을 얼마나 많이 했을까. 몸은 집에 있어도 일단 업무 시간에 내 도움받는 건 계산에서 빼 달라고 말이다. 물론 잠깐의 도움은 주고 있지만 시간이 걸리는 일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나를 고려하지 말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안전했다.
사실 이렇게 말하고 돌아서면 마음 한구석에 미안함이 있다. '너무 냉정하게 말했나?' 후회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팬데믹으로 인해 재택근무를 처음 시작했던 지난 3월부터 이 냉정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재택근무 기간에는 업무시간만큼은 회사일이 최우선 순위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내는 7년 정도 직장을 다니다 그만뒀고, 그 후로는 내가 10년째 외벌이를 하고 있다. 아내도 이제는 직장 다녔던 기간보다 아닌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머리로는 내 입장을 알면서도 마음은 그렇지 않은 거 같다. 그래도 나를 최대한 존중해준다.
'그러면 6시는 괜찮지?'
'그래, 지금 하고 있는 일 조금 서두르면 가능할 거 같아.'
이처럼 재택근무가 반복되고 길어지면서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들이 생겨나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막내딸이 점심시간에 5분 거리에 있는 피아노 학원을 다닌다. 급한 업무나 미팅이 없으면 데려다주거나 데리러 가는 편이다. 팬데믹 기간에 딸과 짧게라도 손잡고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어느 날은 걷다가 문득 지금 내 모습이 딸한테 어떻게 보일까 궁금했다.
'아빠 집에서 쉬는 게 아니라 회사 일하고 있는 거 알지?'
나도 모르게 이 질문이 나왔다. 되돌아보면 어렸을 때 아빠가 어떤 일을 하는지에 관심이 많았다. 아빠는 정확히 어떤 직장에서 얼마나 높은 사람이고 매일 하는 일이 뭔지가 궁금했다. 그런 기억이 있다 보니 집에만 있는 지금 내 모습이 딸아이한테 어떻게 비칠까 조금은 걱정되기도 했다. 딸아이는 내 손을 잡고 신나게 걸으며 쳐다보지도 않고 답했다.
'어, 알지.'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걸음을 재촉한다. '아, 아직 아빠 일에는 관심이 없구나' 멋쩍으면서도 재택근무 기간이 하염없이 걸어지면 우리 아이들의 기억 속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택근무할 때 가장 불편한 점은 사무실만큼 일하는 환경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무실에는 랩탑에 기본적으로 모니터 2대가 연결되어 있고, 전화 통화 또는 집중 근무를 위한 폰 부스(phone booth)도 있고, 졸리거나 몸이 뻐근하면 창 밖을 바라보며 서서 일할 수 있는 바(bar) 자리도 있다. 이에 반해 집에서는 내 업무 전용 공간이 없어서 모니터가 필요하면 아들 게임 PC 모니터를 눈치 보며 빌려야 하고, 컨퍼런스 콜(conference call)이 있을 때마다 아이들한테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사무실에 있는 내 책상이 그렇게 넓은 줄은 재택을 하면서 깨달았다.
내 업무 공간이 없으니 아들 책상이나 식탁을 전전하는데, 그럴 때면 대학생 때 도서관 자리를 잡지 못해 이 자리 저 자리 옮겨 다녔던 소위 '메뚜기'가 떠오를 정도다. 날이 더워지고 있는데 사무실은 춥다고 여겨질 정도로 쾌적하지만 집에선 전기세 생각하며 에어컨을 틀었나 껐다 한다. 사무실은 가끔 창 밖을 바라보며 생각할 시간을 갖거나 사내 카페테리아에서 직원들과 차 한잔하면서 기분 전환할 수 있는데, 집에는 그런 공간도 시간도 없다.
그래서, 난 가끔 탈출한다.
'나 별다방 다녀올게~'
개인적으로 별다방을 좋아하는데 신기하게도 팬데믹 기간 동안에 집 근처에 신규 매장이 문을 열었다. 자리 간격도 넓고 쾌적해서 오전이나 오후 반나절은 일하러 가곤 한다. 카페엔 여분 모니터는 없지만 자리가 쾌적하고 적절한 소음이 있어 집중하기에 좋다. 아내도 처음엔 멀쩡한 집을 놔두고 굳이 돈 써야 하냐며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이제는 내 상황을 조금씩 이해하면서 별 다른 말 없이 다녀오라고 한다. 이제는 코로나 19 재확산으로 인해 당분간 별다방에서 일하기도 힘들어졌다. 다시 집에 나만의 업무 공간을 만들어 봐야 하는지 고민이 시작됐다.
공교육이 무너졌다.
뉴스를 보면 코로나 19로 인해 가족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이혼율과 가정 폭력 건수가 증가했다고 한다. 확실히 결혼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어느 날은 하루 종일 모두가 함께 붙어 있다. 좋은 점도 많지만 불만족스러운 모습도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내 경우는 아이들과 골치 거리가 하나 생겼다. 바로 공교육의 붕괴다.
직장 다니면서 아이들 교육은 학교에 크게 의지하고 나머지는 학원의 도움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장 수업이 중단되고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면서 학교를 통한 학습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솔직한 표현으로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교도 선생님들도 온라인 수업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하다 보니 일반 인터넷 동영상 강의보다 못하다.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 관계성 자체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이런 모습이 계속 눈에 보이니 일하면서도 잔소리만 늘었다. 뭔가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아서 아내와 오랜 시간 대화를 하면서 방법을 찾고자 했다. 재택근무 기간은 늘어날 것이고, 아이들과도 계속 붙어 있을 텐데 뭔가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이 해결책을 찾는 것이 건강한 재택근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아내와 논의 끝에 아내 성을 따서 '유선생 교실'을 열기로 했다.
'자, 여러분 유선생 교실 시작합니다. 공부할 책 들고 모이세요~'
저녁 식사를 먹고 나면 아내가 선생님으로 변신한다. 나는 보조 교사 역할을 맡는다. 총 3교시로 나눠서 첫째는 학교 숙제, 주요 과목 문제지 풀기, 영어 단어 외우기 등을 한다. 둘째도 구구단을 외우고, 학습지를 풀고, 일기를 쓴다. 중간에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유 선생님이나 보조 교사에게 물어보면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저렇게 몇 달을 끌고 가고 있다.
아내와 나도 같이 앉아서 공부할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지만 당연히 지속 가능한 모델은 아니다. 공교육이 본래 역할을 어느 정도 회복하는 시기가 빨리 오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그것이 재택근무하는 자녀 둔 직장인들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재택근무 기간에 브런치를 시작한 것도 우연은 아니다. 정신적으로 메마르기 쉬운 이 시기에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표현하는 과정은 나 스스로를 다잡는 역할도 해준다. 주로 새벽 이른 시간이나 아이들이 잠든 밤늦은 시간에 쓰는데 코로나 19가 가져다준 유일한 선물은 글쓰기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