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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Jan 03. 2023

주민센터와 은행은 우리 집 안방?

와이프 따라 미국 가는 남편 2-9 - IT 강국?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하기 위해서는 여러 행정적인 절차가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지난번에 언급했던 입학 허가 서류(합법 체류를 위한 서류)와 비자(합법 입국을 위한 서류)다. 이 두 개의 서류는 반드시 순서대로 신청 및 발급을 받아야 하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서류를 발급받고 준비해야 한다.


이 시기가 되면 관공서와 은행을 그야말로 제집 안방처럼 드나들어야 했다. 수많은 서류들을 발급받아야 했고, 은행 잔고 증명도 필요했다. 참고로 시대가 많이 달라져서 (! 늙은이 분위기?) 온라인으로 대부분의 서류 발급이 가능하다. 영문 주민등록등본은 물론 주민센터에서 발급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문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다만 주의할 점은 모든 문서를 고퀄리티로 인쇄할 수 있는 좋은 프린터를 구매하는 것이 좋다. 베드타운인 우리 집 주변에는 인쇄를 맘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없었다. 아니, 한 군데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두 달여만 사용할 거지만,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다시 판다는 생각으로 컬러 레이저 프린터를 새로 구매해서 서류 인쇄를 했다. 스트레스받지 않고 마음껏 프린트할 수 있어서 마음이 정말 편했다. 만약 서류 하나를 인쇄하기 위해 매번 피시방을 전전해야 했다면 무척이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은행에서도 잔고 증명을 발급받아야 한다. 이건 사실 필수일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았다. 왜냐면 아내의 학비와 우리 가정의 생활비가 아내의 장학금에서 모두 커버가 되었기 때문이다. 허지만 유학원에서는 만약을 대비해서 입학 허가서류에서 요구하는 금액에 맞춰 잔고 증명을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래서 영문 잔고증명서를 발급받았는데, 이것도 이제는 꼭 은행에 방문할 필요가 없다. 온라인을 통해 잔고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인터넷 발급 잔고증명서는 하루 전이나 이틀 전의 잔고를 대상으로 증명서를 발급해 준다. 아마도 행정적으로 당일 잔고 증명을 발급할 경우 당일 입출금이 제한되는데, 이를 온라인 증명서 발급과 연동하기 쉽지 않아서가 아닌가 싶었다. 온라인 잔고 증명서는 은행에 직접 가서 발급받는 증명서와는 그 형식이 약간 다르지만, (직접 발급받는 서류가 뭔가 더 그럴듯해 보인다) 그 효력은 동일하다고 한다. 잔고증명서는 열심히 준비는 했는데, 결국 서류 자체는 집 계약할 때만 사용했다.


비자 인터뷰 신청을 위해서 필요한 서류는 정말 많다. 관공서 서류도 많고, (이미 퇴직한) 회사에서 받는 서류, 은행 관련 서류, 거기에 신청서 작성 시에 알아야 할 정보도 너무나도 많다. 아무래도 학생 비자를 받는 본인이 가장 서류를 많이 준비해야 하고, 배우자는 주 신청자의 80퍼센트 정도의 서류를 준비한다. 나는 약간 서류 준비에 대한 강박 같은 것이 있어서, 요구하는 서류를 칼 같이 준비해 플래그로 일일이 구분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서류를 스캔하고 PDF 파일로 정리해 놓고, 묶어서 컴퓨터에 사본 1세트, 클라우드에 1세트, 하드카피 1세트, 원본 1세트, 이렇게 준비해서 서류철에 구분해 놓았다.


이렇게 수많은 서류를 준비하다 보면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내의 학교에서 요구하는 서류, 유학원에서 요청하는 서류, 정차 에이전시가 요청하는 서류, 미국 대사관에서 요구하는 서류, 계약하는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서 요구하는 서류가 비슷한 듯 서로 다르고, 나중에는 마구 뒤섞이기까지 한다. 그렇게 꼼꼼하게 준비하고 사본의 사본까지 준비했는데도, 정리가 잘 안 되고 바로바로 찾기가 정말 어렵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거의 대부분의 서류는 집에서 온라인으로 발급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더욱이 집의 모든 컴퓨터가 맥이라 관공서 업무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도 공인인증서 대신 사용하게 된 공동인증서나 금융인증서는 대부분 맥에서 사용이 가능했다. 물론 모든 곳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학교 관련 증명서를 제외하고(학위 증명서, 성적 증명서) 모든 서류는 방문 발급 대신 온라인 발급으로 인쇄해서 사용했다.


개개인의 서류를 십 수개씩 온라인 발급받다 보면 정말 영혼이 가출해 버리는 것 같다. 어디서는 금융인증서만, 어디서는 공동인증서만 가능하고, 본인 인증이 패스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문자 인증을 받아야 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 휴대폰에는 온갖 본인 인증 문자들이 수십 개씩 넘쳐 난다. 거기에 다 발급을 받아서 정리를 해 놓아도 너무 양이 많으니 꼭 뭐 하나를 놓친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든다. 심지어 다 발급받은 서류를 놓고 가거나, 부치는 짐에 여권을 넣어 보내 버리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한다.


정말 우리 집 안방이 관공서와 은행이 되어버렸다. 매일 수십 장의 A4 용지를 인쇄하고 또 십수 장을 (인쇄 실수 등으로) 버린다. 물론 우아하게 서류 준비만 하고 있지도 않다. 아직도 아이는 등교 중, 아내는 출근 중이었다. 등하교, 등하원 라이드도 나가야 하고, 점심, 저녁도 차려야 한다. 나를 제외하고는 이곳에서의 일상은 그대로 지속되고 있는데, 종이 쪼가리 몇 장만이 우리가 미국으로 간다는 증거일 뿐이다. 정신은 없고 바쁜데, 정말 미국에 가는 거 맞는 거지?


Photo by Stephen Goldber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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