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79 (aug 18th 2023) 그리고 방학 끝!
새 학기를 코 앞에 두고 희소식이 날아왔다. 지역의 유명한 박물관들이 8월 한 달간 공짜라는 것이다.
‘갑자기?’
얼마나 자주인지는 모르나, 어느 조사를 통해 미국 전역에서 박물관들을 평가했고, 그 평가에서 지역의 빅물관 세 곳이 Top 10 안에 들었단다. 그래서 그 세 곳의 빅물관이 감사 이벤트로 무료입장 행사를 한다는 것.
‘횡재다’
유튜브 영상으로도 만들었지만, 미국에서 문화 예술 스포츠 관람료는 굉장히 비싼 편이다. 거기에 아이와 어른의 관람료 차이도 거의 없다. 우리 집 세 식구가 어디라도 방문할라 치면 쉽게 10만 원 돈이 들어가곤 한다. 그런데 박물관이 세 곳이나 공짜라니, 이건 무조건 방문각이다.
난 미국을 여행으로 돌아다닌 적이 거의 없어서, 박물관이나 미술관, 관광 명소를 가본 적이 거의 없다. 아무래도 유학이나 이민으로 정착해 살다 보면 일상에 치여 그런 곳을 가는 건 굉장한 호사라 느낄 때가 많다.
샌프란시스코 유학시절엔 코앞에 현대미술관을 두고 한 번을 안 갔다. 내가 다닌 학교와 재단에 같은 미술관이어서 한 달에 한 번은 공짜였는데도 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월트디즈니(인물) 박물관이 있다는 건 유학시절엔 알지도 못했고, 한국에 온 뒤 회사 출장으로 가서 방문했다. 맨해튼 바로 강 건너 뉴저지 살던 시절엔 모마, 구겐하임 등은 꿈도 못 꿨고, 자유의 여신상도 못 봤다. 귀국 전 타임스퀘어만 도장 찍었을 뿐이다. 물론 그때는 아이가 어렸다는 핑계가 있긴 했다.
지난 일 년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곳에도 몇몇 명소가 있다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격에 대한 부담에 첫 번째였고, 시간에 대한 부담이 두 번째였다(라고 쓰지만, 시간이 부담이라니, 눈 가리고 아웅이다. 난 백수 주부 아닌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명소 방문을 미뤘다. 사실, 큰 지출을 피했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다. 지난 글에서 자연사 박물관을 가다가 부부싸움을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일 거다.
그런 와중에 세 개의 박물관이 모두 공짜라니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더군다나 8월엔 덥기 때문에 야외활동보단 실내가 좋은데, 박물관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매주 한 곳씩 아이와 방문하기로 마음을 먹고 시간을 예약했다.
무료입장을 하는 박물관은 세 곳. 어린이 박물관, 앤디워홀 박물관, 하인즈 역사 센터였다. 그중에서 어린이 박물관은 워낙 평이 좋아서 아이와 함께 가면 좋겠다 싶었다. 앤디워홀 박물관은 나나 아내는 꽤나 흥미롭게 볼 수 있어도 아이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겠다 싶었고, 하인즈 역사 센터는 ‘하인즈 케첩’ 지역 산업에 대한 홍보관이겠거니 했다. 박물관이라는 곳이 아이들에겐 지루한 곳일 수도 있지만, 지난번에 자연사 박물관을 좋아하기도 했고 모두 특색이 있는 곳이어서 아이도 재미를 느낄 수 있겠거니 했다. 방문 순서는 가장 기대감이 높은 어린이 박물관부터, 앤디워홀 박물관, 하인즈 역사 센터 순이었다.
하지만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처음으로 방문했던 어린이 박물관이 생각보다 별로였다. 사실 박물관이 별로였다기 보다는 박물관의 타깃 연령이 딸아이의 나이보다 조금 많이 어렸다. 전시나 그림 등을 보는 곳이 아닌, 다양한 상호 작용 시설과 프로그램으로 체험 위주의 공간이었다. 아무래도 아이에게는 꽤나 유치해 보였나 보다. (전형적으로 십 대에 접어드는 아이의 태도인데, 정말 꼴 보기 싫다!!) 불과 한 시간도 되기 전에 아이는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이날은 마침 아내의 학교 일정을 기다려야 하는 날이어서 적어도 두 시간은 박물관에 있어야 했다. 유치해 보이는 활동과 전시를 둘러보며 한 시간을 더 있는 것이 꽤나 고역이었다. 사실 이곳은 내게도 그다지 흥미로운 곳이 아니어서 더 힘들었다.
두 번째로 방문한 앤디워홀 박물관엔 세 가족이 모두 함께 출동했다. 사실 유명한 앤디워홀의 작품을 본다는 생각에 나는 조금 좋았지만, 아이의 반응에는 큰 기대가 없었다. 그냥 나가는 길에 기념품이나 하나 안겨주면 되겠지 했을 정도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이의 반응이 흥미로웠다. 앤디워홀의 (아이의 눈에는) 조금 기괴한 그림들을 흥미롭게 보는 것 아닌가? 대단한 영감을 가진 듯하진 않아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 있어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기가 힘들지 않았다. 기분 좋게 관람한 뒤 제법 쓸만해 보이는 앤디워홀 드로잉이 프린팅 된 에코백을 하나 구입해서 왔다.
마지막으로 개학 직전에 아이와 단둘이 방문한 곳은 하인즈 역사 센터였다. 처음엔 이곳을 코카콜라 박물관처럼 하인즈 케첩 박물관이라고 생각했다. 케첩 제작과정, 회사의 설립과 성장, 글로벌 기업화 과정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내 생각이 틀렸다. 물론 아주 작은 공간, 그런 전시가 있긴 했지만 극히 일부였다. 대부분은 역사 센터라는 이름에 맞게 이 도시의 역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전시가 있었다. 내 개인적인 흥미를 끄는 전시는 스포츠 전시였는데, 야구와 미식축구, 아이스하키가 인기 있는 지역인 만큼 해당 스포츠의 역사와 함께 지역팀의 역사를 흥미롭게 전시해 놓았다. 그 외에도 다양한 역사 내용을 바탕으로 한 전시가 있었는데 불과 2~300년에 불과한 역사를 대단한 것처럼 포장해 전시하는 것이 첨으로 흥미로웠다. 아이는 처음에 전혀 흥미가 없어서 아삐로서 실망스러운 부분이 조금 있었는데, 그래도 마지막까지 잘 관람하고 돌아왔다.
세 번째 박물관 방문을 끝으로 딸아이의 여름방학도 끝났다. 아이가 미국에서 처음 맞는 여름방학. 부모 입장에서야 3개월이나 되는 긴 여름 방학 동안의 양육이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경제적으로도 여유롭지 않아, 방학 내내 다양한 활동을 지원해 줄 수 없어 속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작년 여름엔 한국 학교 방학을 하자마자 미국으로 와서 불과 3주 만에 미국 학교의 첫 학년을 시작했었다. 1년간 쉼 없이 적응 과정을 거친 아이를 위해서 푹 쉴 수 있었던 기간이 아니었나 싶다.
이제 아이의 마지막 초등학교 학기가 시작된다. 어학 수업 없이 맞는 첫 학기이기도 하고, 그래도 조금 준비가 된 상태로 시작하는 학기이기도 하다. 한 학년동안 정말 좋은 추억 많이 남기고,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활동과 체험을 할 수 있는 한 학기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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