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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주일기

미국의 초등학교 개학, 아빠의 해방

D+382 (Aug 21st 2023)

by jcobwhy

월요일의 해가 밝아왔다. 아침 일곱 시, 눈을 뜨자마자 아침 루틴 중에 첫 번째인 ‘디디’ 산책을 나간다. 지난 11월 ‘디디‘를 입양한 이래 하루도 빠지지 않은 루틴이다. 하지만 오늘은 발걸음이 다소 조급하다. 아침이 바쁘기 때문이다.


아이가 개학을 하는 날이다. Back to School. 미국의 가을학기 개학 날은 마치 의식과도 같다. 혹은 공휴일, 기념일 같다고 해야 할까?


8월 초부터 존재하는 모든 리테일 스토어에서는 각종 백투스쿨 할인 행사로 수많은 가족들을 유혹한다. 학용품을 판매하는 가게는 말할 것도 없고, 전자제품 가게, 홈데코레이션 가게에 슈퍼마켓까지 거의 모든 가게들이다. 물론 새 학년이 시작되는 것이 가을인 미국에서 한 여름인 8월에 아이들을 위한 수많은 지출이 필요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한국에서도 2월에 이런저런 새 학기 할인 행사는 많이 봐 왔으니까.


하지만 미국에서 새 학년으로 올라가는 8월은 왠지 더 기념일과 비슷하다. 그 이유는 이전 3개월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6월 초, 정말 갓 여름의 티가 나기 시작하는 날, 아이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미국에서 처음 맞는 아이의 방학은 길어도 너무 길었다. 아이의 방학과 함께 나의 생활은 아이에 완전히 동기화되고 말았다. 꼼짝도 못 하고 집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생활이 이어졌다.


몇 번 언급했듯 미국에서 초등학생을 집에 혼자 두거나 혼자 집 밖에 내보내면 아동학대로 처벌받을 수 있다.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가 부모 없이 밖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이 미국이다. ’잠깐만 았어. 아빠 장 보고 올게‘ 류의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딜 가든 아이가 동행해야 한다. 문제는 아이가 어디에도 동행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건데, 그럼 아내가 퇴근하거나 주말까지 거의 대부분의 외부 일(장을 보거나 은행일, 행정일 등)은 미뤄둬야 한다.


거기에 입 까다로운 삼식이가 된 아이 때문에 스트레스가 컸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아이는 부모와 완전한 ’겸상‘(?)을 하지 못한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 좋아하는 것이 너무 달라 아이의 밥을 따로 차려줘야 한다. 아이가 먹는 음식이 열 손가락 안에서 움직이니, 삼시 세끼를 집에서 먹으면 3~4일이면 리스트가 동나버린다. 거기에 지겨운 건 어찌나 싫어하는지 소스가 되었던 양념이 되었던 변주도 줘야 한다. 내 밥 따로 차리랴, 애 밥 따로 차리랴, 식사 준비 세 번 하고 나면 하루가 후딱 간다.


방학이 너무 길다 보니 여러 활동을 시켜야 한다는 부담도 많다. 특히 미국에서의 첫 방학인 만큼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할 여러 체험을 시키고자 하는 강박도 있었다. 경제적 부담도 되는 일이기에 할인이나 무료 체험 등을 잘 검색해야 했다. 그럼에도 많은 것들을 아이에게 경험하게 하지는 못했다. 여름 캠프 3주, 지역 박물관 3곳 정도가 다다. 워낙 비용에 겁먹었던 부분도 있고, 아이가 워낙 방학 동안 집에만 있고 싶어 했다. (그런 아이 핑계 삼아 옳다구나 하며 집에서 뒹굴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수많은 고민과 스트레스의 원인이었던 여름방학이 끝나니 백투 스쿨은 부모들에게 경건한 의식일 수밖에 없다. 자유를 되찾는 의식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그런지 백투 스쿨 준비에 드는 비용에는 기꺼이 지갑을 연다. 나의 자유가 눈앞에 왔는데 이 비용이 대수냐 하면서 말이다. 아이는 새 학기를 맞아 새로운 가방, 새로운 폴더를 구매했다. 미국의 학생들에게 여러 개의 포켓을 갖춘 링바인더 폴더는 팔수품이다. 각종 유인물과 숙제 프린트, 심지어 교과서와 팔통, 아이패드까지 폴더애 넣어 보관하게 한다. 지난여름에 산 폴더가 너무 커서 가방에 들어가지 않는다며 가방을 사더니, 그래도 가방 공간이 모자라다며 폴더도 질렀다. 비합리적인 소비에 한마디 하고 싶다가도, ‘그래 자유가 멀지 않았다’ 하며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다시 월요알 아침.


‘디디’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아이는 어느새 깨서 학교 등교 준비에 부산하다. 어제 벌써 의상 코디까지 다 해 걸어 놓았었다. 새 가방과 새 폴더 준비는 말할 것도 없다. 난 아내 등교 준비와 함께 아이 도시락도 싸야 한다. 갑자기 한국 학교의 무상 급식이 그립다. 도시락이래 봐야 식빵 샌드위치가 다다. 한 해 동안의 이런저런 시도와 실패 끝에 정착한 아이의 고정 점심식사다. 간식과 음료수, 물통까지 챙기면 아이를 위한 내 등교 준비는 끝이다.


아내가 먼저 등교하고, 거의 한 시간이 지나서야 아이가 등교한다. 학교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나간다. 3개월 만에 스쿨가드 조이를 만나 반갑게 인사도 건넨다. 등교 첫날 학교 버스는 엉망진창이란다. 새로운 운전기사, 새로운 버스 노선, 새로운 아이들로 인해 딜레이가 많이 된다고 한다. (사실 우리 아이의 버스 배정도 엉뚱한 학교로 나와서 그전 일주일 동안 새 노선을 신청하고 받는 생난리를 치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의 버스는 정해진 시간보다 거의 20분이 더 되어서야 도착했다. 아홉 시까지 등교인데 아홉 시에 버스가 도착했다. 급하게 아이를 버스에 태워 보내고 나서야 아이의 학기 첫날 등교 전쟁이 끝났다.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 가운데, ’디디‘만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다. 이내 무심한 듯 베란다 앞에 꽈리를 틀고는 모닝 일광욕을 즐긴다.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이 아침에 정적이 흐르고 나 혼자 남겨진 이 느낌… 은 개뿔! 드디어 해방이다!!!


쿠키.

아이의 등교보다 하교는 더 헬이었다. 학교 버스는 도착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이 늦은 네 시 반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디디’ 오후 산책 겸 해서 나왔었는데 뙤약볕에서 타 죽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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