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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서 Aug 11. 2021

웃는 고흐

[단편 동화]


집에 들어오자마자 내 방으로 달려갔다.

책상 위에 세워 둔 ‘세계 미술 전집’이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고흐, 고갱, 피카소, 마네, 드가, 르누아르.

여섯 화가의 그림이 실린 책들은 모두 차례대로 꽂혀 있었다.

‘휴, 다행.’

고도준이 건드리지 않았다는 거다.

사고뭉치 동생이 있다는 건 정말 피곤하다. 내 물건을 가만히 내버려 두는 법이 없으니까. 왜 일곱 살짜리 남자아이가 자기보다 네 살이나 많은 누나 물건에 그토록 관심이 많은 걸까?  

친구에게 선물 받은 손거울이 이틀 만에 금이 갔다. 아끼던 48색 크레파스는 삼 분의 일이 어디론가 굴러가서 행방불명이다. 아빠에게 겨우 졸라서 산 스마트폰이 화장실 변기에 퐁당 빠진 적도 있다. 다 고도준이 저지른 짓이다.

세계 미술 전집은 이모가 내게 특별히 준 선물이다. 지난주 일요일, 이모는 뭔가를 잔뜩 들고 우리 집에 왔다.

“이건 이모가 정말 아끼던 거야. 중국까지 가져갈 수 없어서 주는 거 절대 아니야. 우리 도희가 그림 잘 그리니까 주는 거지.”

이모는 며칠 있으면 이모부와 함께 중국에 간다. 이모부 회사 일 때문이다. 지금 가면 삼 년은 있어야 한다는데. 이모와 당분간 헤어져야 하는 건 속상했다. 하지만 이모가 준 여섯 권의 보물을 보자 가슴이 콩닥거렸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 전집.

여섯 화가의 이름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림까지 자세히 본 적은 없다. 책들은 오래돼서 조금 낡았지만, 두꺼운 표지 위에 저마다 화려한 색깔로 꾸며져 있었다. 야호! 정말 멋져 보였다.


이모는 엄마랑 다르다.

나에 대해 뭐든지 알고 있다. 내 꿈이 화가라는 것, 내가 얼마나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지, 또 내가 얼마나 그림을 잘 그리는지 말이다.

“도희는 열한 살 같지 않다니까. 이모도 이런 똑똑한 딸 낳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 아이가 없는 이모는 나를 딸처럼 예뻐한다.

엄마는 그렇지 않다. 맞벌이를 시작하면서 엄마는 엄청 피곤해했다. 엄마의 관심은 오로지 동생 고도준뿐이다. 나는 늘 뒷전이고.

내가 학교에서 미술상을 받아도 별로 반응이 없다. 아빠는 늘 바쁘니까 할 수 없지만, 엄마가 내 일에 시큰둥한 건 정말 짜증 난다. 엄마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이다음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물어본 적도 없다.

엄마가 정말 나를 낳았을까? 혹시 이모가 내 친엄마는 아닐까?

거울에 비친 나의 짱구 이마와 작고 동그란 코. 안타깝게도 이모보다는 엄마와 판박이다. 하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나중에 유전자 검색을 해보면 알겠지.

나는 미술 전집 중에서 앞의 세 권을 들고 마루로 나왔다. 내 방은 조금 어둡다. 밝은 데서 제대로 그림 감상을 하고 싶었다.

텔레비전 앞에서 게임을 하던 도준이가 내 미술책을 흘깃 보았다. 그러더니 표지에 쓰인 화가들 이름을 큰소리로 읽었다.

“고흐, 고갱, 피카소!”

도준이는 얼마 전에 한글을 뗐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뭐든 닥치는 대로 소리 내어 읽는다.

“누나, 고흐랑 고갱이랑 누가 형이야?”

이런 바보 같으니라고. 도준이는 두 화가가 같은 고 씨 성을 가진 형제라고 생각하나 보다.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나이가 더 많은지는 나도 모른다.

“고흐가 형이야.”

나는 귀찮아서 그냥 내가 좋아하는 고흐가 형이라고 했다.

고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다. 이모에게 어렸을 때부터 고흐라는 화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모른다.

나는 가장 먼저 고흐의 그림책을 펼쳤다.

고흐는 자화상을 참 많이 그렸다. 화가가 스스로 그린 자기의 초상화 말이다. 그런데 그중에 환하게 웃고 있는 건 하나도 없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고흐가 웃고 있는 그림은 없다.


나는 고흐가  웃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마 고흐는 고독했을 거다. 그림을  그렸지만,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았으니까.

나중엔 귀도 아팠고.

예술가가 고독하다는 건 그럴듯하다. 사실 나도 가끔 고독할 때가 있다. 고흐가 웃기 싫었을 거라는 걸 난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고흐에게는 테오라는 착한 동생이 있었다. 고흐가 평생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준 멋진 동생. 내 동생 고도준과는 정말 수준이 다르다.

“누나, 나 배고파.”

고도준이 다시 나를 귀찮게 한다.

냉장고를 열어 보니 페트병에 포도 주스가 반쯤 남아 있었다. 나는 포도 주스를 컵에 따라 도준이에게 건네주고 다시 미술책을 보았다.

책을 펼쳐 둔 채로 그냥 화장실에 간 게 잘못이었다.

볼일을 다 보고 물을 내리는데 밖에서 “악!”하는 도준이의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바지를 올리면서 나는 후다닥 밖으로 나왔다.

도준이가 미술책 위에 포도 주스를 엎질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흐의 모자 쓴 자화상이 펼쳐진 쪽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또 사고를 쳤다! 역시 고도준은 내 인생에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는 아이다.

“야, 이게 뭐야! 너 죽을래?”

주변을 둘러봤지만 마땅한 휴지나 걸레가 보이지 않았다. 어찌나 화가 나는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일단 화장실로 뛰어가 두루마기 휴지를 잔뜩 가져왔다. 이미 얼룩이 진 책장 사이를 살살 닦았다. 고흐의 오른쪽 뺨이 짙은 보라색이 되었다. 종이는 흥건히 젖어서 뒷장까지 붙어버렸다. 조심스럽게 앞 뒷장을 떼려는데 잘 안 된다. 속이 타는 것 같았다. 결국, 그림은 찢어졌다.

“으앙!”

고도준은 지가 잘못해 놓고 눈치 없이 옆에서 울어댔다.

“시끄러워! 뭘 잘했다고 우는 거야!”

나는 도준이 머리를 있는 힘껏 쥐어박았다. 도준이는 더 크게 울어댔다.

그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엄마가 오늘따라 일찍 퇴근했다. 엄마는 도준이가 우는 걸 보더니 대뜸 내게 소리부터 질렀다.

“고도희, 지금 뭐 하는 거야? 네가 동생 울린 거야?”

도준이는 더 호들갑을 떨며 울어댔다.

“쟤가 내 책을 이렇게 망쳐 놨단 말이야.”

“네가 간수를 잘했어야지. 지금 동생 울리고 잘했다는 거야?”

엄마는 내 말은 길게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도준이 좀 울면 어때? 저런 멍청이 같은 녀석보다 난 이 책이 훨씬 더 소중하단 말이야!”

나는 있는 힘껏 악을 쓰며 말했다.

“뭐, 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엄마는 소리를 버럭 지르더니 내 등짝을 세게 후려쳤다.

“엄마는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쟤가 똑똑하면 이런 일도 안 생겼을 거야. 저런 동생 때문에 정말 짜증 나!”

난 약이 올라 엄마에게 큰 소리로 화를 냈다.

“뭐라고? 도준이도 착한 누나 갖고 싶은 거란 생각은 안 해 봤어? 엄마도 딸이 잘 웃고 상냥했으면 좋겠어, 제발!”

엄마 말에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뭘 어쨌다고!

“엄마는…… 나한테 관심이나 있어? 내가 뭘 원하는지 알기나 하냐고! 엉엉…….”

나는 가슴속에 묻어 둔 말을 퍼부어댔다. 서러운 마음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엄마는 기가 막힌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동생이 운다고 무조건 혼내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아끼는 책을 못 쓰게 만든 고도준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나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대로 집에 다시 들어가진 않을 거야.’

근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두 주먹을 쥐고 눈물을 닦으면서 무작정 앞으로 걸었다.

엄마는 날 사랑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 나도 엄마가 싫다. 정말 밉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눈물은 말라서 더는 흐르지 않았다. 다리가 아팠다. 조금 쉬어가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경복궁역 서울 메트로 미술관 가을맞이 창작 미술 대전시’

하얀 건물에 붙은 커다란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앞이 경복궁역이다. 역 계단으로 내려갔다. 지하철 안에 이렇게 큰 미술관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미술관은 학교 운동장만큼이나 넓어 보였다. 유리문을 통해 넓은 내부가 환하게 다 보였다. 벽에는 그림들이 쭉 걸려 있고 천장은 높고 조명은 밝았다.

나는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천천히 벽에 걸린 그림들을 보았다. 오른쪽 벽에 있는 그림들을 거의 다 보고 돌아섰다.

그때 낯익은 그림이 눈에 확 들어왔다. 앗, 고흐의 자화상이었다. 귀에 하얀 붕대를 한 모습이 분명히 고흐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림 앞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뭔가 달랐다. 고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림 밑에 있는 제목을 보았다.

‘웃는 고흐’

고흐의 진짜 자화상이 아니었다. 그러면 그렇지. 이런 데 서 그렇게 유명한 화가의 전시회를 할 리가 없다.

진짜 자화상이 아니라는 건 실망스러웠지만 나는 그림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입꼬리를 한껏 올리고 빙그레 웃고 있는 고흐.

‘고도희, 그렇게 속상했어? 이제는 그만 화 풀어.’

화가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웃고 있는 고흐가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나는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지하철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어둑어둑했다. 집 쪽을 향해 터벅터벅 걸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뭐라도 사 먹고 싶은데 주머니에는 동전 하나 없었다.

저 멀리 누군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엄마와 도준이었다.

“누나!”

사고뭉치가 나를 보더니 달려왔다.

“고도희!”

엄마가 머뭇머뭇 내게 다가왔다. 엄마 얼굴이 많이 지쳐 보였다. 아까 회사에서 돌아왔을 때 옷차림 그대로였다.

내가 혹시라도 집에 안 들어갈까 봐 찾으러 나온 걸까. 나는 머쓱해서 엄마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지금이 몇 시야? 여태 어디서 뭐 한 거야?”

“…….”

아무 말도 하기 싫었다.

“오래돼서 낡은 책 가지고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엄마가 찢어진 데 잘 붙여 놓았어. 이제 괜찮을 거야.”

‘치, 이미 찢어진 걸 뭐.’

나는 여전히 입만 삐쭉거렸다.

“그리고 이거…….”

엄마가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뭐야?”

나는 부러 퉁명스럽게 물었다. 엄마 대신 도준이가 재빠르게 대답했다.

“고흐 형 책이야”

쿡. 나는 겨우 웃음을 참고 화가 난 듯 말했다.

“바보야, 고흐가 왜 니 형이야?”

내 말에 도준이는 혀를 날름거렸다.

엄마 손에는 ‘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작가’라는 책이 들려 있었다.

전에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이모에게 이 책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이모는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어려우니, 나중에 읽어보라고 했는데.

“좀 어렵겠지만…… 도희, 너는 읽을 수 있을 거야. 우리 딸 똑똑하잖아.”

엄마 말에 나는 마지못하는 척 책을 받아 들었다. 빨리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꾹꾹 참았다.

“……그리고 자기 딸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엄마가 세상에 어디 있어?”

엄마는 나를 흘겨보며 말했다.

‘치, 나한테 관심도 없었으면서…….’

속으로는 그랬지만, 내 마음은 이미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르 녹았다.

엄마의 짱구 이마와 작고 동그란 코. 굳이 유전자 검색까지 할 필요 없을 거 같다. 나는 엄마 딸이 분명할 테니까.

“배고프지? 치킨 사서 가자.”

엄마 말에 도준이가 좋아서 겅중겅중 뛰었다.

자꾸 웃음이 나왔다. 지금 내 얼굴은 미술관의 고흐처럼 입꼬리가 잔뜩 올라가 있겠지?

나는 한 손엔 책을 꼭 쥐고, 다른 손은 엄마에게 내밀었다. 엄마 손은 내 손보다 훨씬 크고 따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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