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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k Oct 01. 2020

2020년의 내가 2005년 신입사원 나를 소환하다

너한테 고마워

이상하게도 직장 생활 4, 5년 차 때보다 더 오래된 신입사원 시절의 기억이 더 또렷하다. 아마도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에 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문득 신입사원 당시의 나를 만나고 싶어 졌다. 처음에는 그때의 나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은 생각이었는데 얘기를 나누면서 오히려 내가 더 위로를 받았다. 2005년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지금의 나에게 무엇이 궁금했을까. 그리고 지금의 난 그때의 나로부터 어떤 위로를 얻었을까. 2005년 신입사원이었던 나를 소환한다.  




2005 마크: 뭐야, 우리 서로 뭐라고 불러야 하지? (웃음) 아무튼 반가워. 내 15년 후의 모습이 너라고 생각하니 뭐 나쁘지는 않네.   

2020 마크: 나도 반가워. 요즘도 가끔 사진으로 네 모습 보긴 했는데 이렇게 직접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반갑다.


신입사원 시절 모습과 지금의 모습

2005 마크: 우리 얘기할 시간이 얼마나 되지? 궁금한 게 진짜 많긴 한데, 뭐든 물어봐도 되는 거야?

2020 마크: 1시간 정도 될 거야. 일단 직장 생활 위주로 물어보면 좋겠어. 다 답해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궁금한 건 다 물어봐봐.

2005 마크: 궁금한 게 많긴 한데 그것보다도 15년 후의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살고 있는 모습 보니까 그냥 고마운 마음이 드네. 이건 너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게 맞지? 15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순 없지만 진짜 고생했어. 힘들었지? 

2020 마크: 아, 생각도 못했던 건데. 그런데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 나도 15년 후의 나를 만났는데 건강한 모습이라면 정말 고마울 거 같거든. 그렇게 말해주니 감동이다. 네가 나라서, 내가 너라서 그런지 네 진심을 읽을 수 있는 거 같아. 사실 나 요새 이것저것 고민이 많았거든. 지금까지 이뤄 놓은 것들이 별로 없는 거 같고, 갖지 못한 것들도 많은 거 같고 말이야. 그랬는데 네가 이렇게 알아주고 위로해주니 고마워. 그리고 그동안 힘들긴 했는데 그렇다고 미리 겁먹지는 마. 다 해볼 만하더라. 자, 시간이 별로 없으니 이제 물어볼래?

2005 마크: 사실 진짜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직장 생활 관련한 게 아니라 맨 나중에 물어보던지 할게.

2020 마크: 그래? 알았어. 일단 직장 생활 얘기 먼저 할까? 뭐가 제일 궁금해?


2005 마크: 나 지금 회사 잘 들어온 걸까? 

2020 마크: 음,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볼 수 있어?

2005 마크: 내 전공이 전자공학이잖아. 그런데 전공을 너무 싫어해서 대학교 때 전과까지 생각했던 건 너도 아는 거고. 결국 졸업 후에도 전공을 살리는 대신 글 쓰는 거 좋아해서 지금 회사 홍보팀에 들어왔잖아. 그런데 내가 잘한 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 너무 즉흥적으로 진로를 바꾼 건 아닌가 싶기도 하거든.

2020 마크: 맞아, 그랬었지.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 회사에서도 전자공학 전공한 애가 홍보팀에 가는 게 말이 되냐며 공장 보내려고도 했었잖아. 네가 끝까지 버텨서 남긴 했지만.

2005 마크: 내가 잘 선택한 건지 말해줄 수 있어?  

2020 마크: 물론이지. 잘했어! 마크야, 지금 회사 잘 들어간 거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얘기해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네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을 거야. 직장생활 첫 단추를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과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 거 같아. 넌,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한 거야.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다 보면 좋은 결과도 따라오지 않을까?  


2005 마크: 좋아, 그래도 회사를 잘 들어왔다고 말해주니 일단 마음이 놓이네. 다음은 조금 앞서 가는 질문이 아닌가 싶긴 한데. 너도 알지만 신입사원 때 해외 MBA 다녀온 팀장님 강의 들으면서 나도 똑같은 목표를 세웠잖아. 나, 해외 MBA 도전 시작해도 될까?

2020 마크결과와 상관없이 도전하면 좋겠어. 도전하는 동안에 좋은 경험을 많이 할 것이라는 것까지만 알려줄게. 그리고 생각해보면 회사에서 직원들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인데 최대한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너 지금 월급이 2xx만원이지?  

2005 마크: 야, 너 첫 월급 액수를 아직도 기억해?

2020 마크: 당연히 기억하지. 고마운 돈이지만 솔직히 많지는 않은 액수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렇기 때문에 회사에서 직원들을 위해 쓰는 돈은 최대한 누려보는 게 좋다는 거야.  

2005 마크: 그럼 당장 영어 시험 준비부터 해야겠네. 알겠어. 그리고 결혼은 언제 하면 좋을까? 나 지금 생각으로는 한 2년 정도 뒤에 할까 생각하고 있거든.

2020 마크: , 결혼? 그런데 내가 신입사원 때부터 결혼 생각했었나?

2005 마크: 그렇진 않고 사실 부모님이 더 관심이 많았잖아. 나도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하면 좋겠다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널 만나니 갑자기 묻고 싶어 졌어.

2020 마크: '좋은 사람 있으면 일찍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고 주위 후배들한테 말하고 다니긴 해. 내가 빨리 했는지, 늦게 했는지를 알려줄 순 없지만 결혼했다는 사실은 말해줄 수 있어. 결혼하면 가장 좋은 게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생긴다는 거 같아. 물론 서로 책임질 사람이 생기는 건 감수해야겠지만 말이야. 앞으로 네가 겪을 힘든 순간을 함께 해줄 사람, 네 편에서 함께 고민하고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지금 있다면 당장 결혼해도 좋지 않을까?


2005 마크: 그렇게 말하니 내가 언제 결혼하게 될지 갑자기 궁금해지네. 다음은, 지금 팀에 나보다 나이 어린 선배들이 한 명도 아니고 둘이나 있잖아. 군대야 계급사회지만 회사에서도 직급에 따라 몸을 낮춰야 하는지 궁금해.

2020 마크: (웃음) 아, 맞다. 그랬었지. 일단 2020년 기준으로 말하면 안 될 거 같아. 왜냐면 요즘은 선후배 개념도 덜하고 직급도 많이 단순해졌고 호칭도 수평적으로 바뀌었거든 물론 2005년에는 그러면 안 되겠지. 내 기억이 맞다면 그 두 명의 선배 모두 권위를 부리지 않았는데. 맞지?

2005 마크: 어, 둘 다 권위적이지 않지.

2020 마크: 그럼 잘해 드려. 나이 많은 거 그거 아무것도 아냐. 네가 배울 게 하나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나이가 적든 많든 존중 해드리게 가장 좋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회생활하면서 절대로 나이 신경 쓰지 마. 이유는 나중에 차차 알게 될 거야.


2005 마크: 그렇게 말하니까 대체 15년 후의 직장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궁금하네. 다음 질문은, 우리 팀에 나를 데려와 주셨던 팀장님이 나 출근한 지 이틀 만에 다른 팀으로 발령 났어.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이게 뭔 일인지 싶더라. 회사가 원래 이렇게 매정한 곳이야?

2020 마크: 야, 그건 아무것도 아냐. 내가 모셨던 팀장님 중에는 그날 바로 짐을 싸고 쫓겨난 분도 있었어.

2005 마크: 와, 말 다했네.

2020 마크: 네가 이해할지는 모르지만 회사는 프로세스로 움직이는 곳이야.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정을 봐주기보다는 회사가 정해놓은 규정, 순서, 방향으로 가는 거지. 회사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아닌데 네 입장에서는 황당하거나 당황할 수 있는 일들이 앞으로도 많이 생길 거야. 회사가 맘에 들지 않으면 직원이 떠나야지.

2005 마크: 뭐야, 너 나 맞아? 그렇게 말하니까 너무 낯선데?

2020 마크: 너무 현실적인 말을 한다는 뜻이지? 그런데 그런 거 같아. 물론 회사가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지. 그렇지만 회사의 입장과 직원의 입장이 다르다는 점에서 양쪽 모두 만족하기는 어렵더라고.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말고.  


2005 마크: 알았어, 마음 단단히 먹을게. 참 사수인 이 부장님 얘길 안 할 수 없네. 기억하지?

2020 마크: 당연하지. 내 처음이자 마지막 사수였으니.

2005 마크: 전설적인 분이잖아. 여성 최초 대리, 과장, 부장 타이틀 보유자. 1988년 입사라고 하더라고. 그때 내가 회사 건너편 초등학교 다녔다니 상상이 안가. 가 이런 분 밑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2020 마크: 참고로 나중에 여성 최초 팀장까지 되실 거야. 아무튼, 맞추지 힘들지? 주위에서 잘 버틸지 걱정도 해주지 않아? (웃음) 근데 마크야, 이 말이 힘이 될지 모르지만 네가 나중에 만날 사람들과 비교하면 지금은 힘든 것도 아니야. 지금 경험하는 것들이 네가 나중에 더 힘든 순간을 이겨낼 밑거름이 될 테니 잘 버텨봐.


2005 마크: 치, 전혀 힘이 안 되는 말이네. 다음으로 궁금한 건 우리 동기들이야. 너도 알다시피 지금 동기들이 너무 좋잖아.

2020 마크: 맞아. 이직하면 한 가지 아쉬운 게 입사 동기가 없는 거더라.

2005 마크: 궁금한 게 지금 이런 동기애가 얼마나 오래갈까? 잘 맞고 잘 뭉치는 거 말이야.

2020 마크: 지금도 연락하는 동기들이 있긴 한데. 동기애는 한 3년 정도 갈 거야.

2005 마크: 3년? 그다음은?

2020 마크: 경쟁이지. 너무 냉혹한가? 그런데 그렇더라고. 3년 정도 되니 각자 속한 부서, 개인 평가, 평판으로 보이지 않는 경쟁, 시기와 질투, 험담, 이런 것들이 시작되더라.

2005 마크: 와... 그렇구나. 내가 너무 순진했네.

2020 마크: 아니 그렇다고 지금부터 뭔가를 준비할 필요는 없고. 그래도 좋은 동기는 지금까지도 연락이 되더라. 넌 너의 길을 묵묵히 가면 돼.

 

2005 마크: 알았어. 참, 이번엔 힘든 것들을 좀 물어볼게. 먼저는 회식. 회사 분들 다들 좋은 분들인데 회식이 너무 많아. 어느 날은 팀장님이 퇴근 직전에 갑자기 오늘 회식이라며 툭 던지고 가버리더라. 팀원들은 다들 저녁 약속 취소하고 난리도 아니었어. 회식에 빠지는 건 상상할 수도 없고. 이런 회식 문화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해?

2020 마크: 아, 맞다. 그랬었지. 좋은 소식 먼저 알려주면, 그런 문화는 점점 좋아질 거야. 요즘은 그런 모습이 흔하지는 않거든. 나도 첫 회사에서만 그랬지 그 후로는 그런 강압적인 문화는 거의 없었어. 그래도 몇 년은 더 고생해야 해.

2005 마크: 야, 그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되잖아.

2020 마크: 그러네. 그러면, 팀장님하고 직원들 사이에 중재해줄 만한 부장님이 있지 않아?

2005 마크: 어, 있지 최 부장님이라고.

2020 마크: 맞아, 최 부장님. 방법은 그분을 최대한 활용하는 거야. 최 부장님이 직원들하고도 친하고 팀장님 기분도 잘 맞춰 주시잖아. 그래서 직원들 의견을 최 부장님이 잘 취합해서 팀장님께 기분 나쁘지 않은 투로 전달하는 거지.

2005 마크: 이해했어. 나나 다른 직원들이 팀장님께 직접 얘기하는 것보다 그 방법이 훨씬 낫겠네.

2020 마크대부분은 대화로 조금씩 나아지더라. 이것도 다 경험이긴 해

2005 마크: 이런 1시간 거의 다 되어가네. 좀 뜬구름 잡는 질문이지만 이건 꼭 물어보고 싶었어. 15년 간 직장 생활 어땠어?

2020 마크: 마지막에 제일 어려운 질문을 하네. 15년이 어떻게 지나갔더라. 여러 일이 있었고, 또 여러 생각을 했었지. 마음이 맞는 사람과 창업을 해볼까 생각도 했었고, 완전 다른 길을 가볼까도 생각했어. 그런데 어느 것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는데 왜 일까 생각해보면, 확신이 없었던 거 같아. 간절함이 없던 거 일 수도 있고. 그래도 직장 생활하면서 때마다 목표를 정하고 그걸 달성하려고 노력했던 거 같아. 그래서 나 스스로에게도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어.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두 가지야. 하나는 직장 생활하면서 계속 성장했으면 좋겠어. 회사 일도, 개인 실력도 성장하면 기회는 늘 찾아 오더라. 다른 하나는 너만의 콘텐츠와 브랜드를 만들었으면 해. 누군가로부터 배운 거라고 해도 네 것으로 완벽히 소화해서 너만의 콘텐츠로 만들면 그게 결국 네 브랜드가 되고 누적되면서 언젠가 큰 힘을 발휘할 거야.

 

2005 마크: 잘 알겠어. 아, 이제 정말 시간이 다 됐구나. 나 처음에 꼭 묻고 싶었던 거 있다고 했잖아. 이 질문을 해도 될지 고민 많이 했는데 1시간 동안 너와 얘기해보니 해도 될 거 같아.

2020 마크: 뭔데? 해봐. 진짜 마지막 질문이다.

2005 마크: 내 마지막 질문은 말이야. (...) 우리 부모님은... 잘 지내시지?

2020 마크: (물끄러미 바라보다) 응, 잘 지내셔. (웃음)

2005 마크: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와, 정말 다행이다. 됐어, 난 더 안 물어봐도 될 거 같아.

2020 마크: (...) 근데 마크야.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2005 마크: 부탁? 뭔데?

2020 마크: 엄마 아빠한테 지금보다 더 잘해 줄 수 있어? 뭐 거창한 건 아니고 한 번 더 연락드리고, 한 번 더 찾아뵙고 말이야. 특히 네 말만 하지 말고 이제는 엄마 아빠 얘기도 좀 들어 드려. 힘든 일은 없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여쭤봐 드리고. 이거 하나 부탁할게.

2005 마크: (웃음) 알았어. 그럴게. 그리고 고마워.

2020 마크: 고맙긴.

2005 마크: 아니야. 너한테 정말 고마워. 나 사실 앞으로 길고 긴 직장 생활을 어떻게 해나갈지 너무 막막했거든. 그런데 이렇게 너를 보니까 자신감이 생겼어. 너 처음에 요즘 고민이 많다고 했잖아. 나도 너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어. 15년 동안 잘 살아줘서 고마워. 네 얘기 듣고 나니 앞으로 15년뿐 아니라 그다음 15년도 걱정이 안 되는 거 있지. 그래서 고마워.

2020 마크: 그렇게 말해주니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너도 앞으로 고생할 텐데 응원할게. 자, 이제 헤어질 시간이네. 마크야, 잘 지내.  

2005 마크: 너도 잘 지내. 마크.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울었다. 마치 15년 전의 파릇파릇했던 내가 바로 옆 자리에 앉아서 대화하는 기분을 느끼며 글을 쓰는 내내 행복했다. 15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나를 따뜻하게 위로해줬다. 고맙다며, 수고했다며, 잘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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