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꿈을 돕는 법 : 돈보다 떳떳함이 먼저인 이유
이전 글에서 내가 무슨 고해성사라도 한 것처럼 '독서의 고통', '글쓰기의 망명'같은 무거운 단어들을 쏟아냈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진실이지 않나. 책 읽기 힘들었고, 글 쓰는 건 더 힘들었다. 그렇게 나를 뼈저리게 되찾고 나니, 이제는 또 다른 질문이 튀어나왔다. "이 고독한 수양의 결과를, 가장으로서의 내 삶에는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가?"
내 머릿속엔 '책(지식)'과 '경험(실천)'이라는 두 날개를 얻었으니, 이제 '가장이라는 현장'에서 멋지게 비상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늘 그렇듯,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작가님, 아들 대신 저에게 일침을 놓으시다
화가를 꿈꾸는 아들 성한이. 녀석의 견문을 넓혀주겠다며 부산진역까지 가서 전이수 작가 특별전시회를 찾았다. 솔직히 말하면, 아들보다는 고작 18세 작가라는 타이틀에 내가 더 흥미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글쟁이로서의 시기심일까, 아니면 경외감일까.)
전시를 보며 나는 전이수 작가를 '때 묻지 않은 흰 도화지 같은 청년'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이 청년의 작업 방식이 참 기특했다. 기타 치며 사색하고, 그 생각을 글로 적은 뒤, 그 글을 그림으로 옮긴다니. '글쟁이'와 '화가'를 한 몸에 담은 셈이었다. 벌써 18권의 책을 낸 꾸준함까지!
그는 자신은 천재도 재능도 없다고 했지만, 나는 보았다. 그가 가진 진짜 무기는 그림을 향한 순수한 사랑과 매일같이 몰두하는 고독한 집념이었다. 마치 내가 글쓰기를 피해 도망쳤다가, 결국 그 고통을 수용하고 다시 돌아온 과정과 똑같지 않은가! 창작의 고통은 분야만 다를 뿐, 수양의 본질은 같았다.
그리고 그 옆에 계셨을 어머니. 나는 감히 그 어머니가 더 위대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고독한 몰입을 지켜봐 주고, 아이가 마음껏 때 묻지 않은 도화지로 남아 있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준 사람이니까.
아버지는 '말'이 아니라 '현장 예술'이다
문제는 그 순간, 바로 내 눈앞에 아른거린 것이었다. 잔소리 폭격기인 나의 모습!
"성한아, 그거 그렇게 그리면 안 되지!" "숙제하고 일기도 쓰고 그림 그려야지!"
아들은 행복하게 그림만 그리고 싶은데, 나는 아이를 보며 '완벽한 결과'를 얻고 싶어 했던 이기적인 욕심. 전시를 관람하는 내내 '아이들은 부모가 만들어 준 환경에서 자란다'는 문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글쓰기를 회피했듯, 나는 좋은 아버지라는 진짜 수고를 회피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이때 내 지난 깨달음이 다시 작동했다. "말은 현장 예술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실전 대화에서 버벅거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마찬가지로, 내가 아무리 아들에게 "꿈을 가져라!"고 말로 조언해도, 내 삶이 시원찮으면 그건 훌륭한 환경이 될 수 없다. 아들의 꿈을 위한 가장 강력한 지원은, 아버지의 '삶' 그 자체가 실천으로 증명되는 것이었다. 즉, 아버지라는 현장 예술을 멋지게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붓을 든 아들 앞에서 당당해지는 법
그래서 나는 가장 먼저, 가장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했다. 경제적 안정!
혹자는 속물적이라도 할지 모르겠지만, 이건 현실이다. 아들이 원하는 화구, 가고 싶어 하는 해외의 명소,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여행. 이 모든 '경험'은 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돈이 없어서 못했어"라는 말을 아들에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들의 꿈이 재정 때문에 꺾인다면, 그건 내 삶이라는 현장 예술이 미완성이라는 뜻이니까.
하지만 돈이 전부가 아니었다. 궁극적인 목표는 나 스스로 떳떳하고 존경받을 수 있는 아버지가 되는 것이었다.
왜냐고? 프로 야구선수 추신수의 아들이나 이대호의 아들처럼, 아버지를 '선망의 대상'으로 보는 그 영향력 때문이다. 아들이 커서 "우리 아버지는 참 멋졌어. 자신의 일이 진심이었지!"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강력한 창작 환경은 없을 것이다. 내 삶이 곧 아들의 꿈에 대한 동기 부여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제 글쓰기의 고통을 감내했던 지난날의 자세로 아버지 역할이라는 새로운 수양을 시작하려 한다. 아들의 붓이 도화지 위를 망설임 없이 누비도록, 나는 삶이라는 현장을 떳떳하고 열정적으로 누빌 것이다.
나는 이제 아들에게 말로 조언하지 않으련다
그저 내 삶을 완성하는 과정을 보여줄 것이다. 그 당당하고 열정적인 아버지의 뒷모습이 바로 아들의 화가로서의 꿈을 위한 가장 강력하고 유쾌한 창작 환경이 뒬 것이라 확신하며, 오늘도 나는 나의 현장 예술을 위해 노트북 앞에 앉는다. (물론, 글쓰기는 여전히 고통스럽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