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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Sep 16. 2022

미국 의료보험은 비싼 게 끝이 아니었다

D+44 (sep 14th 2022)

미국에 오게 되면서 걱정이 가장 많이 되었던 부분이 바로 의료보험이다. 의료보험 하나 때문에 학교를 합격한 이후에도 미국에 와야 하나 걱정을 할 정도였다.


미국 의료보험에 대해 모두들 알고 있는 건 ‘비싸다’는 점이다. 국가에서 건강보험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한국과 달리, 민간 보험을 들어야 하는 미국은 그 금액이 매우 비싸고 보장 범위도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의료비가 워낙 천문학적인 금액이 드는지라, 울며 겨자 먹기로 보험에 가입한다. 거기에 학생 같은 경우는 보험 가입이 학교 입학의 필수 요건 중 하나다.


전에 싱글일 때는 한국에서 해외 체류 보험, 혹은 여행자 보험을 들고 왔었다. 하지만 그런 보험은 다치거나 아플 때는 보장을 해 주지만, 일반 검사나 백신, 검진 등은 보장을 해주지 않는 데다, 본인이 먼저 의료비를 지급하고 보험사에게 돌려받는 식으로 보장받는다. 이게 은근히 불편한 데다, 비싼 의료비를 다 내고 난 뒤에 돌려받으니 부모님 도움이나 자산이 없으면 엄청 힘들다.


이번엔 다행히 아내의 학교에서 학생 본인에 대한 보험료 금액을 전액 지원해 주었다. (원래 합격통지서에선 반만 지원해 준다고 했었는데, 올해부터 전액으로 바뀌었단다 lol) 그래서 상의 끝에 아내와 아이는 아내 학교의 보험에 가입하고, 난 한국에서 장기 체류 보험을 들기로 했다. 일 년 가입하는데 수천 불이 들어가는 학교 보험을 두 명이나 들기는 부담스러웠고, 나는 자주 아프지 않지만 아이는 아무래도 병원에 자유롭게 갈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학교 보험은 학교에서 가입하지만, 학교와 계약한 민간보험사의 보험에 가입하게 되고, 보험료는 등록금 고지서에 함께 정산되어서 나온다. 학교의 연구비와 등록금, 보험비, 각종 비용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잘 알아서 청구되겠지 하며 신청을 마쳤다.


그런데 이 보험이 아주 큰 사고를 치고 말았다.


첫 번째는 보험료 청구가 예상 비용의 거의 세배 가까이 나왔다. 분명 학생 당사자인 아내와 아이, 이렇게 둘만 일반 보험과 추가로 안과, 치과 보험을 들었는데, 청구서엔 네 명이상 패밀리 플랜 일반 보험과 두 명의 안과, 치과 보험이 청구된 것이다. 거기에 이유는 알 수 없는데 아내 자신의 보험은 두 번 청구되고, 한 번만 면제 처리가 되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두 번째는 청구서엔 저렇게 많은 수의 사람이 보험에 가입된 것으로 금액 청구가 되었음에도, 아이의 검진 비용이 보험 처리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에 오자마자 아이가 초등학교 등록을 위해 소아과 검진을 받았었는데 그 금액이 계속 보험 처리가 안되고 청구서가 집으로 날아왔다.


도대체 양립할 수 없는 두 사건이 동시에 발생하자, 나와 아내는 멘붕에 빠졌다. 사람을 더 미치게 하는 것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고객 센터를 통한 문제 해결이 며칠에 걸쳐 진행이 전혀 안됐다는 점이었다.


다행히 아이 청구서에 대한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우리가 병원에 제공한 아내의 의료보험에 아이의 이름이 등록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아내가 보험 신청한 정보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보험사에 연락해 아이 이름을 넣어달라고 하면 되는 문제였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생겼다. 학교를 통해 가입한 보험은 학교를 통해서만 정보 수정이 가능하단다. 보험사에서는 학교에서 학생 가입자 한 명에 대한 정보와 가입 내역만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 도대체 청구서에 있는 금액은 뭐란 말인가?


결국 학교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학교 헬스 센터에 연락을 취하려고 하는데, 이게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관련해서 센터에 전화를 해도 특정 메일 주소에 클레임 하라면서 전화를 끊는다. 메일을 보내도 답은 오지 않는다. 보험료 청구서 마감일은 다가오는데, 이거 잘못하다가 말도 안 되는 큰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백방으로 클레임 할 방법을 찾던 아내가 마침내 오늘 연락에 성공했다. 몇 통의 통화 끝에 정보 오류가 있었고 모두 바로 잡아졌다. 아이의 이름도 아내의 보험에 들어갔고, 청구서도 바로 잡아질 예정이라고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거의 두 주가 걸렸다.


처음에는 문제가 마침내 해결되었다는 생각에 잘 도와준 상담원들이 모두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왜 걔네가 미안하지 않고, 우리가 고맙지?’


보통 보험사와 학교 오피스에서 이런 큰 실수와 정보 오류가 있었으면, 상담원은 계속 죄송하다고 하고 소비자들은 엄청 뿔을 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진상 고객이 아니더라도 2주 동안이나 처리가 안된 이렇게 큰 문제가 있었을까 생각이 든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여기선 상담사들이 거의 대부분 우리의 고충을 이해해 주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었지만, 스스로를 자신의 회사와 동일시하지 않았다. 즉 자신이 한 잘못이 아니니 사과도 하지 않는다.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고 나서도 찜찜한 뒷맛을 남긴다.


민간 보험으로 돌아가는 국가여서 선택의 자유가 있고, 보험마다 환경이 모두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의료비 부담만 큰 것이 아니라, 여러 관련한 클레임 처리, 대이터 오류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생길 수 있는 환경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지치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보험 처리만 되면 미국의 의료 서비스는 생각보다 만족도가 높다. 서비스 산업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의사나 간호사, 의료계 종사자들이 굉장히 친절하고 의료 서비스의 질도 좋다. 보험처리가 된 금액이 나온 청구서를 보면 (원래 이만큼 내야 하지만, 보험 처리가 돼서 0원 내면 돼 라고 나온 청구서) 워낙 천문학적인 금액 때문에 돈을 번 느낌이 들 정도다.


오바마 케어 정책 이후 저소득층을 위한 국가 보험도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들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이고, 시민권자인 아이는 가입할 수 있지만 부모가 나중에 영주권을 취득할 때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뒷얘기도 있다.


쉽게 소아과나 내과를 방문해 진료를 받고 약을 타가던 시절이 벌써 그립다. 새로운 환경에 맞게 또 적응해서 살겠지만. 모든 것이 낯선 타향살이 아프면 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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