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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주일기

미국에서의 개통 후 번호이동 경험기

D+368 (aug 4th 2023) 번호 이동이 아니었다고?

by jcobwhy

미국에 온 지도 일 년이 지나다 보니, 여러 가지 서비스를 갱신해야 했다. 이미 집 렌트를 한 해 더 연장한 터라, 다른 서비스는 특별히 연장하거나 새 서비스를 신청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휴대폰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월정액 선불폰을 계속 사용하고 있었는데 선불폰을 계속 사용하는 경우는 개인 신용도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정규 서비스로 갈아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알뜰폰 업체 모회사에서 일 년 동안 연체 없이 사용한 실적으로 모회사 약정 프로그램을 프로모션 가격으로 가입이 가능하다는 광고 우편을 받았다. (미국은 아직도 그렇게 광고 우편이 많이 온다)


사실 통신사에 대한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어서 굳이 통신사를 바꾸어야 할 이유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아내와 내가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이 사용한 지 각각 5년 4년이 됐고, 최근에는 배터리 때문에 여러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통신사를 바꾸면서 기기 구매 프로모션을 받는 것을 알아보기로 했다.


한국에선 휴대폰 구매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가득한 일명 ‘단통법‘ 때문에 휴대폰을 교체할 때 지원금이 매우 적은 편이다. 나도 한국에서 10년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어느덧 휴대폰을 살 때 고가의 할부금을 내는 대신 통신비를 할인받는 제도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물론 2년 이상의 약정을 요구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신규 기기 지원금이 거의 단말기 가격 전체를 지원해 주는 경우가 많다. 전국망을 가지고 있는 통신사가 네다섯 곳에 이르고, 한국의 ’알뜰폰‘의 지위에 해당하는 통신사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업체에서 서로의 가입자를 모시기 위해 고가의 지원금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내가 사용하는 휴대폰의 버전이 3~4단계를 뛰어넘을 때까지 잘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을 이제는 바꾸어야 할 때가 왔다고 확신이 들었다. (새 기기 욕심에 눈이 멀어 자기 암시가 점점 강해진다)


미국 온 지 딱 일 년째가 되던 날, 아내와 나, 아이까지 총 세 개의 회선을 모두 함께 새로운 통신사 약정에 가입을 했다. 아이는 휴대폰을 바꾼 지 불과 일 년밖에 되지 않아, 아내와 내 휴대폰만 새 휴대폰으로 교체했다. (아이의 입이 삐죽 나오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아이에게 너무 좋은 전화기는 사치다) 통신사를 직접 방문하진 않았다. 요새는 웹에서도 너무 쉽게 통신사 변경 가입이 되는 데다, 광고 메일에 있는 QR코드를 통해 가입을 해야지만 할인을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미국에서 통신사 약정을 가입하고 기기 할인을 받으려면 신용도 체크가 필수적이다. 신용도 체크를 하려면 미국의 주민등록번호라 할 수 있는 사회보장번호(SSN)가 필수적인데, 사실 번호가 있기만 하면 거의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아내의 사회보장번호를 통해 통신사 가입을 하고, 기기 반납(Trade-in)을 신청하고, 전체 신청을 다 하는 데는 불과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사실 미국에서는 비대면으로 서비스를 받거나 업무를 처리하는 것에 굉장히 거부감이 많은 편이다. 신용을 중요시하는 나라에서 비대면 서비스는 신용도가 떨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하지만, 정보통신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팬데믹까지 거치면서 미국도 이런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된다. 통신사 방문 없이 순식간에 기기값 지원과 약정 서비스 가입, 번호이동까지 처리를 완료하다니. 한국에서였다면 놀라지도 않았을 테지만, 미국 사람들의 리테일 스토어 사랑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놀랄만하다.


이틀 후, 집으로 아내와 나의 새 휴대폰이 배달됐다. (오! 영롱하여라!) 정말 모처럼 스마트폰 구입이어서 신나 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새 휴대폰의 번호가 기존에 사용했던 번호가 아닌 새로운 번호였다! 그러고 보니 기존에 사용하던 통신사의 서비스도 아직 살아있었다! 아무래도 번호 이동이 되지 않은 듯했다.


미국에서 휴대폰 번호는 한국과 달리 지역번호를 그대로 쓴다. ‘011’과 같은 별도의 휴대폰 식별번호가 아닌, 집전화와 같은 번호 형식이다. 원래 우리가 쓰던 번호는 지역 대도시 식별 번호를 사용하는 데다 나와 아내, 그리고 아이까지 일련번호처럼 다 같은 번호에 끝자리만 다른, 심지어 끝자리도 7, 8, 9, 이렇게 순서대로 번호가 되어서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다. 그런데 새로 발급받은 번호는 작은 시골마을 지역 번호에 번호도 제각각이었다. 설령 번호가 좋다 하더라도 이미 일 년이나 번호를 쓰지 않았는가.


아무래도 개통 과정에서 번호 이동에 대한 체크 항목을 놓친 듯했다. 직접 대면 서비스로 번호이동을 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고 실컷 비대면 서비스를 칭찬했건만, 비대면 서비스 중엔 이런 일이 잘 벌어진다. 아내나 나나 모두 멘붕이 되어버렸다. 아내는 새롭게 모든 사람들에게 새 번호를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모리가 아팠고, 난 사소한 실수 때문에 가족 구성원들에게 불편함을 끼쳤다는 생각에 좌절했다.


일단 다음날 아내와 함께 통신사 스토어에 찾아가 보기로 하고 잠을 청했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이리저지 커뮤니티를 찾아다니며 방법을 모색했다. 그러다가 한 커뮤니티 글에서 방법을 찾았다. 미국에선 휴대폰이 양쪽 다 개통되어 있는 상태에서도 번호이동이 가능하단 글이었다. 이전 통신사에서 번호이동 시리얼키만 받으면 번호 이동이 가능하단다. 그제야 안심한 나는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다음날 아내와 함께 통신사를 찾았다. 내가 실수한 만큼 철저히 준비했다. 번호이동 시리얼키도 미리 받아두고 이동할 번호 매치도 다 해 뒀다. 통신사에서는 번호이동을 마치는데 불과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원래도 전화 통화를 통해서나 대면 서비스를 통해 뭔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에 온 후 영어를 쓸 일이 많지 않다 보니 대화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 많아졌다. 뭔가 대화와 요청,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문제 해결을 하는 것에 덜컥 겁이 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사실 막상 겪고 보면 별것도 아닌데… 조금 더 자신감을 갖고 부딪혀 보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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