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4년 1월 17일,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고종'을 대신해
그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공식적으로 섭정을 시작했습니다.
고종은 즉위 당시 열두 살에 불과했습니다.
조선의 관례에 따라
국왕이 친정을 할 수 없는 나이였고,
이에 따라 왕의 아버지가 국정을 대신 맡았습니다.
이로써 이하응은 '대원군'의 지위에서
조선의 실질적 최고 권력자로 등장하게 됩니다.
흥선대원군이 마주한
조선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오랜 기간 이어진 '세도정치'로 왕권은 약화되었고,
탐관오리의 횡포와 삼정의 문란으로
민생은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국가는 기강을 잃었고, 왕실의 권위 역시
크게 흔들리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대원군은 강력한 개혁으로
이 혼란을 바로잡고자 했습니다.
세도 가문을 정치 전면에서 밀어내고,
왕권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서원 철폐를 통해 지방 사족의 기반을 약화시켰고,
호포제를 실시해 군포 부담을
양반에게까지 확대했습니다.
또한 경복궁 중건을 통해 무너진
왕실의 위엄을 회복하려 했습니다.
개혁은 강력했던 만큼 반발도 컸습니다.
급격한 변화는 기득권층의 저항을 불러왔고,
대외적으로는 통상 수교를 거부하는
쇄국 정책이 국제 정세와 충돌하게 됩니다.
결국 흥선대원군의 섭정은
약 10년 만에 막을 내리지만,
그의 집권은 조선이 근대로 넘어가기 직전
가장 격렬한 정치 실험으로 평가됩니다.
1864년 1월 17일, 흥선대원군의 섭정 시작은
쇠락한 왕조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마지막 몸부림이자,
변화를 피할 수 없었던 조선의 운명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흥선대원군'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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