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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cob why Jan 17. 2023

미국 가는 이삿짐, 소포 박스 여섯 개

와이프 따라 미국 가는 남편 2-11

10년 전 뉴저지에서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나와 아내가 최종적으로 싼 짐은 소포 박스 여섯 개였다.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다 보니 많지는 않았지만 침대니 서랍장이니 해서 짐이 꽤나 늘어났었고,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한 이상 모든 짐을 다 처분해야 했다.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해 정말 염가로 가지고 있던 가구나 전자제품들을 모두 처분했고, 꼭 가지고 가야만 하는 짐만 추리고 보니 비행기에 실을 수 있는 짐을 제외하고 가장 큰 소포 박스 여섯 개가 나왔다. 그렇게 육 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올 때 내게 남은 것이 소포 박스 여섯 개였다.


10년 만에 다시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향하게 되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챙길지가 또 큰 고민거리가 되었다. 10년 전에는 갓난쟁이 아이 하나와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로서 살림살이를 가지고 있었다. 이미 한 번 미국 서부에서 동부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짐을 한 번 정리한 상태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한국에 산 지도 10년이 가까웠고 미국과는 다르게 대형가전이나 가구가 많았다. 미국에서야 렌트 집엔 냉장고 세탁기와 같은 가전은 대부분 갖추고 있고, 방마다 옷방이 있어 옷장도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에선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은 물론이고, 가구도 그 수가 정말 많았다. 다른 짐들도 마찬가지다. 그 사이 딸아이도 갓 돌 된 갓난쟁이에서 초등학교 4학년 생이 되었다. 배넷 저고리 몇 벌이 다였던 10년 전과는 달리 아이 옷만 옷장 하나였으니 말 다했다. 이 수많은 짐들을 챙겨서 미국에 가야 한다니, 정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뒤지다 보니 우리와 같은 형편으로 미국에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은 주재원으로 중단기 체류를 위해 미국을 향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님 집이나 친척들 집에 큰 살림살이를 맡겨두고 최소한의 짐으로 미국에 가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워낙 살림살이가 고가였던 모양인지, 국제 이사를 통해 세간살이를 모두 미국에 가져가기도 했다.


각자의 형편에 맞게 하는 듯했지만, 우리 형편엔 어울리지 않았다. 우리 같은 경우는 한국에 다시 돌아올 계획이 없었기에, 굳이 한국에 세간살이를 남겨둘 이유도 없거니와, 마땅히 우리 짐을 맡겨줄 부모님이나 친척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 많은 짐들을 다 미국으로 짊어지고 들어갈 만큼 값어치가 나가는 물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아무래도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았던 형편 덕분에(?) 굳이 그 많은 짐들을 챙길 이유가 없었다.


아내와의 의논 끝에 대부분의 짐들은 모두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대형 가전이나 가구는 처분하기로 했다. 어차피 미국과 한국의 전압이 달라서 대부분의 대형 가전은 미국에서 사용하기 어렵다. 책들도 필요한 만큼만 챙기기로 했다. 아내가 계속 공부를 이어오다가 박사과정을 가는 것이 아니어서 전공서적이 많지도 않다. 아이도 비싼 전집 같은 책들을 사준 적은 없어서 특별하게 챙길 책들이 많지도 않다. 각종 잡동사니들도 일일이 꺼내보고 사용빈도를 체크한 뒤에 정말 필요한 것들만 챙기기로 했다. 우리가 가는 곳도 사람 사는 곳이니 굳이 살 수 있는 물건을 챙겨가기 위해 짐을 늘이지는 않기로 했다. 팬데믹 시기였기 때문에 마스크는 가급적 많이 챙기기로 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옷이었다. 원래 소망했던 이주 동네는 캘리포니아였기 때문에 두꺼운 겨울 옷은 다 버릴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는데, 우리가 가게 된 곳은 미국 동부의 겨울 날씨가 혹독하기로 유명한 펜실베이니아 서부이다. 아이의 몇몇 사이즈가 작아진 옷들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을 챙겨야 했다. 겨울 옷은 부피도 크고 무게도 제법 나가서 챙겨가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다 버리고 미국에 가서 사기엔 가격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안 챙길 수도 없다. 하는 수 없이 가지고 있는 온갖 두꺼운 옷들과 내복까지 모두 챙기기로 했다.


우리가 미국에 가는 계절은 한여름. 따라서 짐으로 부칠 때에는 겨울 옷 위주로 짐을 쌌다. 당장 필요하지 않을 각종 잡동사니와 아이의 책들도 짐에 넣었다. 아내와 나의 겨울 옷 부피가 워낙 커서 그런지 박스는 금방금방 찼다. 여름 시즌에 사용할 것들은 일단 짐에서 뺐다.


그럼 이 짐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다양한 운송 방법이 있었다. 우체국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었고, 다양한 운송업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도 많았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한 블로거는 사설 운송업체의 운송 서비스를 사용할 것을 추천했다. 그래서 해당 운송 업체의 사이트를 들어가서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했는데, 큰 난관에 봉착했다.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운송 배편이나 항공편이 크게 축소되어 운송료가 거의 두 배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20kg 무게의 박스 10개 내외를 미국으로 발송하기 위한 견적이 수백만 원이었다. 그 정도의 돈이면 박스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미국에서 다시 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고민했는데, 그래도 가장 저렴한 것은 역시 우체국 소포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여러분이 십수 년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을 바로 그 고전적인 서비스, 소포다) 국제 소포를 이용하면 20kg 무게의 박스 하나에 7만 원 정도의 운송료가 소요됐다. 싸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그래도 사설 운송업체보단 저렴했다. 걸리는 시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체국에서 예상한 운송 시간은 90일(!) 세 달이 소요된다고 했다. 그 정도 걸릴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충격은 크지 않았다.


박스를 하나하나 밀봉할 때마다 우체국에 가서 짐을 부쳤다. 무게를 가까스로 20kg에 맞췄고, (우체국 국제 소포 배편으로 보내면 제일 무거운 짐이 20kg이다) 계약한 아파트의 주소를 활용해 짐을 발송했다. 발송자와 수신자의 이름은 같았다. 우체국 직원분께서 만약 반송되면 어떻게 할지 여쭤보셨다. 선택권은 한국 주소로 다시 받거나 폐기하거나 두 가지였다. 나의 답변은 폐기. 어차피 반송될 상황이라면 한국에서 짐을 받아줄 사람도 없다. 그렇게 둘씩 둘씩 짐을 부쳤고, 그렇게 보낸 짐이 소포 박스 여섯 개였다. 


소포 박스 여섯 개.


10년이 지났어도 우리 가족에게 다시 남은 건 소포 박스 여섯 개뿐이었다. 물론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나의 지난 삶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기분이 싱숭생숭해졌다.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는데 남은 게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아서. 물론 사실이 아니다. 나와 우리 가족의 마음엔 수많은 경험과 감정이 남았고, 우리 가족을 더욱 돈독하게 했다. 물질적인 것들이 나와 우리 가족의 삶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사라질 것들, 집착하지 말자.


아직도 걱정이 많았다. 짐은 부쳤는데 우리가 미국에 못 가게 되면 어쩌지, 하는 말도 안 되는 불안감이 아직도 존재했다. 언제쯤 미국에 가는 걸 실감하게 될까? 이제 진짜 눈앞인데도,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Photo by Kadarius Seegar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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