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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기산 Apr 13. 2022

파이어족의 기원을 찾아서 (1)

우리는 어쩌다 파이어족이 되고 싶어 졌나

 저는 트렌드를 가장 잘 읽을 수 있는 지점은 직장인의 세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애 주기로 보았을 때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시기기도 하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격렬하게 체험하는 시기이자, 가장 많은 선택과 고민을 하는 시기니까요. 대상을 더 좁히면, 직장인 중에서도 가장 많은 활동을 하는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까지의 시기, 즉 관리자 또는 임원이 되기 이전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년 전 제가 온라인 서점 MD로 입사했을 때. 직장인들의 베스트셀러는 대부분 '힐링'을 키워드로 삼고 있었습니다. 벌어 놓은 돈을 쓰면서 힐링을 하든, 여행으로 힐링을 하든 직장인들의 트렌드였죠. 그러다가 몇 년 후에는 '소확행'으로 넘어갔습니다. 직장생활 몇 년 해보니, 인생에서 대단한 성공을 꿈꾸기엔 세상이 녹록지 않다는 걸 깨닫게 돼서 일까요. 당장 내 지갑에 있는 돈으로 할 수 있는 작은 행복을 추구하자는 기조였던 것 같습니다.


 마침 이 시기 이전, 누구나 봤지만 누구도 읽지 못했던 전설의 베스트셀러, <21세기 자본>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의 핵심은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이 자본이 벌어들이는 돈은 기하급수적인데, 노동이 버는 돈은 산술급수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즉 부동산이나 현금 같은 자본을 투자해 버는 돈이, 직장인이 주 40시간으로 일해 버는 돈보다 엄청나게 높다는 내용입니다. 아파트 갭 투자로 1억 버는 것은 1년 안에 가능하지만, 평균적인 직장인 월급을 단순 저축해서 1억 벌려면 한 10년쯤 걸리니까요.

 

 두껍고 어려운 '벽돌 책'이었던 <21세기 자본>은 그 당시 국내에서 히트를 쳤던 <총, 균, 쇠>와 함께 읽지 않는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지만, 직장인들은 노동 수익의 한계를 몸으로 느끼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굳이 텍스트를 읽지 않아도 말이죠.

무려 820페이지를 자랑하며 많은 사람들이 읽지 못한 베스트셀러. 하지만 우리는 피케티가 말하고 싶었던 자본-노동 수익의 불균형을 몸소 체험해서 알고 있다.


 각자의 방법으로 소소한 행복을 만끽하며 지낸 평화로운 나날들. 그런데 별안간 비트코인인지 뭔지, 알다가도 모를게 폭등합니다. 몇 달 전 소소한 즐거움을 추구하던 와중에, 친구가 잠깐 이야기를 했던 것은 같은데 이게 몇백 배 가격이 뛰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벼락부자 이야기를 애써 모른 척 하기엔, 나도 손만 뻗었으면 닿을 수 있었을 비트코인이었죠. 덕분에 꽃꽂이를 하며 소확행을 추구하는 지금도, 머릿속 한구석에서 '그때 살걸'이라는 울림은 좀처럼 가시지 않습니다.


 거기에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유튜버들이 억대 연봉을 번다는 뉴스,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로 월급만큼 번다는 직장인들 이야기들이 나오며, 어느 순간부터 많이 팔리는 책들의 제목에 'N 잡러', '월급 독립', '파이프라인', '조기 은퇴'등의 키워드가 등장합니다. 


 이런 책 제목들을 아우르는 한 가지 주제는 곧 '파이어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힐링에서 소확행으로. 그리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자본을 모아, 조기 은퇴하는 것이 목표인 '파이어족'으로. 직장인들의 트렌드는 지난 10년간 이렇게 흘러왔습니다. 적어도 팔리는 책으로 분석하자면 그렇습니다.


 사실 파이어족이 트렌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게 가능한 또는 가능하다고 기대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SNS, 유튜브, 각종 플랫폼 형태의 일자리 등 평범한 직장인도 도전해볼 만한 수입창출 기술들이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회사 월급 외에 기대할 수 있던 수입은 대리운전기사 정도였을까요. 이것도 적극적 수입창출이기보다 부족한 월급을 보완하기 위한 맥락에 가까웠습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기준, 온라인 서점에서 '파이어족' 키워드를 치면 약 20종 가까운 책이 나옵니다. 주식투자든 개인 브랜딩이든 다양한 방법으로 파이어족이 되는 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파이어족에 관심이 많아진 요즘, 이 중 몇몇 책을 읽어보긴 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바람직한 파이어족 형태는, 좋아하던 분야가 업이 되어 돈도 벌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사실 파이어족은 단순히 일을 하지 않고 산다는 개념은 아닙니다. 대신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어서,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을 선택권이 있는 삶의 형태에 가깝죠.


 그러고 보니 파이어족이라는 말이 요즘처럼 대중화되기 이전인 2014년, 혜성처럼 등장해 저와 몇몇 지인들을 매료시킨 책이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책의 내용에 비해 판매량은 많지 않아 널리 알려지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현재도, 서점 MD로서 자기계발 책을 하나 추천하라면 떠오르는 책입니다. 양산된 자기계발서와는 달리 명확한 문제의식과 적확한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고, 직장인이라면 반드시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몇 년 뒤 직장인들을 매료시킨 파이어족을 이루는 본질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8년 전에 이 책을 읽고 꾸준히 실천해 온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파이어족이 유행하기도 전에 파이어족이 되었겠죠. 


  책의 제목은 <쿨하게 생존하라>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8년 전 파이어족이 되는 법을 설파했던, 다른 말로 쿨하게 생존하는 직장인이 되는 법을 말했던 이 책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파이어족의 단서를 제공한 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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