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잃고, 나를 되찾다

읽기와 쓰기가 다시 만나는 순간

by 기록습관쟁이

독서 권태, 글쓰기 망명의 시작

포항 출장길, 나는 나의 가장 충실한 동행이었던 책 한 권을 잃어버렸다. 숙소 침대 머리 맡에 무심히 내려놓았던 그 책, 새로 산 지 며칠 되지 않아 절반도 읽지 못했던 종이책이었다. 이틀을 묵었던 숙박업소에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으나, 끝내 받지 않는 전화는 내가 처한 상실의 상황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었다. 책을 잃은 물질적 손해보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새로움을 가득 담은 문장들. 그것들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그날부터 나의 독서 권태기는 시작되었다. 마치 연인에게 배신당한 사람처럼, 나는 세상 모든 종이 활자들을 밀어냈다. 종이책은커녕, 스마트폰 속 밀리서재 앱 아이콘을 향해서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책을 멀리하니, 내 안 속 글쓰기 근육 역시 급격히 이완되었다. 독서의 중단은 글쓰기 망명의 가장 명확한 신호였다.


나는 사실 글 쓰는 행위를 혐오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독서를 중단함으로써, 글쓰기의 고통으로부터 탈출구를 스스로에게 허락한 셈이었다.


글쓰기의 고통, '나'를 향한 배신

글을 쓴다는 건, 내게 고독의 시간을 넘어선 고통의 시간이었다. 나는 명석한 두뇌를 가진 자가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떠도는 불분명한 생각의 조각들을 끄집어내기 위해 골똘히 고뇌하는 시간은, 마치 늪지대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처럼 느껴졌다. 거침없이 내뱉은 수많은 문장들을 한데 모아,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는 반복의 형벌을 스스로에게 내려야 했다.


나는 완벽주의자가 아니었음에도, 결과에 만족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결국 어느 순간, '이만하면 됐다'라며 나 자신과 비겁한 타협을 하고 마는 순간이 찾아왔다. 글을 쓴다는 게 이토록 심대한 체력적, 정신적 소모를 요구하는 일일 줄은 몰랐다. 매번 글을 마칠 때마다, 나는 영혼의 뼈가 깎여나가는 듯한 피로감을 느꼈다.


누군가 말했다. "글을 쓸 때가 즐거워야 좋은 글이 만들어진다"고.


에라, 똥이다. 나는 그 말을 단호히 부정한다. 글을 쓰는 것은 즐거움이 아니다. 그건 수양의 시간이며, 나 자신과의 가장 처절한 싸움이다. 저 바닥 밑에 있는 암흑 속 고독으로 빨려 들어가는 시간이다. 그런 상황 속에 누가 진정으로 즐거울 수 있겠는가. 적어도 나는 그랬다. 글쓰기는 고행이었다.


그러니 책과 글을 멀리하자, 마음이 홀가분해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나는 고독이라는 굴레에서, 고통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났다.


쾌락 속의 방황, 글쟁이의 미련

나는 스스로를 '글쟁이'라고 불러왔다. 글 쓰는 고통을 알면서도, 굳이 그 굴레를 짊어지고 살았던 이유는 그게 내 정체성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독서 권태기와 함께 글쓰기를 멈추자, 그 정체성마저 무너져 내렸다.


홀가분한 마음속에서 나는 망명자처럼 살았다. 생업에 집중하고, 남는 여가 시간을 온전히 휴식과 쾌락에 할애했다. 술을 마시고, 스포츠 운동을 즐겼다. 고독 속에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마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토록 기쁠 줄 몰랐다. 마침 명절까지 끼어, 한 집안 가장으로서 내 선에서 가능한 최대한의 쾌락을 만끽했다.


그러나 인간 영혼은 그리 쉽게 스스로를 속이지 못한다. 나는 쾌락을 좇는 와중에도 계속 글과 연관된 무엇인가에 눈길을 주었다.


무의식적으로 밀리서재 앱을 간간히 들여다보게 되더라. 내심, 내 서재 속 문장들이 무사한지 궁금했던 걸까. 그래서였는지, 나는 SNS에 더 집중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업로드하고, 스레드에는 마치 무지성 낙서처럼 짧은 글과 사진을 쉼 없이 올렸다. 겉으로는 '휴식'이라 말했지만, 사실 글쓰기의 고통을 회피한 채, '글과 비슷한 무언가'라도 붙잡고 내 글쟁이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었던 미련이었을 것이다. 나는 글쓰기의 본질을 배신하고, 가짜 글쓰기 속에서 표류하고 있었다.


보름의 방황, 그리고 복귀

그렇게 무의미한 방황의 시간, 보름이 흘렀다.


일상으로 복귀하고 본업에 다시 집중할 때, 신기하게도 내 안 글쓰기 스위치가 켜졌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는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다. 이 복귀의 원인은, 내가 지난 보름동안 했던 쾌락 행위들에 있지 않았다. 내가 글을 쓰게 만든 방아쇠는, 아이러니하게도 어젯밤에 잠깐 열어본 밀리앱 속 책 한 권이었다.


나는 잊고 있었다. 내가 글을 읽는 동안, 내 안의 다른 자아는 그 문장들을 분해하고, 분석하고, 내 것으로 치환하는 작업을 쉼 없이 하고 있었다는 것을. 글을 읽으면서, '이 문장은 어떻게 저렇게 표현했을까', '이 생각은 어떻게 풀어낸 걸까'라는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의 끝에는 언제나 "나도 저렇게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있었다.


역시 그랬다. 나는 비로소 내 본질을 다시 찾은 기분이었다.


읽는다는 건, 쓴다는 것과 같다는 거다.

읽기는 쓰기의 명분이며, 쓰기는 읽기의 결과물이다. 독서의 중단은 쓰기의 고갈로 이어지는 필연적 과정이었다. 책 한 권을 잃어버리며 시작된 독서 권태기는, 읽는 것과 쓰는 것이 사실은 하나라는 소중한 진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글쓰기는 여전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나는 다시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 고독한 수양의 시간을 감내해야 할 거다. 하지만 이제 안다. 내가 글쟁이로서의 정체성을 붙잡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책을 읽는 순간, 나는 이미 절반의 글을 쓰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방황 끝에 다시 책과 글을 잡은 이 글쟁이의 서사가, 혹시 지금 독서 권태기나 글쓰기 슬럼프를 겪고 있는 당신에게 작은 동기 부여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지금 손에 든 그 책이, 당신의 다음 문장을 시작하게 만들 테니까요.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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