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이기적 유인원>
힙합을 좋아하는데요. 대표적인 국내 래퍼 도끼의 곡 중 "내가 망할 것 같애?"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굉장한 성공을 거둔 도끼가 망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어쩌면 인류는 망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기적 유인원>이라는 책에 따르면 말이죠.
스스로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는 인간을, 냉정한 과학의 시선으로 우리는 단지 지구를 거쳐가는 생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다만 다른 생물과 다르게 탐욕과 과학을 갖고 있을 뿐이죠. 이 특징은 인간을 강력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자멸로 인도합니다. 인류를 끝장 낼 수 있는 핵폭탄 같은 무기는 우리와 경쟁하는 종이 만든 게 아니죠.
얼마 전 보았던 충격적인 기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과학자를 마블 유니버스의 히어로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온난화 같은 환경문제가 지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알지만, 그래도 과학자들이 어떻게든 해결해 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접하게 되는 뉴스나 다큐멘터리 등을 볼 때 근심을 느끼지만 어느새 잊고 살아가죠.
그런데 그 과학자가 지구온난화와 관련하여 "이젠 늦은 것 같다"라고 얘길 한 겁니다. 의지의 상징, 캡틴 아메리카가 이젠 다 끝났다 라고 얘기하는 느낌이죠. 무슨 얘기냐면, 가장 더운 여름에도 녹지 않는 '최후의 빙하'가 있는데, 얼마 전부터 녹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지구의 평균온도가 이미 특정 임계점을 넘어선 증거인데요, 그럼 이게 왜 심각할까요?
제로 에미션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전 인류가 탄소배출을 제로(0)로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대책입니다. 하지만 이제 제로 에미션으론 글렀고,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제거해야 하는, 마이너스 에미션의 상황이라는 거죠. 이미 배출하고 있는 탄소를 줄이는 것도 어려운데 제로 에미션, 아니 마이너스 에미션을 해도 쉽지 않은 지점까지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기적 유인원>의 저자 역시 책의 말미에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달리 독자들에게 제시할 대안이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우리가 "잠시나마 자연에 머물렀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을 지니는 것"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갖는 게 최선이라고 합니다. 이건 마치 인류를 위한 유언 같이 느껴져서, "제발 다른 해결책이 있다고 얘기해줘" 라며 페이지를 넘겼는데 그게 마지막 장이었어요.
인간으로서 유쾌한 내용을 담은 책이 아닙니다. 여전히 희망은 있다고 믿고 싶지만, 과학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영역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사실을 근거로 우리가 문제를 '직시'하게 해 줍니다. 당면한 문제를 직면하는 것은 괴롭지만, 우리가 저질러 놓은 일들을 수습하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도 고개를 떨군 상황에서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사실 마이너스 에미션의 상황을 생각하면 괴롭습니다. 그래도 저자는 우리와 함께 고통받는 지구의 다른 존재에게 더 친절하게, 그리고 조금이라도 잘해나가길 권합니다. 그럼 우리의 멸종을 조금 지연시키는 것은 가능하다고 이야기해요.
텀블러 쓰기나 플라스틱 빨대 쓰지 않기, 배우 류준열 씨가 알리고 있는 플라스틱 제로 캠페인 '용기내' 같은 행동들은, 생활인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친절한 행동'입니다. 불편하고 비효율적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불평은 한가한 소리일 수 있죠. 이미 임계점을 넘긴 상황에서 되돌릴 방법이 았을지 모르지만, 시간을 지연시킬 수 있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시간을 벌어 놓아야 기적 같은 해결방법이 나올 여지도 있으니까요.
좋아하는 영화 <인터스텔라>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노인들이여, 저무는 하루에 소리치고 저항해요. 분노하고, 분노해요. 사라져 가는 빛에 대해."
오늘은 인터스텔라를 보고 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