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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우 Nov 08. 2022

[영화감상]이웃집에 신이 산다

 Le Tout Nouveau Testament

2015 / 벨기에 / 자코 반 도마엘 감독



모두가 상상했던 천상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고층빌딩의 최상층에 하느님이 살고 있다.

그런데 하느님의 모습은 인상이 인자하거나 근엄하기는커녕 폭력적이고 졸렬하며 고약한 술주정뱅이 스타일이었는데 그의 성격이나 버릇, 행동까지 그 외모와 너무 잘 맞아떨어졌다.

그에게는 소심하며 다소 주눅 들어 사는 뚱뚱한 와이프가 있다. 매일 남편의 눈치를 보며 늘 맛없는  음식을 만드는데 가사 외에는 늘 TV를 보며 살았다. 프로그램은 언제나 스포츠 중계였다. 그러나 그의 딸은 반대로 촉명한 눈을 가지고 있었고 반항적인 성격으로 그것은 그 소녀가 태어날 때부터 그의 아버지 즉 신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운명 같은 것으로 모태 반항이라고 할 수 있다.

신은 자신의 방을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 자물쇠로 채워놓았고 매일 그 안에서 세상을 창조하는 취미에 빠져 식사와 잠잘 때 외에는 나오는 일이 없었다. 

그는 얼마 전에 세상을 창조했고 그 안에 모든 생물체를 만들어 창조주의 기쁨을 혼자서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부록으로 브뤼셀이란 도시까지 만들었는데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 질 않았다. 세상에  온통 동물들만 돌아다니는 것이 아무래도 허전했던 그는  결국 자신의 형상을 닮은 아담과 이브라는 인간을 만들어 세상을 인간들로 채워놓았다. 그리고 너무나 만족하여 모처럼 거품 목욕도 즐겼다.

그리고 한동안 순조로운 인간들의 삶에 만족했지만 그의 괴팍한 성격은 금세 그것에 싫증이 났고 그의 고약함은 인간들의 삶에 또 다른 난관과 불행이라는 변수를 프로그래밍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프로젝트의 이름을 ‘일상적 불행’이라고 칭하고는 그제야 만족하는 듯했다. 그 내용은 방대한 것이었는데 하나 하나의 항목들을 살펴보면 대개 이런 것들이다.

2,610,152장 8,532절 633항 : 마트에서 줄 서서 기다릴 때 늘 옆줄이 더 빨리 줄어든다.

5,889,120장 20,889절 78항 : 잼을 바른 토스트를 떨어뜨리면 늘 잼을 바른 쪽이 바닥에 닿는다.

뭐 이따위 것들이다. 인간이 선천적으로 고약한 성품을 타고났다는 것은 바로 그런 창조주가 고약한 성품을 DNA로 주입시켰기 때문인 것이다. 창조주인 그는 이런 장난으로 인간들의 비극과 난처함을 즐기는 낙으로 살고 있다.     

그의 10살짜리 딸은 어린 나이지만 신의 딸이기 때문에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세상의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세상 창조 시스템의 프로그래밍을 스스로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늘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 소녀의 오빠는 이전에 그곳에서 뛰쳐나와 세상 사람들에게 새로운 비밀을 알려주려고 했으나 아버지의 방해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꼴을 당해서 지금은 조각상으로만 존재하고 있다. 세상에서는 그를 예수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의 여동생과는 자주 대화를 나눴고 소녀는 늘 오빠가 못 이룬 일을 하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소녀의 가출을 막기 위해 집안에 꼼꼼한 경비 시스템을 만들어 두었으므로 소녀는 집안에 갇혀 살아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 예수가 여동생을 급히 불렀다. 오빠는 어제 아버지의 경비 시스템의 해킹에 성공하여 동생의 탈출을 돕겠다고 하였다. 아파트의 탈출구는 세탁기 속인데 12,000 RPM에 12시간을 맞춰놓고 가동을 하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 그것은 결국 ‘아파트 탈출기‘가 된 것이다.

소녀는 그날 밤 짐을 챙겼고 세상의 정보를 가지고 가기 위해 잠자는 아버지의 열쇠를 훔쳐 아버지의 방에 들어갔다. 서랍에서 정보문건을 챙겨 나오려다 문득 아버지의 컴퓨터에 앉아서 훑어보다가 갑자기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해서는 안될 일을 하고야 말았는데 그것은 세상 모든 인간에게 자신들이 죽기까지 남은 시간을 문자로 일괄 전송한 것이다... 이로서 세상은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혼란의 시련에 빠지게 되었다.      

소녀는 세탁기를 통해 세상으로 나와서 신신약을 만들기 위해 제자들을 하나하나 만난다. 그런데 새로운 성서를 집필하는 제자는 하필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노숙자였다. 그렇치만 개의치 않고 진행한다. 그리고 소녀와 만난 제자들도 각각 이상한 사람들이었는데 지하철에서 팔이 잘린 여인, 살인청부를 꿈꾸는 아저씨, 성도착자, 기회주의자, 남편에게 버림받은 부자 할머니, 성소수자 소년... 소녀는 그들에게 각각 앞으로 세상을 위해 할 위업과 그들에게 맞는 음악을 지정해주었고 노숙자 제자는 어렵게 그것을 기록해 나갔다.     

그러나 소녀의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에 의한 실수인 죽음의 문자메시지는 이미 온 세상을 혼란으로 요동치게 만들었는데 소녀도 그것을 가슴 깊이 후회하고 있었다.

생의 남은 시간이 2초라는 문자를 받은 남자는 정확히 2추 뒤에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고. 103년 후라고 문자를 받은 청년은 고층빌딩에서 떨어지는 등 갖은 자살을 시도해도 결국 구사일생으로 죽도록 죽지 않았다.. 또한 사명감으로 시한부 환자를 돌보던 간호사는 환자보다 먼저 죽는다는 문자에 인류애 따위는 개나 주고 싶을 정도로 삶의 배신감에 몸을 떨어야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동시에 허무주의자들이 되었다.     

한편 천국 아파트에서는 분노한 아버지의 광풍이 불고 있었다. 하지만 딸보다 컴퓨터 실력이 부족한 아버지는 딸이 프로그램에 심어놓은 바이러스 폭탄 때문에 어쩔 줄 모르다가 결국 딸을 찾아 세탁기로 들어갔다. 그는 비록 신이지만 세상에서는 그다지 신통력이 없는 노인이었으므로 주변 양아치들에게 얻어맞거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냉대를 받아야 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자신은 신이라고 떠들고 다니며 자신의 창조물인 인간을 멸시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결국 딸을 찾았지만 신통력을 가지고 있는 딸은 강물을 걸어서 건너는 등 아버지를 능가하는 능력이 월등하여 신이며 아버지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세상이 지금 온통 이치의 프로그램의 부조리에 휩싸여 혼돈 그 자체가 되었고 이제는 인류의 멸망뿐 아니라 우주의 멸망까지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때 천국 아파트에서는 엄마 혼자 남아있었는데 모처럼 신의 부재로 인한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그런 자유로움에 처음으로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그리고 엄마는 문득 아버지 방을 청소하고 싶어졌다. 처음으로 들어가 보는 아버지의 방은 이름 모를 서류함으로 벽체가 채워져 있었고 한가운데는 컴퓨터 테이블만 하나 있었다. 어쩐지 쉬워 보였다. 방안에 온통 쌓인 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엄마는 진공청소기를 기져 왔고 그것을 연결하려고 하나밖에 없는 전기 플러그를 뽑았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컴퓨터는 예상치 못한 프로그램 종료에 다운되면서 중요 파일들이 모두 삭제되었다. 그 때문에 세상도 함께 먹통이 되며 멈추었다. 세상은 시간이 멈추며 예상치 못한 암흑 상태가 되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청소를 마친 엄마가 청소기 전원을 뽑고 다시 컴퓨터 전원을 꼽자 공장 초기화되었던 컴퓨터는 새로 시작하는 세팅 화면이 나왔다. 엄마는 문득 컴퓨터에 앉아서 잠시 보다가 별로 어렵지 않은 것 같아 자리에 앉았고 새로운 세팅에 호기심이 들기 시작했다. ’ 마지막 업데이트 지점으로 초기화하시겠습니까?‘라는 물음에 ’ 예‘를 눌렀고 새로운 세팅 메뉴를 열어 하나하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입력해 나갔다. ’ 하늘은 무엇으로 채우시겠습니까?‘라는 물음과 함께 화면에 샘플 창이 떴다. 여러 가지 컬러가 있었고 응용 컬러 창에는 꽃무늬나 각종 문양들이 여러 개 있었는데 엄마는 자신이 좋아하는 꽃무늬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다음 물음에 하나하나 블로그를 만들 듯이 콧노래를 부르며 취향에 맞는 것을 선택해 나갔다.

그러자 순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마치 기억이 없어진 듯 자신의 죽음까지의 시간 개념을 완전히 잊어버렸으며 하늘은 갑자기 예쁜 꽃무늬로 바뀌기도 했다. 전보다 훨씬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불쑥 음악과 함께 하늘에 알 수 없는 자막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           


이것은 영화의 줄거리다.

이런 허무맹랑한 영화가 또 있을까.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얼마나 망상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마치 스스로 세상을 창조하는 기쁨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유로운 글쓰기의 매력이란 것이 인생의 어떤 형태나 시간보다 즐거울 수 있다는 것도 알 려 주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 모든 문화라는 것의 시작과 정체성이 종교의 토양에서 시작되었고 인간만의 정신적 줄기인 인문학도 그런 종교적 토양의 영양분으로 지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민족이나 나라도 신화적 종교가 없는 곳을 없을 것이다.

애초에 신화는 언어를 이용한 이야기에서 시작되었고 이야기에 의지가 더해지면서 이야기꾼의 역사 즉 신화가 되었다 그리고 그 신화의 뿌리를 유지하기 위한 지침으로 문자 화한 것이 종교의 경전이 된 것이다. 현재 민주사회의 법률도 그런 뼈대를 근간으로 현실에 맞게 리모델링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신화적 종교는 말한 자 즉 권력자의 의지가 들어있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의지는 권력자의 권능이 보수적인 가부장적 형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모든 인간의 힘의 차이, 남녀의 기능적 차이, 가족의 체계가 존재하는 한 권력이 탄생하며 그 권력자는 아버지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아버지의 존재를 후세에 원형 그대로 이어나가려는 DNA의 의지처럼 새로운 변이를 차단하고 줄기를 보존하려는 보수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줄기들의 충돌이다. 세계 각지에 분산되어 있었던 부족들은 인구가 늘고 영토가 커지면서 지금까지 몰랐던 타지의 새로운 줄기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전쟁이다. 전쟁의 본질은 결국 각각의 보수적 권력에 의한 다툼으로 거기에 민족과 종교 그리고 근대에 들어서면 이념이란 깃발을 내세우게 되고 그것은 민족과 종교 그리고 이념이란 껍데기 안에 권력의 핵을 숨겨 보호하기 위한 권력의 교묘한 존재방식이 된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전 세계의 평등한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글로벌 세상이 탄생하면서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게 된 것은 전 세계 각 문화들과 자신들의 문화를 비교를 할 대상을 발견하게 되었고 상호 문화의 차이로부터 자신들의 일상 문화를 객관적으로 자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몰랐던 불편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 영화 스토리의 내재된 성향 역시 지금까지 자연스러웠던 종교의 가부장적 권력을 발견하면서 그것에 대한 반항과 조롱을 유머스럽게 전개한 것이다. 즉 지금까지 일개 권력이 만들어 낸 권력을 세상의 섭리라고 생각했을까 라는 억울함과 함께 구닥다리 프로그램을 삭제하고 새로운 새로운 시스템으로 세상을 리셋하고 싶은 것이다.     


최근 이란에서는 한 여인이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고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사건으로 인해 이란의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까지 종교 정부와 정책에 대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데 거기엔 이름도 생소한 도덕경찰이란 것이 있었다. 이란은 리셋이 잘못 이루어진 국가다. 즉 과거의 시스템으로 역 리셋된 이상한 나라다. 대개의 독재권력이 권력을 유지하는 스킬 중에 하나는 언론을 장악하고 외부 통신망을 끊는 것인데 북한이나 미얀마처럼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이 정권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즐겨 사용하고 있는 매뉴얼이다. 수많은 국민을 죽여서라도 정권을 아니 자신의 DNA를 이어 나가고 싶은 구닥다리 아버지의 표상인 것이다.     

인간은 모르는 만큼 갇혀있다. 세상과 단절된 교도소의 높은 담은 무지로 이루어진 자신의 격벽이며 그 안에서는 성서나 법전 같은 규율만이 그곳을 지배하고 있다. 담이 없고 소통이 자유로운 교도소는 더 이상 감옥이 아니다. 이란의 국민들은 갇혀있다. 그들은 지배당한 국민도 아니고 죄를 지어서도 아니다. 단순히 권력이 종교를 내세워 자신들의 방어벽을 세운 것뿐이다. 

새로운 글로벌 시대의 새로운 인류들에게 사람들을 더 이상 민족이나 국가로 분류하는 것의 의미가 없다. 오히려 개인의 성향으로 구분하는 것이 맞을 것이며 그룹으로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습관이다. 그러므로 같은 성향의 동료들이 아버지들에게 구속되어 있는 것을 용인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이 영화의 좋은 점은 바로 누구나 할 수 있으나 하지 못하는 상상을 그렸다는 것이다. 그 누구나 하지 못하는 큰 이유는 마치 성서나 법전 같은 아버지의 전통에 반기를 드는 것 같은 것으로 그것은 감옥의 담장 안에서 스스로 이상한 양심의 가책에 갇힌 생각과 상상의 한계인 것이다.     




*이 영화는 어둠의 경로에 아직 많이 남아있다.     

*마지막에 죽을 날이 103년 남았다는 청년은 아쉽지만 바로 죽었다.


https://youtu.be/UVkJUDO4J7k


https://youtu.be/aJb3uc1D1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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